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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의인문상식] 책은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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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3 21:24:04 수정 : 2018-11-23 21:2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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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일자리… 현실과 이론은 달라/ 공방 대신 다양한 목소리 수렴해야 사람 사는 곳이 지상낙원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서 사는 곳이 지상낙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은 하루하루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고민할 것이다. 지상낙원이 되면 그렇지 않을 때 고민하던 문제야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문제가 문제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어느 시대나 어느 사회마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때는 없다. 요즘 우리나라는 일자리 창출과 출산율로 꽤 오래전부터 고민해 왔지만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일반 시민과 전문가도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정부도 대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제 사실을 몰라서 문제가 아니라고 알고 있지만 다양한 시도의 결과가 드러나지 않으니 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람마다 똑같지는 않겠지만 문제를 만나면 그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이론이나 특별한 이론을 펼치는 전문가를 찾게 된다. 일자리와 출산율이 정권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는 만큼 특정인의 감이나 즉흥적인 아이디어에 의존할 수 없으니 더더욱 이론에 의존하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이론이든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어떤 이론이 현실의 문제를 풀어주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기가 쉽다. 이러한 인식과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문제는 특정 이론이 현실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할 때 여전히 이론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로 상황을 끌어가는 데에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출산율이 높아지고 경기가 좋아 사람이 필요하면 일자리가 자연히 생기게 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출산 장려금의 액수를 올리고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출산율이 올라가기는커녕 더 떨어지고 있다. 공공부문의 고용을 늘리고 투자 환경의 개선에 의욕을 보이고 있지만 일자리 창출의 효과는 답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가 나선다고 해서 갑자기 출산율이 올라가고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사람이 나서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출산율과 일자리는 개인에게 맡겨두지 않고 공동체가 정책 차원에서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출산율과 일자리의 문제를 풀려면 이론과 현실의 관계를 성찰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론이 아무리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 그 자체일 수는 없다. 현실이 이론으로 추상화되고 개념화되는 과정에서 크게 강조되는 부분과 작게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를 ‘책은 책이 아니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이 말을 들으면 금방 왜 멀쩡한 책을 두고 책이 아니라고 하느냐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이 말은 책의 형태가 이상하고 내용이 불온하다는 뜻이 아니다. 책은 사람이 오랫동안 치열하게 사유해온 과정을 담은 물질적 텍스트이다. 하지만 책은 사람이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담을 수가 없다. 책이 일차적인 텍스트가 아니라 현실과 그 현실을 고민하는 사유가 더 일차적인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책을 읽을 때 문자에만 주목하지 않고 행간에 담긴 뜻과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살피게 된다.

출산의 환경을 나름대로 출산율이 높아지리라고 예상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환경이 아직 미흡하거나 아니면 환경의 개선이 문제 해결의 방안이 아닐 수가 있다. 일자리도 정부가 주도해서 다양한 방안을 내놓고 정책을 집행하면 고용이 늘어나리라 예상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정책적 접근이 유일한 실마리가 아닐 수 있다. 환경과 정책보다 미래의 전망이 문제일 수도 있다. 미래의 전망이 어두우면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지 않다. 전망은 상황의 인식만이 아니라 신뢰의 문제이다. 환경과 정책이 개선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에 중단될 수 있고 갑자기 바뀔 수도 있다. 작은 성과와 이론을 두고 괜한 공방을 벌이기보다 현장과 현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신뢰를 쌓아 나가야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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