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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지식인 노예, 잘사는 노예, 못사는 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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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9 21:16:15 수정 : 2018-11-19 2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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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이상향 꿈꿀 권리 있지만/한민족이 싸우면 주변국만 이익/구한말 때 잘못 범하지 않으려면/주인의식·민족적 자긍심 높여야 어떤 민족이나 국가나 개인도 자신의 이상과 이상향을 꿈꿀 자유와 권리는 있다. 그런데 이상은 현실이 비참하면 할수록 현실과의 괴리가 커지고 공상적인 것에 매달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일제식민을 거친 해방공간에서 여러 정치세력이 각축했지만 정권을 수립한 체제는 북한의 공산사회주의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자유-자본주의)였다.

자유란 쉽게 달성되는 것도 아니고, 저절로 성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시민의식과 경제력(소득수준), 산업화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해방공간에서 한민족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와 역량이 부족했으며, 국민다수가 사회주의적 이상(평등)에 경도됐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일제에 나라를 넘겨준 조선조의 경우, 과거급제와 음서제(蔭敍制)를 통해 관리로 진출하거나 진출한 적이 있는 양반계급 5∼10%를 제외한 나머지 90∼95%의 백성은 거의 농노수준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일제식민지치하에서 근대화과정의 여러 난관에 부딪힌 한민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운동(1919년)을 일으켰으며, 이 운동은 중국의 5·4운동(1919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갑오경장(1894년) 또한 중국의 변법자강운동(1898년)의 촉발제가 됐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중국문화를 선진문화로 받들며 살아오던 종래와는 다른 문화역류가 시작됐던 것이다. 이러한 역전은 오늘날도 지속돼 중국의 산업화가 한국을 모델로 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어 일어났던 3·1운동의 33인대표 손병희 선생은 “우리가 만세를 부른다고 당장 독립이 되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겨레의 가슴에 독립정신을 일깨워주기 위해 이번 기회에 꼭 만세를 불러야 하겠소”라고 말했다.

김구 선생은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여운형 선생은 “조선독립운동은 조선인의 일시적 감정폭발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오로지 조선의 항구적 자유와 발전을 위해서이며, 나아가서는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해서이다.”

이들 선각자들의 이상은 훌륭했다. 그러나 이상을 실현하는 데는 의견이 달랐고, 국제현실은 냉엄했다. 결국 한민족은 좌우합작과 독자적인 건국의 실패와 함께 통일국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남북분단에 이르고 말았다. 6·25도 그 부산물이었다. 결국 서구가 제시한 양대 체제를 마치 정답처럼 받아들이면서 좌우당쟁을 한 결과 오늘에 이른 셈이다.

이들이 주장한 민족자결원칙, 아름다운 문화대국, 항구적 자유와 발전과 세계평화는 오늘날에도 우리의 이상임에 틀림없다. 오늘날 민족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러한 꿈을 어느 정도 달성한 것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공화국체제였으며,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산업화와 함께 거둔 미증유의 업적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이라는 모순을 보게 된다. 오늘날 한민족집단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도 바로 이 모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상과 현실은 항상 거중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을 무시하고 어느 한쪽에 완전히 치우치면 결국 편당하게 되고, 급기야 싸울 수밖에 없다. 한 민족-한 국가가 싸우면 결국 이익을 보는 것은 이웃나라이다. 한민족문화를 생각할 때 딜레마는 항상 주체성의 부족이다. “주체성을 갖자”고 고함을 친다고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평소에 역사교육과 철학훈련이 필요하다.

국민소득 3만달러의 대한민국, 절대빈곤과 함께 국가수준의 소통과 무역을 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왕조전체주의체제, 그리고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열강들. 구한말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다. 달라진 것은 남한의 경제력과 시민의식밖에 없다. 결국 이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한민족이 진로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민족의 운명이 갈리게 될 처지에 있다.

구한말 고종(高宗)은 참으로 무능한 국왕이었다.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저지하는 영일(英日)동맹체제에서 국제정세를 오판하고 러시아 편에 줄을 섰다가 결국 명성왕후를 잃고 러일전쟁의 승리로 기세등등한 일본에 나라마저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의 판단과 선택이 나라와 백성의 운명을 결정한 셈이다.

주인정신의 결여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을 판단한다면 지식인 노예, 잘사는 노예, 못사는 노예로 구분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항상 외국에서 정답을 찾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 지식인, 잘살아도 국가의식이 부족한, 방만한 생활의 부유층,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의식주해결도 제대로 못사는 빈곤층. 만약 이렇게 셋으로 갈라진 현실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하다.

국가가 붕괴하는 데 있어서 특정계층이나 몇 사람의 매국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혹시 우리는 지금도 이완용과 친일파를 비난하면서 민족 전체의 잘못과 책임을 은폐하거나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시적인 비난과 분노는 당쟁에 편승하는 일이 되기 일쑤며, 역사를 수렁에 빠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구한말과 같은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소련은 해체됐으며, 중국은 우리를 따라오고 있는 나라이다. 기죽지 말고, 민족적 자긍심을 높여야 할 것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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