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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인간은 있다…밤으로 피신하는 '위기의 동물들'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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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30 11:29:44 수정 : 2018-12-04 17: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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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 수 60% 줄고, 인간 피해 야행성으로
#1. 지난해 미국 컬럼비아대학 의대와 노스 캐롤라이나대학 공동 연구팀은 원하는 부위에 패치를 붙이면 지방이 20%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나는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큰 쥐(rodent)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다.

#2. 중국 로켓기술연구원은 로켓 기술을 활용해 인공보조심장을 설계·개발했다. 환자들의 치료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될 것으로 보인다고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지난 3월 전했다. 새로 개발된 인공보조심장은 동물실험을 거쳤다.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순간에도 동물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제공해왔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생명을 다해가며 대신했다. 배가 고플 때는 속을 채워 줬으며, 추울 때는 옷이 돼 줬다. 때론 인간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했다.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있어 동물은 대개 주는 쪽이었다.

물론 약육강식은 자연의 이치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듯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일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정상적인 범주의 포식자는 희생자를 멸종위기까지 몰아넣지 않는다. 희생자가 있어야만 포식자도 존재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외래종’에 가깝다. 인간은 기후변화 유발과 난개발 등으로 동물 서식지를 파괴하는가 하면 동물 남획을 자행했고, 이에 따라 동물 개체 수는 급감했다. 지난 10월29일(현지시간) 야생동물 보호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이 발간한 ‘지구생명보고서’(Living Planet Report 2018)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4년까지 44년간 포유류·조류·파충류·양서류·어류 등 척추동물의 수는 60% 감소했다. 중남미 지역에서는 척추동물의 89%가 감소하는 등 피해가 가장 컸다. 인간의 서식지 파괴, 어류 남획과 지나친 사냥, 과잉개발 등이 동물 수 감소의 주요 요인이 됐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인간의 무관심 속에 동물들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을 피해 밤에 먹이를 찾고 있는 동물들. 낮에 활동하는 포유동물들이 인간을 피해 야행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디언 캡처
◆ 위기의 동물들

미국 예일대 생태학자 조슈아 다스킨 등 연구팀은 전쟁과 가뭄, 동물보호구역, 인간의 인구밀도 등 10가지 요인을 놓고 약 65년간 아프리카 대륙 동물 36종의 개체 수 변화 자료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평화 시에는 야생동물 개체 수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지만, 크든 작든 전쟁이 일어나기만 하면 그 개체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지난 1월 AP통신이 전했다. 전쟁이 잦으면 잦을 수록 포유동물 개체 수는 급격히 떨어졌다. 인간이 저지르는 전쟁으로 인해 야생동물 개체 수가 급감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다스킨은 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유혈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더라도 전쟁이 벌어진 해마다 포유동물 가운데 35%가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교전이나 지뢰 폭발 같은 물리적 충돌보다 전쟁으로 인한 사회 및 경제 여건의 변화가 동물들의 생존에 주로 악영향을 미쳤다. 전쟁의 포화 속에 굶주린 사람들이 값비싼 코끼리의 상아를 노리거나 먹잇감으로 보호 대상 동물 사냥에 나서는 식이다.

이제 동물들은 인간을 피하기 위해 그동안 지켜왔던 생활방식들을 바꾸고 있다. 낮에 활동하는 포유동물들이 인간을 피해 야행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지난 6월 보도했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이자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환경과학·정책학부에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케이틀린 게이너가 이끈 연구팀은 6개 대륙에서 위치정보시스템(GPS) 추적장치 등을 이용해 다양한 포유동물의 활동을 조사한 기존 76개 연구 결과의 자료를 분석했다. 62종의 포유류를 다룬 이번 연구에서는 인간이 근처에 있을 때 포유동물들이 낮 동안 상대적으로 적게 움직였고, 밤에 더 활동적이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이러한 행동 변화는 심지어 이미 야행성이라고 분류된 종들에서도 나타났다.

게이너는 과거 공룡이 멸종된 이후 포유동물들이 주간에 활동을 시작했다며 “인간은 지금 지구 어디에나 있는 무서운 집단으로, 우리는 다른 모든 포유동물을 다시 야간으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행, 사냥, 농경, 도로 건설 등 주로 낮에 이뤄지는 인간의 활동을 피해 밤에 먹이를 찾고, 이러한 변화가 여러 종으로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동물들은 서식지와 공간에 이어 시간까지 인간에게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인간을 피해 밤에 먹이를 찾고 있는 동물들. 낮에 활동하는 포유동물들이 인간을 피해 야행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디언 캡처
◆ 관심 높아지는 동물권…현실은 여전히 열악

“동물 복지를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동물도 법적 독립체 또는 법적 인간의 지위에서 논의돼야 한다. 동물을 단순한 소유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지난 7월 인도에서는 인간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도 동물권이 있는 법적 독립체라는 이색 결정이 나왔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에 따르면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주 고등법원은 동물 보호와 복지 관련 청원 심리에서 “새와 수생동물 등 ‘동물의 왕국’ 모든 구성원이 ‘살아있는 사람’과 비슷한 권리를 가진 법적 독립체”라고 선언했다. 인도 법원은 동물 복지 등과 관련해 진보적 판결을 내려왔지만 동물에 법적 독립체 지위를 부여한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유럽에서는 동물권이 ‘종교의 자유’에 맞서고 있다. 가축이 통증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취, 전기 충격 등으로 의식을 잃게 한 후 도축하도록 의무화한 규제를 두고 이슬람교와 유대교도들이 자신들의 율법과 규정에 맞지 않다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율법에 따라 가축을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축한다. 유대교에서도 상처 입은 고기는 먹지 않아 고압 전기봉 등을 사용한 고기는 구매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도축법이 가축에게 고통을 안겨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도와 유럽 사례 모두 동물권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멸종 위기에 처한 희귀 동물들이 차에 치이거나 포획돼 팔려나가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 말레이시아 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탄절 전날 보르네오섬 말레이시아령 사라왁 주의 한 시장에선 열다섯 토막이 난 태양곰(말레이곰) 사체가 매물로 등장했다. 태양곰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취약종이자 현지법상 포획이 금지된 동물이다. 공개된 장소인 시장에서 멸종위기종이 버젓이 팔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위해 동물들을 가둬놓는 동물원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지난 6월 폭우로 침수된 틈을 타 우리를 빠져나온 곰이 사살됐다. 같은 달 벨기에 동물원에서도 두 살된 암사자가 우리를 탈출했다가 방문객들의 안전을 우려한 동물원 측에 의해 3시간 만에 사살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9월 대전 오월드 퓨마 ‘뽀롱이’가 사육사의 실수로 탈출했다 사살되는 사건이 벌어지며 동물 생명을 경시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대전 오월드 사육장을 탈출했다 사살된 암컷 퓨마 ‘뽀롱이’가 살아있을 때의 뒷모습. 자료사진
‘죽음의 동물원’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인도네시아 사설 반둥 동물원에서는 수년 전부터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수백 마리의 동물들이 관리부실로 폐사했다. 2016년에는 야생 개체 수가 400여마리에 불과한 수마트라 호랑이가 독성물질 포름알데히드가 든 고기를 먹은 뒤 장기 손상으로 죽었다. 지난해에는 깡마른 태양곰들이 관광객들에게 먹이를 구걸하고, 심지어 자신의 대변을 주워먹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인간을 피해 밤에 먹이를 찾고 있는 동물들. 낮에 활동하는 포유동물들이 인간을 피해 야행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디언 캡처
◆ 모피·동물실험 퇴출…동물 향하는 손길들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패션 업계에서는 모피 퇴출 운동이 일고 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영국패션협회(BFC)는 지난 9월 런던패션위크 무대에서 모피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BFC의 발표에 앞서 패션 브랜드 버버리는 의류 등 상품에 진짜 모피와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아르마니, 캘빈 클라인, 후고 보스, 랄프 로렌, 구찌 등에 이어 모피 사용 중단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한때 세계 최대 여우 모피 생산국으로 불렸던 노르웨이의 보수 정부는 지난 1월, 연간 약 100만개 모피를 생산할 수 있는 여우와 밍크 농장을 2025년까지 순차적으로 폐쇄하는 데 합의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의회는 지난 9월 모피제품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조례 추진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내년부터 진품 모피를 사용한 모든 제품 판매가 금지될 예정이다.

중국 모피상.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우·밍크 등 모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모피 산업도 최근 수년간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2016년 밍크 모피 판매는 전년대비 41%가 줄었다. 한때 1만위안(약 162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던 밍크 코트는 3000위안(약 49만원)까지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모피 산업에 대한 중국 소비자들의 반감은 2005년 한 모피업자가 살아 있는 너구리의 껍질을 벗기는 현장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며 커졌다. 중국 모피 업계는 소비자의 인식을 돌리기 위해 2016년 밍크의 경우 질식이나 약물로 살해하도록 하고, 너구리나 여우는 고통 완화를 위해 전기적인 충격을 가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일부 업자들은 동물 이력을 추적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도 여전히 인도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보호단체인 중국 PETA의 궈리 대변인은 모피 산업에서 동물학대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젊은 세대들에 패션 등 어떤 형식이든 동물가죽 사용을 거부하도록 촉구했다.

개들이 동물실험을 받으러 카트에 실려가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동물실험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지난 9월 미국 주 가운데 처음으로 2020년 1월부터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수입과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 2013년부터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EU 내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의회에서는 오는 2023년까지 동물실험 화장품의 판매를 전세계적으로 금지하도록 EU가 나서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결의안을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 처리했다. 의원들은 결의안에서 아직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약 80%가 여전히 화장품에 대한 동물실험이나 동물실험을 거친 화장품의 판매를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장과 도축장 대신 실험실에서 고기를 만들어내는 ‘대안 고기’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한 대안 고기 스타트업에 투자한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창업자는 “한 30년 후면 동물을 죽일 필요도 없을 것이고 깨끗하고 맛은 똑같으면서 건강한 고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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