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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칼럼] 軍의 존재 이유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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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2 22:39:04 수정 : 2018-11-22 22:3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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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포사격 훈련 어려워지고 / 대북 경계망은 갈수록 풀어져 / 전쟁 도발에 대비하는 국방부가 / 총 대신 올리브 가지 흔들어서야 평화의 시대다. 남녘의 대통령도, 북녘의 독재자도 모두 평화를 얘기한다. 바야흐로 평화는 이 땅에서 최고의 유행어로 등극했다. 세상에 평화를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자유, 번영, 희망, 행복 등 모든 가치가 평화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니 말이다. 그러나 다들 평화를 원하지만 정작 그것을 지킬 수단에 관해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적다.

평화를 담보하는 것은 굳건한 안보다. 안보가 빠진 평화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안보는 그것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 없이는 존립할 수 없다. 그 기둥의 하나는 외교이고, 다른 하나는 국방이다. 적의 침략에 대비해 자신의 힘을 기르는 것이 국방이라면 외교는 주변국과의 우호를 통해 전쟁에 대한 억지력을 키우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두 기둥은 지금 곳곳에 금이 가고 밑동이 썩고 있다.
배연국 논설실장

먼저 외교를 보라.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터진다면 한걸음에 달려올 ‘친구의 나라’가 지구상에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6·25전쟁 때처럼 열여섯 나라의 병사들이 우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 그런 기적은 아마 다시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의 은인들을 푸대접하는 현실에서 그들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인천 자유공원에 세워진 맥아더 동상은 쇠사슬로 목이 감기고 불에 타는 수모를 겪었다. 우방국 미국의 대통령은 화형식을 당하고, 이복형까지 죽인 김정은에겐 온갖 칭송과 찬사가 쏟아진다. 성조기가 시위대에 찢겨도 경찰은 뻔히 구경만 한다. 백주 대낮에 서울 한복판에서 다반사로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배반의 언행은 이미 전 세계에 타전됐다. 그 광경을 지켜본 한 6·25전쟁 참전 노병은 “한국은 역사를 잊고 있다”고 탄식했다.

국방은 온전한가. 북한이 신형 방사포 시험을 하고 있는데도 최전방 국군은 포사격 훈련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선 감시초소(GP) 폭파 쇼가 벌어진다. 휴전선 일대엔 북 도발을 감시할 항공 정찰까지 금지된다고 한다. 대북 경계망을 아예 풀어놓을 심산이다. 정치권력과 그에 굴신하는 한 줌의 ‘정치군인’들이 저지른 안보 농단의 실상이 이토록 참담하다.

국방은 외교와 함께 안보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지만 그 기능과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 나라의 안녕을 위해 외교관은 평화의 올리브 가지를 흔들지만 군인은 총을 든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로마시대의 금언처럼 군인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한다. 혹여 총 대신 올리브 가지를 흔드는 자가 있다면 그는 외교관이지 군인이 아니다. 북한은 지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지만 늑대의 습성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압박에도 핵과 미사일이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포기하지 않는 것만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들의 거짓 미소에 군마저 넋을 놓고 있다.

군은 국가의 목양견(牧羊犬)과 같은 존재다. 목양견은 양떼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을 수 있도록 항상 감시의 눈을 부릅뜬다. “개와 늑대는 원래 한 조상”이라는 궤변에 속지 않고 늑대의 살생본능을 주시한다. 늑대로부터 양을 보호하는 것이 그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만일 늑대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내려 한다면 목양견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군인은 국민이 편안히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불침번을 서는 사람이다. 국방부는 국가의 안위를 위해 전쟁의 경고음을 내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다른 17개 정부 부처들이 평화를 외쳐도 국방부만은 홀로 전쟁의 위험성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런 소임을 저버리고 ‘평화의 전령’ 흉내를 내는 것은 자기본분을 망각한 짓이다. 마치 국어 교사가 영어를 가르치고, 옷가게에서 비린 생선을 파는 격이다.

6·25전쟁 때 북한 탱크가 굉음을 내며 남하하자 젊은 군인들은 화염병을 안고 탱크 아래로 뛰어들었다. 그런 자랑스러운 국군의 후예들이 안보 무력증에 빠져 있다. 총 대신 올리브 가지를 흔드는 군대를 어찌 군대라 부르겠는가. 군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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