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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프고 불안정한 시대, 예민해진 시민들…남녀 혐오 프레임 더 쉽게 노출 [김현주의 일상 톡톡]

입력 : 2018-11-20 06:00:00 수정 : 2018-11-20 06: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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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민국 사회 일부에서 표출되고 있는 남녀 간 증오와 혐오는 이제 개별적인 사안을 넘어 범사회적 문제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일상에서 쌓인 피해의식과 공포가 내외부 아주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바로 불거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는 유교 사상 중심의 가부장적인 문화, 빠른 사회 변화, 비효율적인 청소년 교육, 어려운 경제 사정, 청년취업난 등 여러 요인들이 축적돼 서로가 서로에 의한 피해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온오프라인상의 혐오 발언은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며 감정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이번에 서울 이수역 인근 주점에서 발생한 남녀간 폭행사건이 단순 술자리에서 벌어진 다툼에서 나아가 남녀간 성 대결 구도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는 것도 이때문입니다.

올해 2분기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으로 여성의 대규모 집회가 잇달아 열리고, 이에 대해 남성들이 반발하는 등 남녀 갈등이 표출된 가운데 또다시 남녀가 대립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직 경찰의 최종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이미 '남성혐오(남혐)', '여성혐오(여혐)'로 양분돼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여론의 관심이 높아지자 경찰은 이례적으로 초기 수사상황을 대중에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단순 폭행 사건으로 끝날 일이 남녀간 성 대결 구도로 비화한 것은 그만큼 남녀 모두 예민해져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몇 년 전부터 극우 사이트나 남성 혐오 사이트 등 온라인을 중심으로 남성과 여성 간 혐오표현이 난무하고, 심한 경우 범죄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종종 벌어지곤 합니다. 이래서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 및 발전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서로를 매도하는 집단적인 혐오 표출을 삼가야 한다며 남녀간 다툼을 무턱대고 성 대결로 몰아가서도 안 되고, 성 평등 의식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우리 사회 전체가 노력해야만 남녀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남성과 여성 일행이 주점에서 벌인 '이수역 폭행' 사건이 남녀간 혐오 논쟁으로 번지고 있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 당사자인 여성은 상대 남성들에게 폭행당해 다쳤다며 여혐 범죄임을, 남성은 여성이 남혐 발언을 하며 시비를 걸고 먼저 손으로 때렸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남녀 갈등만 커져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번 사건 이전에도 서로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남녀 갈등은 끊이지 않았고,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지속된 혐오와 반복되는 보복성 행동은 더 큰 혐오와 갈등을 부른다며 상대에 대한 증오를 멈추고, 지금 같은 혐오를 가져온 원인과 잘못된 사회구조를 함께 고민해야 되풀이되는 갈등을 끝낼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혐오는 개인 간 이슈를 넘어 여성과 남성이 상대를 겨냥한 사회적 혐오 등 집단적 혐오 표출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지난 2016년 발생한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을 여혐 범죄의 주요 사례로 꼽는다. 당시 범행을 저지른 김모씨는 경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여성에게 자꾸 무시를 당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김씨 범행이 조현병에서 비롯됐다며 여혐 범죄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강남역 일대에서는 여혐 범죄를 규탄하는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여성 차별을 멈춰야 한다는 여성들의 움직임도 온·오프라인에서 본격화됐다.

여혐 표현은 2010년대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이 사용됐다. '김치녀'(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은어)에 더해 여성의 성기마저 비하하는 용어들이 등장했다.

일베에서는 여성 사진을 게시해놓고 집단으로 조롱하는 일도 적잖게 있었다. 여혐에 대한 거부감과 여성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여성들이 길거리로 나와 대규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여성들은 남성들의 행위에 대한 '미러링'(의도적 모방행위)이라며 여혐 표현에 대응하는 남혐 표현을 인터넷과 집회 등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여성이 가해자였던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 수사가 편파적이라며 수만 명의 여성들을 거리에 모이게 한 '혜화역 시위'에서는 극단적인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남성 혐오 사이트 '워마드'에는 '한남충'(한국 남성을 비하하는 은어) 등 남성 비하 용어들이 반복적으로 오르내렸다. 홍대 몰카사건의 사진이 처음 유출된 곳도 워마드 게시판이었다.

◆서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게 남녀 혐오 논쟁의 발단

이수역 폭행 당사자로 추정되는 여성들이 남성 성기를 일컫는 비속어를 사용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혐오 논란은 더욱 불거진 형국이다.

남녀 갈등으로 번진 이수역 폭행사건을 계기로 혐오 표현이 횡행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서로를 매도하는 집단적인 혐오 표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여성이 차별받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혐오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 권위주의적 문화, 부실한 청소년 교육, 어려운 경제 상황 등 다양한 요소가 혐오를 낳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남혐, 여혐으로 갈라서서 서로 대결해서는 안 된다"며 "서로에 대한 혐오를 멈추고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한 문제의 본질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남녀 갈등으로 확산하고 있는 이수역 폭행사건을 계기로 남녀 혐오 표현이 난무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여성들은 사회적 차별 속에서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남성도 자신들을 가해자라고 생각하는 여성의 시선에 피해자라고 느낀다"며 "서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혐오와 문제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이어 "사회에서 다른 집단, 세대, 성별에 대해 자존감을 해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근본적인 경쟁 풍토부터 바꿔야 혐오가 줄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성계 "男 겨냥한 女 공격과 男의 여혐 다르게 봐야"

페미니스트를 지칭하는 말이 된 '메갈'은 '메갈리아'의 줄임말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확진자와 비행기를 탄 한국 여성 2명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낭설이 퍼지자 '한국 여자'를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여성혐오(여혐)에 대해 여성들은 격분했다.

디시인사이드 메르스갤러리에서 여성들이 억눌렸던 분노를 터트리면서 페미니즘 문학인 '이갈리아의 딸들'을 빌려 메갈리아(메르스+이갈리아)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표현이 혐오 발언으로 쓰이고 폭행까지 맞물리자 파장이 컸다. 여혐 논란이 일자 청와대 국민청원에 해당 사건의 남성 가해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게시 하루 만에 30만명 넘는 인원이 동의할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라던 여성들이 상대 남성들을 향해 '소추'라고 외치는 영상이 온라인상에 등장하자 여론은 뒤집어졌다. 여성들이 커플을 향해 '한남 커플'이라고 했다는 주장 글도 퍼졌다. 경찰은 커플의 신원을 특정한 뒤 이들이 실제로 글을 작성했는지 수사할 방침이다.

여성계는 남성을 겨냥한 여성의 공격과 남성이 내뱉는 여성혐오 표현을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남녀 간 성별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고 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쌍방폭행, 모욕죄 Yes…정당방위 인정 어려워, 특수폭행 가능성도

이수역 폭행 사건의 경위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는 가운데 수사 결과의 향방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경찰에 따르면 주점 현장에서의 말다툼 원인 제공, 말다툼이 몸싸움·쌍방폭행으로 된 최초 신체접촉은 모두 여성들이 했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지난 16일 브리핑을 열고 "당시 여성 2명이 큰 소리로 소란을 피우자 남녀 커플이 쳐다봤고, 이에 여성들이 뭘 쳐다보느냐고 하면서 1차 말다툼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업주가 여성 측에 자제할 것을 요청했고, 이 커플이 나간 후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남자 2명에게 '너희들 아직도 안 갔냐'고 하면서 2차 말다툼이 시작됐다"라며 "양쪽 말다툼 과정에서 여성 1명이 남성들 테이블 쪽으로 다가가 남성 1명이 가방을 들고 있던 손을 치면서 몸싸움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찰 발표는 현재까지 진행된 CCTV 확인과 목격자 진술에 따른 것이다. 당사자들에 대한 수사는 아직 진행되지 않은 만큼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당사자들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하면서도 일각에서 주장하는 남성들의 '정당방위'는 인정받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집단이 가담한 폭력이라 특수폭행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정당방위 성립 조건 자체가 맞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거나 상해에 이를 정도의 위협을 느꼈을 때 정도"라며 "(여성 쪽이 시작은 했지만) 정황상 남자 측이 정당방위로 대응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쌍방폭행은 맞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사 진행을 봐야 알겠지만 여성 측 피해가 심해 단순히 벌금형으로 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집단폭행이었고 일반 폭행 상해보다 더 중한 혐의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구금이나 징역형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몸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주고받은 욕설과 모욕 등도 처벌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폭행 전 상대방에게 한 욕설 등은 모욕죄 성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산이 "'페미니스트' 여혐 곡 아냐" 적극 해명 나서

래퍼 산이(본명 정산·33)가 이수역 남녀 폭행 사건을 계기로 쓴 '페미니스트'라는 곡이 논란이 되자 "여성을 혐오하는 곡이 아니다"며 해명하고 나섰다.

지난 16일 유튜브에 이 곡이 공개되자 이를 둘러싸고 누리꾼의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몇몇 래퍼가 산이의 가사를 반박하는 '디스'(Diss) 랩을 내자 곡의 취지를 분명히 밝히려 한 듯 보인다.

산이는 19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안해.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렸으면 좋겠어"라며 '팬으로 살아온 시간이 후회된다'고 자신의 생각을 묻는 오랜 팬의 글을 보고 이 글을 적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혐오하는 곡이 아니며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제가 이런 류의 메타적(경계나 범위를 넘어 아우르는 것) 소설과 영화를 좋아해 나름 곡에 이해를 위한 장치를 심어놨다고 생각했는데 설정이 미약했나 보다"라며 이 주제를 선택한 이유는 "남녀혐오라는 사회적 문제점을 강하게 야기하기" 위함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곡의 본래 의도는 노래 속 화자처럼 겉은 페미니스트 성평등, 여성을 존중한다 말하지만 속은 위선적이고 앞뒤도 안 맞는 모순적인 말과 행동으로 여성을 어떻게 해보려는 사람을 비판하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설명이 그 친구(팬)와 혹은 그 친구와 비슷한 상처를 느꼈을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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