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기에, 가장 기발한 답변은 영국 경제학자 팀 하포드에게서 나온다. 그는 ‘경제학 팟캐스트’에서 주장했다. “에디슨의 축음기가 승자독식으로 가는 문을 열었다”고. 그렇다면 원흉은 축음기다. 불평등의 기원은 축음기 특허가 나온 1877년일 테고. 좀 어처구니없지만 그의 논증은 제법 설득력이 있다.
이승현 논설고문 |
물론 하포드는 축음기가 인간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고 보진 않는다. 그에게 축음기는 기술혁신을 상징한다. 기술 등의 각종 혁신이 현대 문명의 동력이고, 경제사회의 토대인 것이다. 양극화는 부산물 혹은 부작용일 테고.
하포드 관점으로 보면 문재인정부가 1년 반 동안 ‘공정경제’ 기치 아래 줄곧 대기업을 적대시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왜? 기업은 그릇이니까. 기술혁신을 담는 그릇, 국가 경쟁력을 키우고 국부를 일구는 그릇. 왜 그런 그릇을 못 깨서 성화인가. 양극화를 수반하는 시대 조류를 현명히 넘을 생각을 해야지. 아예 그릇이 없어서 국제 양극화의 음지에 머무르는 나라, 이를테면 북한이나 아프리카 빈국 신세가 되자는 것인가. 세계적 기술혁신 경쟁에 당당히 맞서는 글로벌 기업이 국내에 여럿 있는 것은 실로 대견한 일이다. 국가적 성취다. 선진국들도 다 국가 자산으로 아낀다. 이 땅에선 정반대다. 때리고 또 때린다. 그 거친 주먹질에 중소기업과 영세상, 민생까지 만신창이가 되지만 그조차 안중에 없다.
대체 뭔 영문인가. 대기업이 원흉이란 착각 때문이다. 진짜 원흉은 기술혁신 경쟁인데도, 국내 기업은 그 엄혹한 경쟁에 맞설 국가 자산인데도 시류가 이렇게 흘러간다. 블랙 코미디다. 심지어 기업과 인재가 줄줄이 해외로 나간다. 국가 동력을 스스로 갉아먹는 심각한 상황이다. 사회 내부 양극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 처방이 편 가르기나 일방 매도일 수는 없다. 번지수를 여간 잘못 찾은 게 아니다.
더 이상한 것도 있다. 1년 반의 난폭 주행으로 불량한 경제 지표가 양산됐는데도 정부는 외려 강경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청와대부터 그런 인상을 준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제26차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발언에서 “‘혁신적 포용국가’를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채택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9일 ‘공정경제 전략회의’에선 “함께 이룬 결과물이 대기업 집단에 집중됐고, 중소기업은 성장하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APEC 발언은 반시장 정책을 더 힘차게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기가 찰 노릇이다. 여태 아무런 교훈도 못 얻은 것인가.
양극화를 반길 사람은 없다. 필요악이라 해도 그렇다. 하지만 그것의 퇴치 혹은 최소화는 정의감만으론 역부족이다. 경제 현상을 이해하는 혜안과 성찰이 필요하다. 전문가 고언에 귀를 기울이는 진짜 포용력도 필요하다. 그런 것 없이 칼을 휘두르니 선무당이 되는 것이다. 차라리 축음기를 부술 일이다. 카세트, CD, DVD, MP3, 인터넷 등 축음기 후속탄도 때려잡을 일이다. 왜? 음악이 사라지면 양극화가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공정경제의 꽃이 필지도 모르니까.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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