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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 흔들리는데…정부도 업계도 ‘땜질처방’ 급급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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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30 09:11:31 수정 : 2018-11-30 10: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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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산업과 관련된 것들이 과거 40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잘못되었기 때문에 변화하라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 하던 대로 하면 발전에 한계가 있다. 스스로 진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자생력을 잃지 않는다.”

2010년 10월 19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미래기획위원회로부터 ‘국방 선진화를 위한 산업발전전략과 일자리 창출’을 보고받으면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미래기획위원회는 △방산수출 시장 다변화 및 맞춤형 수출 정책 추진 △부품, 소프트웨어, 서비스 등으로 수출 품목 다양화 △금융지원, 정부 간 계약, 산업협력을 적극 추진해 2020년까지 방위산업 수출 및 국방기술에서 세계 7대 국가로 도약한다는 ‘국방산업 G7 전략’을 제시하며 신(新)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로부터 8년 후, 한국 방위산업은 이 전 대통령의 언급을 하나도 이행하지 못한 채 ‘카오스’ 상태를 맞고 있다. 남북 화해 분위기로 국내 무기수요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건국 이래 최대인 17조원 규모의 미 공군 훈련기(APT) 사업 수주에 실패하면서 방산업계는 침체 국면에 빠졌다.

육군 K-2 전차가 표적을 향해 120㎜ 전차포를 발사하고 있다.
현대로템 제공
◆보여주기식 정책으로는 수출 진흥 못해

현 정부의 방산수출진흥 정책은 지난 19일 방산수출진흥센터(DExPro) 신설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센터는 방사청 조직 개편에 따라 신설된 국제협력관(국장급) 소속으로 수출지원 전담조직이다. 방사청은 국방기술품질원 방산수출지원단(가칭)을 내년 상반기 신설하고 2020년 이후에는 방위산업진흥원을 만들어 방위산업 육성 지원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대사관, 재외 무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등 해외 주재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수출국 현지에서의 네트워크도 강화할 예정이다.

19일 방위사업청과 유관부처 관계자들이 방산수출진흥센터 개소식에 참석, 현판을 공개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문제는 대책의 실효성이다. 방사청이 신설한 방산수출진흥센터의 업무는 2009년 10월 KOTRA 산하에 설치된 방산물자교역지원센터(KODITS)와 겹친다. KODITS는 무기 구매국에 대한 금융지원, 수출 마케팅 지원, 현지 정보 제공, 산업협력을 포함한 패키지 딜 협상안 마련, 절충교역 지원, 정부 간 계약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DExPro가 수행할 업무와 비교해보면 판박이나 다름없다. 공무원 조직만 늘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업체의 글로벌 공급망 확대 역시 효과가 기대만큼 높지 않을 수 있다. 외국 업체에서 무기를 구매할 때 해당 업체가 기본계약금의 일정비율을 국내 업체 부품, 용역 등에 할당토록 하는 산업협력은 해외 무기도입이 절정에 달했던 이명박, 박근혜정부 당시에 시행했으면 도움이 됐겠지만, 대형 무기도입 사업이 많지 않은 지금의 현실에서 효과가 크지 않다. 오히려 국산 무기를 수출할 때 구매국이 우리 정부와 똑같은 형태의 산업협력을 요구할 경우 국내 부품업체가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있다.

비호복합체계가 공중 표적을 향해 30㎜ 기관포를 사격하고 있다.
육군 제공
무기 구매국이 방사청이나 업체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 산업협력을 요구할 경우 범정부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7월 스페인 훈련기 사업에서 스페인 정부가 훈련기-수송기 맞교환을 제의했으나 최근 언론 보도 이후에야 움직였던 전례로 볼 때 조직 개편 이후에도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외국에서 진행중인 무기개발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 부품과 기술 수출을 도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본은 자국산 P-1 해상초계기의 기술과 구성품을 해상초계기 공동개발을 검토중인 독일-프랑스에 판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방산진흥 차원에서 완성품 수출에 노력했지만 난항을 겪자 개발협력과 부품수출로 우회하는 전략을 쓰는 것이다. 터키와 캐나다도 F-35 개발에 참여, 부품 공급을 통해 자국 방위산업을 유지하고 있다.

공군 KA-1 전술통제기가 훈련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KAI 제공
◆군만 바라보던 방산업계도 자생력 확보해야

관련 지표로 본 방산업계의 상황은 위기 그 자체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한화, LIG넥스원, KAI, 현대로템 등 10대 방산기업의 지난해 방산 부문 매출액은 9조5827억원으로 전년 대비 15.98% 감소했다. 10대 방산기업의 지난해 수출액은 1조4990억원으로 전년 대비 34.5% 급감했다. 미국 군사전문지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방산기업 순위에서 2016년 19위였던 한화는 지난해 23위로, LIG넥스원은 44위에서 55위, KAI는 41위에서 66위로 떨어졌다.

방산업계의 위기는 박근혜정부 시절 방위사업 비리 수사 여파가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에 따른 군비축소를 의식한 신규 사업 중단 또는 취소 가능성과 지난 9년간 북한 도발 대응을 위한 해외 무기도입 비중 증가도 중요한 요인이다.

정부와 방산업계가 수출에 적극 나서는 것도 해외에서 활로를 찾아보려는 의도다. 하지만 정부의 힘만으로는 방위산업계의 위기 극복이 어렵다. 무기를 제작하는 개별 기업들의 능동적인 자세가 없다면, 정부 지원책은 실효가 없다.

이를 위해 분쟁지역이 아닌 국가에서의 무기도입사업에 방산업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T-50 훈련기가 경남 사천 KAI 본사 앞에 주기되어 있다.
KAI 제공
스페인 정부가 지난 7월과 이번 달에 걸쳐 제안한 KT-1, TA-50 훈련기와 A400M 수송기 맞교환의 경우 KT-1와 TA-50 제작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수리온 헬기 필리핀 판매 추진, 1000억원 규모인 인도네시아 KT-1B 3대 판매와 T-50i 개량 사업 수주 등에 대해서는 KAI 김조원 사장이 직접 나서서 언급하거나 계약을 체결했지만 1조원 규모의 스페인 훈련기 사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방산업계 소식통은 “김 사장은 방사청보다 앞서나가는 일처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KAI의 ‘방사청 눈치보기’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미 공군 APT 사업 이후 추락하던 KAI 주가를 반등시킨 요인이 스페인 훈련기 사업이라는 점은 증권가에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KAI는 스페인 훈련기 사업과 관련해 자사 항공기 성능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물론 방산수출은 계약 체결 시점까지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스페인 사업은 이미 공개된 상황인데다 전례가 없는 무기 맞교환 방식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여론의 향방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과거 KAI는 한국형전투기(KF-X), 해상작전헬기, 소형무장헬기(LAH) 사업 등에서 자사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면서 활동한 전례가 있다. 스페인 훈련기 사업에서도 KAI의 활동이 더 적극적일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방사청이 수출용 무기 개조 및 개발을 지원하지만, 제작업체가 명확한 전략과 컨셉을 갖고 수출용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산 무기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은 개발도상국은 성능보다 가격, 신뢰성을 중시한다. 분쟁 위협이 노출된 국가는 우수한 성능을 원한다.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성능을 높인 국산 무기의 스펙을 낮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성능을 높여 해외의 경쟁자들과 맞설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할 필요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K-21 보병전투장갑차의 경우 자체 도하능력을 갖추고 있다. 강이 많은 한반도에서는 적합하나 사막이나 초원이 많은 나라에서는 필요성이 낮다. FA-50 경공격기는 F-5 전투기나 A-37 공격기 대체용으로 단거리 무장만 갖추고 있어 공격력이 떨어진다. 가성비가 좋지 않은 셈이다. 미국제 무장을 쓰는 FA-50에 유럽제 중장거리 유도무기를 장착, 유도무기 플랫폼을 쓴다면 중고 F-16이나 그리펜 전투기와 경쟁이 가능하다. 유럽 MBDA의 아스람(ASRAAM) 공대공미사일이나 브림스톤 공대지미사일 등이 거론된다.

FA-50 경공격기가 경남 사천공장 생산라인에서 조립되고 있다.
KAI 제공
특히 독일-스웨덴 합작사인 타우러스시스템스가 개발중인 단축형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공군이 운용중인 타우러스 미사일(사거리 500㎞)보다 사거리가 100㎞ 정도 짧지만 지하시설 파괴 능력을 갖고 있다. F-35A나 F-15K가 북한 공군기나 전략시설을 파괴할 때, FA-50이 특작부대와 AN-2, 헬기 부대를 타격하면 북한 도발을 초반에 저지할 수 있다.

북한 위협이 존재하는 한 국산 무기 개발과 판매는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하지만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고 군사적 신뢰관계가 구축되면서 기존 전략으로는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 인민해방군의 선택을 받지 못한 무기를 생산하던 업체들 중 상당수가 적극적인 수출 전략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덕분에 중국은 세계적인 무기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수출 활성화 외에는 방산업계가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 하지만 관료적 태도와 정부에 의존하는 기업의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처럼 정부와 방산업계 모두 뼈를 깎는 수준의 자성과 전략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남북 화해 기조 속에서도 방위산업의 기반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은 도전이 필요한 시기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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