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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 배려석 갈등은 여전히… "임산부 타면 양보" VS "무조건 비워둬야 한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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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7 10:30:00 수정 : 2018-11-17 10: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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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서 서울 시내까지 출근하는 길. 전날 회식으로 잠은 세 시간도 채 못잔채 새벽 여섯시 달리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몹시 피곤해 좌석에 앉아서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다. 만원인 출근 지하철에서 자리를 잡기란 하늘의 별따기. 그런데 빈자리에 눈에 띈다. 그 자리의 정체는 바로 임산부 배려석. 당신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떡하겠는가. 잠시라도 앉아서 눈을 좀 붙이다 임산부가 오면 자리를 양보해야할까? 언제 앉을지 모를 임산부를 위해 그 자리를 그냥 비워둬야 할까?

지하철로 출퇴근 혹은 등하교하는 직장인이나 학생이라면 위의 얘기에 누구나 동의할 법하다. 서울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은 2013년 도입됐다. 지하철 객차 한 칸 당 2좌석으로 총 좌석이 54개, 노약자석을 제외한 일반자석이 42개임을 감안하면 전체 좌석의 3.7%, 일반석의 4.8%인 셈이다. 그러나 5%도 채 되지 않는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도입 때부터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장 첨예한 부분은 바로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느냐 여부다.

◆‘자리에 앉아있다 임산부 타면 양보’VS ‘임산부를 위해 상시 비워둬야’

한쪽은 ‘임산부가 아니더라도 자리에 앉았다가 임산부가 탑승하면 자리를 양보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직장인 김모(32·남)씨는 “자리의 이름을 보면 말 그대로 임산부 ‘배려석’이다. 배려에는 강제성이 없는 것 아닌가. 출퇴근 시간이나 막차 시간 등 사람이 붐비는 시간엔 임산부 배려석이라도 누구든 앉았다가 임산부가 탑승하면 비켜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냥 비워두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쪽은 ‘임산부 배려석에 누가 앉아있을 경우 임산부가 양보받기 힘들기 때문에 아예 비워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임신 초기의 임산부들은 육안으로는 임신 여부를 식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들을 위해서라도 비워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아기를 출산한 뒤 직장에 복직한 이모(35·여)씨는 임산부 시절 황당한 경험을 들려줬다. 이씨는 “지하철에 탔을 때 임산부 배려석만 비어있어서 그 자리에 앉았는데, 몇 정거장 지나지 않아 한 노년 남성이 다가와 ‘임산부 맞느냐? 임산부 아니면 당장 일어나라’라고 호통을 치더라. 그래서 ‘임신 3개월인데요’라고 답하자 그 노년 남성은 ‘임신 표시를 하고 다니던지...’라고 말했다. 분명 난 내 가방에 임산부 배지를 달고 있었는데, 그 노년 남성은 배도 안나온 내가 그 자리에 앉은게 아니꼬았나보다. 그래서 그 이후론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임산부 배려석은 되도록 앉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내 임신 여부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그냥 싫었다”라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 연합뉴스
◆노약자석이 노인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는 인식 개선도 필요

일부에선 임산부들도 노약자석에 엄연히 앉을 수 있는 ‘약자’인데, 어느샌가 노약자석이 노인들의 독점석이 된 것에 불편하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노약자석의 인식만 바뀌어도 굳이 임산부 배려석으로 또다른 갈등의 불씨를 만들 필요 없다는 얘기다. 임신 4개월차인 박모(30·여)씨는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노인들의 호통을 듣고도 아무런 대꾸를 못했던 자신의 모습에 지금도 속이 상한단다. 박씨는 “일반석은 이미 만원이었고, 임산부 배려석도 누가 앉아있어 비어있는 노약자석에 앉은 적이 있다. 그런데 노년 여성이 대뜸 다가와 ‘어디 젊은 여자가 이 자리에 앉으려고 하냐. 당장 일어나라’고 호통을 치더라. 당시엔 임신 초기라 배도 그리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다 임산부 배지가 달린 가방이 아닌 다른 가방을 가져왔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워 임산부라는 사실도 말하지 못한 채 다른 칸으로 이동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노약자석의 노약자란 노인 등의 노자와 장애인, 임산부 등의 약자의 합성어인데, 어느 순간부터 노인들만을 위한 자리가 됐다. 임산부 배려석이 생기면서 임산부들은 노약자석을 이용하기가 더욱 힘든 환경이 된 것 같다. 한 객차에 단 두 자리에 불과한 임산부 배려석보다는 노약자석의 인식 전환을 통해서 임산부들이 좀 더 좌석 배려를 편하게 받는게 맞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임산부 배려석이 남혐-여혐의 기폭제가 되기도

임산부 배려석을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가운데, 최근엔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임산부 배려석이 여혐-남혐 갈등의 기폭제로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SNS 상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검색하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는 남성들의 사진을 몰래 찍어 업로드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사진엔 ‘한남’, ‘여혐민국’, ‘남자도 임신가능?’, ‘한글을 모르시나’ 등의 해시태그가 달려있다. 뿐만 아니라 ‘무개념이네’, ‘핑크색 가리려고 겁나게 애쓰네’, ‘면상에 핑크색 스프레이 뿌려주고 싶네’ 등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댓글도 찾아볼 수 있다. 남성뿐만 아니라 비임산부 여성들도 많이 앉지만, 그들의 공격대상은 오로지 남성뿐이다. 이를 두고 남성들도 ‘누가 봐도 임산부가 아닌 중년 여성, 할머니들도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다. 임산부 배려석은 사실상 여성 전용석이다’라며 맞받아치며 ‘여혐’을 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 임산부 배려를 위한 제도 및 시스템 그리고 인식 전환도 필요

보건복지부가 2016년 실시한 ‘임산부 배려 인식도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산부 중 배려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40.9%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힘들고 피곤해서’는 단 7.9%에 불과했다. 배려하지 못한 이유로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임산부인지 몰라서(49.4%)’였고, 그 뒤로 ‘방법을 몰라서(24.6%)’였다.

서울교통공사가 지난 7월19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시민 378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99.4%가 임산부 배려석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설문에 응답한 임산부 191명 중 자리를 양보 받은 적이 있는 경우는 4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임산부 3496명 중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경험이 있는 사람은 19.6%로 나타났다. 그 이유로는 ‘비워져 있고 강제가 아니라서’가 83.3%로 압도적이었다. ‘주변에 임산부가 있을 경우 자리를 양보할 의사가 있다’고 답한 사람은 89.6%였다. 배려시점에 대한 갑론을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설문조사 내용이다.

비임산부들이 임산부들을 잘 알아보도록 하는 가시적인 표식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임산부 배지와 동전지갑부터 부산-김해 경전철은 임산부 배려석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핑크 라이트’(양보 신호등)을 시범 설치했다. 비콘을 소지한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 가까이 가면 그 옆에 설치된 핑크라이트가 비콘의 신호를 감지해 깜빡이며 임산부가 있음을 알리는 방식이다. 이는 배려시점을 둘러싼 논쟁의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결책으로 손꼽힌다. 대전 지하철은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려면 자리에 있던 배려석 인형을 치우는 방법을 도입했다. 이렇다 보니 비임산부들은 인형을 치우고 앉기 민망해 자연스레 자리를 비워두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임산부들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나 시스템을 설치하기 이전에 임산부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게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임산부가 무조건 배려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구호를 외치기 이전에 임산부가 배려받아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사회 전반에 모성 친화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임산부가 좀 더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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