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년 11월21일 나폴레옹이 발표한 대륙봉쇄령을 보면 그는 경제에도 안목이 있어 영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도한 것이다.
‘대륙봉쇄령’이라고 하면 어딘지 군사적 용어 같지만 그가 ‘베를린 칙령’으로 내린 그 명령의 원명은 ‘대(對)영국 무역 금지법’이니 마치 현대적인 경제 제재 용어 같다.
그 취지는 물론 수입품에 의존하는 영국의 경제를 고사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겉보기처럼 실속이 있는가는 다른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바둑인들이 흔히 말하는 “악수(惡手)가 악수를 낳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 1년 전에 있었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참패한 악수가 대륙봉쇄령이라는 악수를 낳은 셈이다.
군사학을 잘 모르는 이들의 눈에도 유럽 대륙의 항구를 봉쇄한다는 게 무리하게 비친다.
더욱이 대륙을 봉쇄하려면 이를 바다에서 지켜야 하는 파수꾼이 있어야 하는데 그 파수꾼 격인 해군이 영국 해군을 보면 기겁을 하는 판이 아닌가.
물론 나폴레옹의 기마병 같은 우수한 지상군이 대륙을 봉쇄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것은 반쪽의 봉쇄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해군이 강력한 영국은 다른 대륙과 통상을 할 수도 있었으니 결국 그것은 나폴레옹 치하의 유럽 대륙만 봉쇄한 격이 됐다.
여기에다 나폴레옹의 지배가 취약해 저항이 심한 곳을 영국 해군이 공격하자 대륙봉쇄의 그 커다란 그물은 헐거워지다 못해 찢어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전쟁이 그랬다.
여기에다 북극곰처럼 덩치가 큰 러시아는 애당초 그런 그물로 가두기 어려운 나라였다.
그래서 스페인에 투입했던 군대를 러시아 전선으로 옮기자 ‘서부전선 이상 있다’는 비명이 들려왔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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