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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기우(杞憂), 이젠 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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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3 23:14:50 수정 : 2018-12-03 23: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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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5G 상용화’ 반갑지만 / ‘안전 비용’ 다 함께 고민하면서 / 통신대란 교훈 깊이 되새겨야 / 그래야 X이벤트 우려 덜 수 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1일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5G 서비스를 제공해 국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국내 이동통신 3사가 그날 5G 전파 송출을 시작했고,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 5G 상용화 국가’라는 훈장을 달았다. 5G 시대 개막은 실로 뜻깊다. 하지만 걱정도 든다. ‘성공한 5G 시대’ 대신 ‘위험한 5G 시대’가 전개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KT 아현지사 화재 사고가 터지지 않았나.

현대 과학계는 ‘캐링턴 사건’을 기억한다. 1859년 태양의 흑점 폭발이 지구를 강타한 사건이다. 그해 9월 사상 최대 규모의 지자기폭풍이 발생해 오로라가 장관을 이뤘다. 과학계가 기억하는 것은 오로라 때문은 아니다. 19세기 중엽은 모스부호를 이용해 장거리 통신을 하던 시대다. 그 초창기 통신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유럽·북미 전역의 전신망이 마비될 정도였다. 21세기에 재발하면 어찌될까. 캐링턴 사건 자료를 토대로 세계경제 손실 규모를 추정한 2013년 연구가 있다. 미화 2조6000억 달러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승현 논설고문

오늘의 지구촌은 초연결사회를 구가한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대한민국은 더욱 그렇다. 기업 대상의 5G 상용화에 이어 내년 3월엔 일반 소비자 대상 서비스도 개시된다. 고무적 발전상이다. 그러나 불청객도 있다. 위험지수 증가다. 캐링턴 사건을 기억한다면 하늘 경계를 등한시해선 곤란하다. 땅밑도 살필 일이다. 후자는 아현지사 화재가 남긴 생생한 가르침이다. 정부와 업계의 5G 홍보는 아현지사의 지하 통신구 같은 시설이 엄청나게 많아진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적정 관리에 실패하면 다 지뢰밭으로 둔갑할 수 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8월 태양탐사선 ‘파커 솔라 프로브’를 발사했다. 유럽우주국도 2020년 태양탐사선을 보낸다. 제2의 캐링턴 사건에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다. 대한민국이 태양탐사선을 보내는 것은 현재로선 쉽지 않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있다. 통신망 안전 관리가 좋은 예다. 정부가 국가 관리를 의무화한 A∼C 등급 시설도 아니고 D 등급 화재로 서울의 4분의 1이 마비되는 불상사가 되풀이돼선 안 되지 않겠나.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해 추석 연휴 때 미래연구서 5권을 사 봤다고 한다. 미국 과학자 존 L 캐스티의 ‘X이벤트’가 그 목록에 들어 있다. 캐스티는 현대사회를 ‘카드로 만든 집’에 견줬다. 현대사회는 살짝 건드려도 통째로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시스템이란 것이다. 그 붕괴가 X이벤트다. 아현지사 화재는 X이벤트에 노출된 사회상을 아프게 꼬집은 광산의 카나리아다.

걱정만으로 바뀔 것은 없다. 행동이 필요하다. 초연결사회의 안전 관리는 맨입으로 되지 않는다. 정부의 갑질이나 기업의 이익 극대화는 외려 위험을 키울 뿐이다. 무엇이 필요한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다 같이 명확히 인식하는 일이다. 그 인식을 토대로 다들 한 발씩 양보해야 한다.

기존 방식보다 전송속도가 20배 빠른 5G 시대가 개막했으니 비용 부담, 다시 말해 고통 분담의 문제는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이성적·합리적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느냐 여부가 초연결사회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아현지사 화재의 원인, 복구, 보상 등이 당장의 관심사지만 중장기적으론 이쪽 또한 매우 중요하다.

비용 부담이 쉬운 과제일 리는 없다. 특히 만만한 업계를 상대로 힘자랑이나 하면서 통신요금 인하 압박을 일삼는 정부를 보면 대승적 대책 마련이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오직 그 길뿐이다.

기우(杞憂)라는 말은, 다 알다시피 옛 중국의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면 혹은 땅이 꺼지면 어쩌나를 부질없이 걱정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이 쓸데없는 근심이 이젠 말이 된다. 설혹 하늘과 땅이 멀쩡해도 현대사회 신경망이 쑥대밭이 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해진 것이다. 땅이 꺼지는 것과 뭐가 다르겠나. 현명히 대비하지 않는다면 캐스티의 악몽이 언젠가 민생을 쓰나미처럼 덮칠지도 모른다. 캐스티는 단언했다. “X이벤트는 반드시 일어난다”고.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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