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수찬의 軍] 북한 도발 멈추니 군 전력증강도 '멈칫'?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 디지털기획

입력 : 2018-11-28 09:31:12 수정 : 2018-11-28 09:31: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오늘은 국가핵무력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강국위업이 실현된 뜻깊은 날로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더 높이 올려 세운 위대한 힘이 탄생한 이날을 조국청사에 특기해야 한다.”
한미 공군 F-16 전투기들이 연합훈련을 앞두고 활주로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공군 제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직후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신형 ICBM을 보유하게 됐다”며 ‘핵무력 완성’을 선언, 동북아 정세를 일촉즉발로 몰고 갔다. 하지만 ‘핵무력 완성’ 선언을 기점으로 비핵화 협상으로 국면을 전환, 미국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았다. 이같은 전망은 도발 중단과 북미 대화 등이 이어지면서 적중했다는 평가다.

북미, 남북 관계 개선 기조가 1년째 이어지면서 우리 군은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다. 9.19 군사합의 이행 과정은 세세한 것까지 공개하지만 군사훈련 공개 등 무력시위는 군 매체에서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 두고 ‘싸워 이기는 군대’라는 군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해군 함정들이 서해상에서 북한 해상 침투에 대비한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해군 제공

◆무력시위는 국가 안보의 일부

북한은 올해 들어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지한 대신 2월 8일 건군절과 9월 9일 정권수립 기념일 열병식을 개최했다. 기존에는 공개 행사에 참여하지 않았던 부대를 열병식에 참석토록 하면서 신무기를 제한적으로 선보여 한미 양국을 자극하지 않고 군심(軍心)을 다독였다.

반면 우리 군은 로키 기조를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10월 1일 국군의날 70주년 열병식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의 기념행사와 6.25 전쟁 전사자 유해송환의식으로 대체됐다. 지난 5월 실시된 한미 연합 공중훈련 맥스 선더(Max Thunder)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한미 연합 키 리졸브(KR), 독수리(FE) 훈련은 공개 빈도를 최소화했다. 우리 군 단독훈련도 군 매체에서 훈련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비공개 기조가 철저히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사거리 500㎞의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타우러스(TAURUS) 시험발사를 공개하는 등 정밀타격능력을 과시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공군 F-15K 전투기가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타우러스를 표적을 향해 발사하고 있다. 공군 제공

이를 두고 군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싸워 이기는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중국, 일본 등 주변국들을 견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군 소식통은 “무력시위는 일정 수준의 군사력을 지닌 주권국가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주변국과 싸우지 않고도 억제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굳이 외면할 필요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중국 군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진입은 이같은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26일 Y-9 정찰기로 추정되는 중국 군용기 1대가 제주도 서북방에서 KADIZ에 진입, 강원 강릉시 동쪽 상공까지 북상한 뒤 이탈했다. 중국 군용기가 제주도 서북방을 통해 KADIZ에 진입, 동해로 북상한 사례는 올해 들어 일곱 번째다.

중국 군용기의 KADIZ 침범은 자국의 영향력이 동해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과시하는 무력시위 성격이 짙다. 우리 군과 정부는 중국 군용기의 KADIZ 진입에 대해 외교경로로 중국측에 항의하고 있지만 이같은 행위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강력한 공군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대외에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지속하면서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자위대를 파견, 군사력을 과시하고 있다. 해상자위대 헬기 항모 가가(かが)는 8월부터 두 달간 인도양으로 파견되어 인근 국가와 합동훈련을 실시했다. 일본은 해상자위대의 군함을 외국으로 보내 군사교류를 증진하는 전략적 기항(寄港)을 대폭 늘리면서 자국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미 공군 F-35A 전투기들이 19일(현지시간) 유타주 힐 공군기지에서 무력시위인 ‘코끼리 걸음’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공군은 19일 유타주 힐 공군기지에서 F-35A 스텔스 전투기 수십대가 꼬리를 물고 발진하는 무력시위를 했다. 미 공군 용어로 ‘코끼리 걸음’(elephant walk)이라 불리는 이 훈련은 완전무장한 다수의 공군기가 밀집대형을 이뤄 활주로를 이동하면서 최단시간 내에 잇따라 발진하는 훈련이다. 미국 공군은 성명에서 “이번 훈련은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국가 방위를 지원하기 위해 다수의 항공기를 발진시키는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 훈련 성격이 무력시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래 전력증강 청사진도 우려

더 큰 문제는 남북 화해 분위기 속에서 우리 군의 중장기적 전력증강 방향이 불확실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지난 7월 국방개혁 2.0이 발표됐지만 ‘한국군 주도의 공세적 작전개념’과 부대구조 개편 등만 거론됐을 뿐, 구체적인 전력증강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일본이 2019~2023년 중기방위력 정비계획에 F-35A 스텔스 전투기 100대 추가 도입을 반영하는 등 군사력 증강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해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26일 전군에 내린 ‘지휘서신 1호’에서 “12월 중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을 완성하고, 합동군사전략서(JMS), 합동군사전략목표기획서(JSOP), 국방중기계획 등을 통해 구체화된 국방개혁 실행 여건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구체적인 내용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2019~2023 국방중기계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월 1일 오후 충북 진천군 초평저수지에서 공군 항공구조사들이 조난 조종사 구조훈련을 하고 있다. 진천=연합뉴스

국방중기계획은 현재와 미래에 예상되는 위협과 안보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향후 5년간의 군사력 건설 및 운영에 대한 청사진으로 매년 4월을 전후로 공개된다. 올해는 예년 같으면 2020~2024 국방중기계획 초안을 완성하고 검증을 해야 할 시기인 연말이 다가오는데도 진작 발표해야 할 계획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남북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문재인정부의 국방개혁 2.0과 북한을 압박하던 박근혜정부 시절의 국방중기계획이 공존하는 모양새다. 군 소식통은 “대략적인 일정은 정해진 것으로 안다”며 “조만간 관련 절차가 마무리 것”이라고 말했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개혁 2.0을 떠받칠 국방중기계획의 실효성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고조되자 송영무 당시 국방부 장관은 기존의 한국형 3축 체계에 더해 평양을 최단시간 내 점령한다는 공세적 작전개념을 내세웠다. 이를 모두 구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인력을 줄이고 장비를 늘리는 국방개혁 2.0 실행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된다. 어마어마한 청구서가 등장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다.

당시에는 북한 도발 대응이 중요했으므로 전력증강 계획을 확대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사정이 다르다. 정부가 내년도 무기도입 예산은 올해보다 13.7% 증액했지만 경기 침체와 세수 부족 문제가 심화되면 2020년 이후의 국방예산 증액 기조가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멈추고 남북 화해 분위기에 호응하는 상황에서 북풍(北風)을 예산 증액 명분으로 내세울 수도 없다. 자칫하면 경제 분야에 우선순위를 내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해군 이지스구축함이 2014년 림팩 훈련을 위해 하와이에 기항하고 있다. 미 해군 제공
예산이 없으면 국방개혁 2.0에 기반을 둔 국방중기계획은 실행에 차질을 빚게 된다. 이 경우 기획부터 전력화까지 10~15년이 소요되는 신형 해군 함정이나 공군 항공기 도입이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예산 부족을 전제로 중장기적 전력증강 계획을 구상, 불요불급하거나 효용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신속하게 정리해 군사력 증강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남북 군축도 변수다. 내년 초부터는 남북 군사당국간 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될 예정이다. 군사공동위에서 논의될 의제 중에는 상호 군축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북미 관계가 빠르게 진전되면 남북간 군축 논의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군축이 시작되면 국방부는 국방중기계획을 비롯한 기존의 전력증강 계획을 추진할 동력을 잃을 수 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하고 안보환경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현실 속에서 대외적인 억제력을 발휘할 묘안을 국방부가 어떻게 찾아낼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