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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한·일관계 멀리, 깊게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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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9 21:16:13 수정 : 2018-11-29 21: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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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강제징용 배상판결 등에 반발/“국가 형태 갖추지 못했다” 망언도/ 양국 관계 관련 근본적 성찰 기회/ 미래로 향하는 기회의 창 열어야 한·일 관계를 언급할 때마다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16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언론인포럼이다. 2015년 한·일 일본군위안부 합의 이후 한·일 관계가 주 의제였다.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와 반성에 대해 한국 측은 진정성이 없다고 여겼고, 일본 측은 요구가 지나치다고 했다. 한 일본 언론인은 “얼마나 더 사죄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일본 정부는 한술 더 떴다. 위안부 합의 당시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 표명을 대독한 게 논란을 빚자 아베 총리 명의의 사죄 편지를 보내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베 총리 반응은 간략했다.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지난 21일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출연금으로 설립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국제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했다. 집권 자민당 회의에선 나카소네 히로후미 전 외무상이 “한국은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망언을 했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그날은 독도대첩 64주년 기념일이었다. 1954년 독도의용수비대 33명이 섬에 접근하는 일본 순시선들을 물리친 것을 기리는 날이다. 일본 초당파 의원 모임 ‘일본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은 이날 도쿄 헌정기념관에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사토 아키라 내각부 부대신은 독도에 대해 “명백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주장했다. 독도를 둘러싼 갈등을 키워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이 줄을 잇는다.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29일에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 2건 모두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일본은 ‘사법부도 한일청구권협정에 구속돼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 반발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양국 우호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것”, “폭거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방일 가능성 언급에 대해선 “제대로 된 답변을 가지고 오지 않는다면 일본에 오셔도 곤란하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런 일들이 얽히고설켜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간다. 지뢰밭에 들어선 듯 연일 뭔가 터지는 악순환에 빠져들었다. 일본이 과거사를 도외시하는 탓에 양국 관계의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 일본은 과거의 좋았던 시절과 자신의 아픈 상처만 떠올린다. 남에게 상처 준 일은 기억에서 지웠다. 그러니 공감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일본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는 저서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물론 전쟁 당시의 군인들도 모두 알고 있던 문제였다. 그러나 일본인 중 누구도 현실을 살아가면서 이 사실을 고통받는 동시대인의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새와 짐승은 슬피 울고 바다와 산도 찌푸리네/ 무궁화 피는 세상은 이미 사라졌는가/ 가을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옛일을 회상하니/ 인간 세상에 글 읽는 사람 노릇이 정녕 어려워라.” 황현이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음독 자결하기 전에 남긴 절명시(絶命詩)다. 유서에서는 선비의 양심을 지키려고 죽음을 선택한다고 했다. 국권 피탈이 어떤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 준다.

최근 한·일 간에 불거진 현안들은 일제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인권에 관한 문제다. 단기간에 외교협상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 한·일이 양국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정부는 감정 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해나가면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체계적 대처 방안을 세워야 한다. 우리에게 우호적인 국제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사죄와 반성을 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래야 청산해야 할 과거를 딛고, 함께 만들어나갈 미래로 향하는 기회의 창을 열 수 있다. 한·일 관계를 멀리, 깊게 봐야 한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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