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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바라’(Mission Varat)를 아십니까 [해외 우리 문화재 바로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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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04 10:00:00 수정 : 2018-12-05 13: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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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佛 탐험가 바라, 조선 문화재 수집 / 전국 돌며 물건 구입·관찰·조사 병행… 조선문화 알리기 앞장 한국 문화재가 지구 반대편의 나라들에까지 본격적으로 이동하고 소장된 시기는 조선말 개항기 이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조선을 오가던 외교관, 여행가, 선교사 등에 의해 개인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정부 또는 박물관 차원에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수집활동이 동시에 펼쳐졌다. 기관 주도의 문화재 수집과 유통은 민족지적 자료의 연구와 전시로 이어져 타 문화를 일반에 알리는 교육적 기능을 수행했다. 또 수공업이나 무역 등을 촉진시킬 수 있는 참고자료 및 유의미한 정보자원으로 활용됐다.

이런 방식의 문화재 수집은 미리 마련된 계획, 항목에 따라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특징을 가진다.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족학박물관의 한국소장품이 대표적이다. 조선에서 활약한 최초의 외국인 정치고문 묄렌도르프의 이름을 딴 이 박물관의 ‘묄렌도르프 컬렉션’은 박물관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수집됐다. 박물관이 만든 항목은 음식기, 주방기구, 주거용품, 화장용품, 일상용품, 놀이용품 및 장난감, 상업물품, 무기류, 운송수단, 애호용품, 필기구, 골동품, 잡화, 보석, 공구를 포함하는 15가지였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의 수집활동에도 적용된 기준이었다. 독일의 로텐바움박물관(구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의 경우엔 공통 항목 외에도 당시 조선사회가 관모에 따라 사회적인 등급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모자를 종류별로 모두 구입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민족학적인 시각에 따라 소장품을 구축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올해 실태조사를 한 프랑스의 국립기메동양박물관(기메박물관)은 19세기 후반 국가적 차원에서 한국 문화의 이해를 위해 대규모로 수집한 우리 문화재들이 소장된 기관 중 하나다.
프랑스인 샤를 바라의 수집품에는 당시 조선에서 사용하고 버려지는 물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문에 붙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그림인 ‘계견사호도’가 대표적이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티에리 올리비에 촬영(MNAG Paris-Thierry Ollivier)
◆서울에서 부산까지, 문화 표본 수집 여행

기메박물관의 한국문화재 중 다수는 ‘바라 컬렉션’(Varat Collection) 또는 ‘미션 바라’(Mission Varat)로 알려져 있다. 샤를 바라(Charles Varat·1842∼1893)는 트로카데로민족학박물관(트로카데로박물관)을 위하여 ‘프랑스 교육부에 의해 민족학적 임무를 띠고 파견된 탐험가’로, 1888년 10월 10일부터 약 6주간 조선을 방문했다. 

바라는 제물포를 통해 서울에 도착하여 보름 정도 체류한 뒤 약 2주일에 거쳐 서울에서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여행하며 조선의 민족지적 자료들을 수집했다. 초대 프랑스 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 등의 도움을 받아 조선 문화의 표본으로 판단되는 것을 상인을 통해서 구입했는데, 다행히 처음 보는 여러 가지 물건들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아울러 서울 거리에 직접 나가 상점들을 둘러보며 조선인들과 만나 물건을 샀고, 물건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기 위해 모자·가발을 만드는 수공업자의 생업 현장을 일일이 찾아가 관찰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사까지 병행했다.

바라의 관심사나 수집 범위는 광범위했다. 궁궐을 방문하고 행정 관료를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계급의 조선인들의 일상생활을 이해하고자 관습, 복장, 체질적 특징 등을 관찰·기록했다. 또 관혼상제, 세시풍속, 생업활동 등 다방면에 걸쳐 가장 한국적이라고 생각되는 문화의 표본을 모았다. 여기에는 불상과 무속화, 민화를 비롯하여 가구, 복식, 서적 등은 물론 너무 흔해서 하찮게 보이는 짚신과 같은 생활용품 등도 포함됐다. 시장에서 구입한 물건이라고 하면 흔히들 가치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기지만, 바라가 수집한 대중적인 소모성 물품 중에는 국내에서도 현전하지 않고 기록에만 남은 것이 있다는 점에서 실증적인 자료로서의 가치가 큰 것들도 있다.
‘항라짜는 모양’ 등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는 샤를 바라가 조선에서의 경험을 정리한 ‘조선 여행’이라는 글에 삽화로 활용됐다. 이 그림은 당대 조선의 풍속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가치가 크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티에리 올리비에 촬영(MNAG Paris-Thierry Ollivier)
◆기록화로 담은 조선의 문화

바라는 조선에서의 경험을 정리해 프랑스의 여행 전문 주간지 ‘투르 뒤 몽드’(Le Tour du Monde)에 ‘조선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1892년 5월부터 5회에 걸쳐 기고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현재 기메박물관에 다수의 원본이 보관되어 있는 이 글에 사용된 삽화다. 그림들은 조선의 관혼상제, 세시풍속, 생업활동 등을 담은 수묵화 및 채색화로 현재 총 170점이 남아 있다. 각 그림의 형식은 비슷하다. 배경을 생략해 사람과 주제가 확연히 드러나도록 그렸다. 그림의 오른쪽 위편에는 한글 제목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쓰기되어 있다. 시각적 묘사가 매우 상세해 기록화로서의 가치가 큰 그림들이다.

‘항라 짜는 모양’이란 제목의 그림을 보자. 비단 짜는 모습과 직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인데, 뽕잎 따기부터 비단 짜는 과정을 6개의 장면으로 보여주는 기록화 중 하나다. 이 그림은 프랑스인에게 조선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에 전승이 단절된 항라 직조법에 대한 시각적인 자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가진다.

그림 제목 아래에 찍혀 있는 ‘箕山’(기산)이라는 인장을 통해 바라가 당시 외국인을 대상으로 판매용 풍속화를 그렸다고 알려져 있는 김준근에게 의뢰한 그림임을 추정할 수 있다. 그의 조선 여행기에 상세설명이 없는 경우에도 김준근의 풍속화가 다수 수록된 것을 보면, 바라는 이 그림들을 통해 조선의 문화를 프랑스인들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판단된다.
샤를 바라가 조선을 여행할 때 고위관료와 조우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투르 뒤 몽드(Le Tour du Monde) ‘조선기행3’(1892)의 삽화
◆흩어진 바라 컬렉션, 실태조사로 소재 확인해야

바라가 수집한 한국문화재는 1889년 파리의 만국박람회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이후 국가에 정식으로 기증되어 트로카데로박물관에 전시됨으로써 프랑스에 조선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 이 박물관은 프랑스 교육부가 1878년에 설립한 최초의 민족학박물관으로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민족지적 자료들을 연구·전시하기 위한 기관이었다. 다양한 문화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각 문화가 맥락에 따라 상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마네킹을 이용해 장면을 재현하는 기법을 전시에 활용함으로써 대중적인 인기몰이에도 성공했다고 한다.

1891년 바라의 한국 수집품들은 다른 동아시아문화재와 함께 국립동양종교박물관의 위상을 가지고 있던 기메박물관으로 옮겨져 1893년 4월 11일부터 전시·공개됐다. 갤러리의 정식 명칭은 ‘한국의 종교와 민족지학 전시실’(Religion et Ethnographie Coréenne). 전시 내용은 무속이나 불교 중심으로 한정되었다.

기메박물관의 한국전시실이 일반에 공개된 지 한 달 정도 지나 바라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가 기록한 많은 자료나 사진의 정리, 조선 관련 간행물 출간은 마무리되지 못하였다. 게다가 기메박물관이 예술전문박물관으로 바뀌면서 다수의 바라 수집품은 수장고에 들어가거나 보르도의과대학박물관, 인류박물관 등으로 흩어져 버렸다. 다행히 수집품 목록은 기메박물관에서 한국전시를 준비하던 1892년 프랑스에 체류한 조선 말기 정치가 홍종우가 정리했다. 1910년에 350점에 달하는 조선의 문화재가 기메박물관 물품목록으로 확인되었다는 기메박물관 전 도서관 담당 수석학예사인 프란시스 마쿠앵의 기록도 있다. 
김근영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조사활용1팀 대리

바라의 수집품은 당시 프랑스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문화이지만 우리에게는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담은 타임캡슐이다. 바라 컬렉션의 상당수는 기메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기관으로 흩어진 그의 수집품, 기록물, 촬영자료 등은 현재 파악되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한다.

‘미션 바라’ 관련 자료의 발굴 및 조사·연구는 장기간의 실태조사가 필요한 과제 중 하나다. 이런 작업이 성과를 낸다면 잃어버린 기억이 되살아나 우리의 역사는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김근영 조사활용1팀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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