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금주의역사 - 11월19∼11월25일] ‘대륙봉쇄령’이라는 경제제재

관련이슈 금주의 역사

입력 : 2018-11-18 21:49:51 수정 : 2018-11-18 21:49: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포병 출신인 나폴레옹은 포성이 울리는 요란한 전투에만 능한 것은 아니었다.

1806년 11월21일 나폴레옹이 발표한 대륙봉쇄령을 보면 그는 경제에도 안목이 있어 영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도한 것이다.

‘대륙봉쇄령’이라고 하면 어딘지 군사적 용어 같지만 그가 ‘베를린 칙령’으로 내린 그 명령의 원명은 ‘대(對)영국 무역 금지법’이니 마치 현대적인 경제 제재 용어 같다.

그 취지는 물론 수입품에 의존하는 영국의 경제를 고사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겉보기처럼 실속이 있는가는 다른 이야기다.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바둑인들이 흔히 말하는 “악수(惡手)가 악수를 낳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그 1년 전에 있었던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참패한 악수가 대륙봉쇄령이라는 악수를 낳은 셈이다.

군사학을 잘 모르는 이들의 눈에도 유럽 대륙의 항구를 봉쇄한다는 게 무리하게 비친다.

더욱이 대륙을 봉쇄하려면 이를 바다에서 지켜야 하는 파수꾼이 있어야 하는데 그 파수꾼 격인 해군이 영국 해군을 보면 기겁을 하는 판이 아닌가.

물론 나폴레옹의 기마병 같은 우수한 지상군이 대륙을 봉쇄할 수 있다고는 해도 그것은 반쪽의 봉쇄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해군이 강력한 영국은 다른 대륙과 통상을 할 수도 있었으니 결국 그것은 나폴레옹 치하의 유럽 대륙만 봉쇄한 격이 됐다.

여기에다 나폴레옹의 지배가 취약해 저항이 심한 곳을 영국 해군이 공격하자 대륙봉쇄의 그 커다란 그물은 헐거워지다 못해 찢어지기 시작했다.

스페인 전쟁이 그랬다.

여기에다 북극곰처럼 덩치가 큰 러시아는 애당초 그런 그물로 가두기 어려운 나라였다.

그래서 스페인에 투입했던 군대를 러시아 전선으로 옮기자 ‘서부전선 이상 있다’는 비명이 들려왔다.

양평(언론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