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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땅, 웃음꽃이 피다 [박윤정의 원더풀 발칸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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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6 10:00:00 수정 : 2018-12-05 21: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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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프리즈렌 / 민족 간 갈등… 아픈 역사 지닌 코소보 / 영웅 동상 사이로 뛰어노는 아이들 / 음악 흐르는 거리엔 흥 넘치는 사람들 / 전장의 폐허 예상 깨고 활기찬 도시에 매료
알바니아 베라트의 아침은 역사와 전통의 도시에 어울리지 않게 소음으로 시작했다.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해 도시는 공사 중이다. 창밖으로 보이는 인부들의 바쁜 발걸음에서 발전하려는 도시의 활기가 느껴진다. 도시 개발로 오래되고 낡은 돌길 위에서 느꼈던 행복감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며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 코소보로 향하기 위해 짐을 챙겼다. 밤새 불편하지 않았는지 묻는 친절한 호텔 직원의 안부에 감사함을 표하며 코소보로 향하는 먼길을 나선다. 베라트에서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까지는 350㎞나 떨어져 있다. 자동차로 5시간 정도를 달려야 한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자연과 풍경을 벗 삼으니 장거리 운전도 견딜 만했다.

코소보 들판을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알바니아 국경을 벗어나고도 한참을 달려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에 도착했다. 코소보 내전의 영향으로 황폐화된 건물 등 전장의 폐허가 펼쳐질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코소보 들판을 달리는 동안 차창 밖으로 아름다운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프리슈티나의 첫인상은 마치 서유럽의 작은 전원도시처럼 말끔하게 정비된 모습이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해외 뉴스를 장식하던 코소보전쟁은 상상할 수 없는 공포를 던져줬다. 1999년 코소보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던 이곳은 현재 재건 중으로 유엔(국제연합)의 관리를 받고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시내에서는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젊은이들과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이 거리에 다니고, 카페에서 오후를 즐기는 모습에서 아픔을 삼키고 새롭게 적응하려는 코소보인들의 노력이 보였다.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 중심 광장엔 스칸데르베그 등 알바니아 민족 영웅의 동상들이 있다.
오랜 이동으로 관광에 나서기 전 식당에 들렀다. 식당이 늘어서 있는 거리의 야외 테라스는 꽃으로 장식돼 있다.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늦은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다. 허기를 해결하고 코소보 거리로 나선다. 코소보는 주민 대부분인 92%가 알바니아계로, 내전 당시 수많은 알바니아계 주민이 피해를 입었다. 그 외 5.3%가 세르비아인이고 나머지는 보스니아인, 루마니아인 등으로 구성돼 있다. 거리를 나서면 중심광장에 중세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 스칸데르베그의 동상이 서 있다.

코소보 수도 프리슈티나는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과 유모차를 미는 엄마들이 거리에 다니고 카페에서 오후를 즐기고 있다.
가장 최근 독립한 나라 중 하나인 코소보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 마케도니아에 둘러싸여 있는 인구 200만명의 작은 나라다.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코소보의 심장 프리슈티나는 오랜 전쟁과 갈등으로 한시도 편안하지 못했다.

중세 땐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로 발칸반도의 교역 거점 역할을 수행했지만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세르비아가 오스만제국에 패해 이슬람 세력의 통치하에 들어갔다. 당시 전투로 오스만제국의 무라드 1세가 죽고, 이후 오스만제국도 곧 물러나게 됐다. 그 결과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고양됐고, 프리슈티나를 포함한 코소보는 세르비아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상징적인 지역이 됐다.

프리슈티나 시내 대학과 기념비적 건물들. 코소보 전쟁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던 프리슈티나는 현재 유엔(국제연합)의 관리를 받고 있다.
하지만 17세기부터 18세기에 걸쳐서 종교적인 이유로 수많은 세르비아인이 오스트리아로 이주했고, 이슬람교 계통의 알바니아인들이 코소보 지역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했다. 알바니아계가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고, 19세기 말부터는 프리슈티나 등 여러 곳에서 알바니아인들의 민족운동이 일어나게 됐다. 결국 프리슈티나는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모두에게 중요한 민족적 상징이 되면서 코소보 내전의 아픔을 겪는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중 점령과 해방을 반복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연방에 포함됐으나, 이마저도 티토가 1980년에 사망하면서 민족주의운동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1998년 세르비아의 탄압에 반발한 알바니아계 주민의 시위가 확산하자 세르비아계는 대규모 소탕작전을 벌이고 알바니아계 주민들을 상대로 이른바 인종청소작전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나토(NATO)는 세르비아에 대한 무력 사용을 결정하고 공중폭격 등을 통해 프리슈티나의 세르비아 군사시설 등을 공격했다.
코소보 프리즈렌 강둑을 따라 카페들이 들어서 있다.
 서방측과 세르비아의 평화협정이 1999년 6월 체결되면서 코소보는 평화를 찾았고, 2008년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정상화되면서 안정을 찾고 있지만 여전히 주변국들과 정치적 마찰이 발생하고 민족 간 갈등도 잔존하고 있다.

오랜 내전과 민족 간 갈등의 아픔은 겉으로 보기엔 많이 가신 듯했다. 프리슈타나의 거리에는 밝게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코소보 프리즈렌 길거리에선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젊은이들이 모인 분위기는 흡사 야외클럽 같다.
역사적 아픔보다 활기찬 거리가 더 인상적이었던 프리슈티나를 떠나 프리즈렌으로 향했다. 프리즈렌은 역사적 의미도 큰 도시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데카니 수도원과 코소보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적 기념물이 남아 있다. 서둘러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강둑을 따라 거닐었다. 길거리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사람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다. 젊은이들이 모인 분위기는 흡사 야외클럽 같다. 흥이 넘치는 분위기에 저절로 어깨를 들썩인다. 가방을 멘 학생들과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축제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코소보에서 가장 유서 깊은 도시 프리즈렌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두고 영화 한 장면이 펼쳐진다.

프리즈렌 시내 곳곳의 동상들.
프리즈렌 시내 곳곳의 동상들.
11세기 비잔틴제국이 건설한 석교 주변에 나란히 늘어선 카페에는 흐르는 강물 소리를 배경음으로 시민들의 수다가 이어져 새들이 지저귀는 듯하다. 

프리즈렌은 동로마제국 요새 칼라야와 오스만제국 시절의 ‘시난 파샤 모스크’, 세르비아 정교회 등이 곳곳에 어우러져 있다.
제법 빠르게 흐르는 강물 위로 조명등이 반사돼 떨어진다. 물방울과 함께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전쟁에도 훼손되지 않은 옛 모습 그대로 역사책 한 페이지를 그림으로 담은 삽화 같다. 강을 가로지르는 석교 너머 동로마제국 요새 칼라야와 오스만제국 시절의 ‘시난 파샤 모스크’가 세르비아 정교회와 어우러져 있다. 프리즈렌 시민 대부분이 이슬람이지만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공식 언어가 알바니아어, 터키어, 보스니아어, 세르비아어 4개인 프리즈렌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로 기억 남을 듯싶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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