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짬짜미' '벼락치기' 구태 되풀이… 예산전쟁 대책 없나 [뉴스+]

입력 : 2018-11-18 18:51:03 수정 : 2018-11-18 18:51:0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현행법상 3개월간 심의 기간 두지만/ 국감 등 감안하면 한 달 남짓에 불과/ 예결 소위서 비쟁점 예산만 논의 뒤/‘소소위’·지도부 담판 의존 깜깜이 심사
여야 대결 구도 속 정책 합리성 뒷전/선거 대비한 의원들, ‘쪽지예산’ 혈안/기간 확대·회의 모두 공개 대안 거론/시민단체, 예산법률주의 도입 주장도
해마다 연말이면 어김 없이 국회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여야가 1년치 나라살림에 쓸 돈을 놓고 다투는 이른바 예산전쟁이다. 본격적인 예산정국에 접어든 지 2주가 지났는데도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 등 올해도 졸속·부실 심사 관행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쪽지 예산’ ‘카(카오)톡 예산’ 등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선심성 예산 부풀리기 등의 단어도 단골처럼 등장한다. 특단 대책을 고민하지 않으면, 매년 반복되는 예산안 처리 관행을 바로잡는 길도 요원해 보인다.

◆다투다가 ‘짬짜미’, 바쁘니까 ‘벼락치기’

국가재정법 제33조는 정부가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120일 전(9월3일)까지 국회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헌법 제54조에 따라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12월2일)에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 현행법은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넘겨받아 약 3개월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정기국회가 9월 초에 문을 열어도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 일정을 감안하면, 10월 말이나 11월 초가 돼야 본격적인 예산 정국에 돌입할 수 있다. 실제적인 예산안 심의 기간이 한 달 남짓한 것이다. 여야 간 정쟁으로 국회가 공전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협상 테이블이 가동되는 날짜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12월6일 새벽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공무원 9475명 증원과 법인세 최고세율 과세표준 구간 신설, 일자리 안정자금 확대 등의 내용이 담긴 2018년도 예산안이 통과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7일 국회회의록 시스템에 따르면, 정부 예산안의 실질적인 증·감액 규모를 결정하는 예결위 산하 예산안조정소위원회의 연 평균 가동일은 고작 15일에 불과하다. 그나마 15대 국회까지 열흘 안팎이었던 것이 18대 국회에서부터 닷새 정도 더 늘어난 결과다. 올해도 예산안조정소위 구성 자체가 지연되고 있어 ‘초치기’ 심사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예산안 법정처리 시한까지 매일 소위를 가동하더라도 2주밖에 시간이 남지 않아서다.

매년 예산안 날림 심사가 불가피하다보니 여야 간 나눠먹기식 ‘짬짜미’도 관행처럼 자리를 잡았다. 언론에 공개되는 상임위와 예결위 소위 단계에서는 비쟁점 예산만 논의한 뒤 핵심 예산은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만 참석하는 일명 ‘소소위’나 지도부 간 담판에 의존하고 있다. 논의 내용이 속기록에 남지 않는 ‘깜깜이 심사’여서 취재진은 물론 의원들도 협상과정을 알 길이 없다.

소수 정예인원만 참여하는 밀실심사가 횡행하다보니 ‘쪽지예산’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의원들이 자신의 지역구 등 이해관계와 관련된 사업예산을 반영하기 위해 상임위 간사나 예결위 소위 위원들에게 쪽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쪽지 대신 모바일 메신저를 주로 활용해 ‘카톡 예산’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났다.

정부 예산안에 없는 사업이지만, 예비타당성조사나 기초설계에 필요한 비용만 소액으로 편성했다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식의 ‘문지방 예산’도 만연해 있다.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의 경우 일단 시작하고 나면 중간에 사업을 중단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수법이다.

◆예산 따와야 ‘실세’ 등극하는 구조가 문제

잘못된 예산안 심사 관행은 우리나라의 정치구조적 문제점과 맞닿아 있다. 정당을 중심으로 한 여야 대결구도에서는 여당은 정부 예산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키려고 하고, 야당은 최대한 삭감하려는 경향을 보이기 마련이다. 또 국회의 증액 심사가 폐쇄적으로 이루어지는 탓에 정책의 합리성보다는 의원 개개인의 영향력에 따라 예산안 규모가 좌지우지되는 결과도 허다하다. 지역구 의원들은 예산을 얼마나 따내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에서 지역주민의 평가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에 쪽지든 청탁이든 ‘묻지마 예산’ 확보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예산안 처리의 투명성을 제고하려면, 제도적 개선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한국 정치는 양당이 기득권을 갖고 주고받기식 타협을 통해 적대적 상생관계를 유지해왔다”며 “국회가 정치적 기관인데 예산안 처리의 나쁜 관행을 의원 개인의 자질이나 도덕성 문제로만 접근하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예산안 심사 기간을 대폭 늘리고, 예산 관련 회의는 원칙적으로 모두 공개하는 방안이 우선 거론된다. 불과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예산안 심의를 마치는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 선진국은 3개월 이상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예산안을 살피는 게 일반적이다. 미국 의회는 대통령이 매년 2월 첫째주 월요일에 예산안을 제출하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10월 1일까지 약 8개월간 심사에 심사를 거듭한다. 예산안 협상도 우리나라처럼 당내 소수 의원이 주도하는 형태가 아니라 상·하원 공개 회의에서 결정하는 방식이다. 예산 관련 회의에서 개별 의원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이의가 제기되면 최종 판단까지 다른 의사진행 절차가 모두 중단된다.

예산안 편성-심사-의결 등 일련의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예산법률주의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예산법률주의는 예산을 법률 형식으로 의결하고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와 일본, 스위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이 채택하고 있다.

예산의 목적과 내용, 제약 등은 물론 지출 한도와 기한까지 법률 형식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이를 어길 경우 제재를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세형 경실련 경제정책팀 간사는 “예산안은 심사 이전 편성 단계부터 부처 간 알력이나 지역구 의원의 입김이 작용한다”며 “근원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헌법 개정을 통한 예산법률주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세준 기자 3ju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