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나 정부가 국민을 위해 그럴듯한 계획을 내놓아도 관련 예산이 수반되지 않으면 공염불에 그치고 만다.
보건복지부는 19일 ‘아동학대 예방의 날’을 맞아 바람직한 아동 양육법을 알리기 위해 전국 순회 강연을 개최하는 등 학대 예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갑이 얇아 제대로 쓸 돈이 별로 없다. 학대피해 아동을 조기발견하거나 뒤늦게 지원하는 예산만 있을 뿐이다. 복지부는 예방사업을 할 수 있도록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타 부처 기금이 아닌 소관부처 예산(일반회계)으로 전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권한을 쥔 기획재정부는 수년째 “어림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더구나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원래 기금의 성격상 이미 피해를 당한 아동에게 집중해야 한다. 보호기금과 복권기금은 각각 ‘아동학대 피해자 보호 및 지원’과 ‘학대피해아동쉼터 설치 및 운영’을 목적으로 소관부처에 기금을 편성한다. 아직 피해를 당하지 않은 일반 아동은 기금 사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범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걷은 돈을 일반인에게 사용한다면 기금 조성 목적에 위배돼 이 역시 문제가 된다. 아동학대를 제대로 예방하는 게 언감생심이라고 불릴 정도다.
서울대 이봉주 교수(사회복지학)는 “현재의 예산과 시스템으로는 비극적인 아동학대 사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인에 대해서는 사업별로 담당 공무원을 따로 둘 만큼 각 지자체가 신경을 쓰지만 아동은 여성, 청소년, 다문화가정 등과 한데 묶어 1∼2명에게 맡기고 있을 뿐이다. 이로 인해 복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잇단 아동 학대 사건이 사회문제화하면서 아동학대 관련 사업은 2015년에 다시 국가사업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기금 사업으로 쪼그라들어 운신의 폭이 좁다.
한 부처 관계자는 “국정과제로 주목받거나 여론의 힘이 실리지 않는 한 기재부에서는 신규 사업에 예산을 잘 주지 않으려 한다”며 “도움이 필요한 아동은 사회적인 목소리가 없고 이들을 대변해주는 부모가 없어 언제나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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