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직권남용’ 혐의 입증 못 하면 타격 불가피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임 전 차장을 이번 주 중 구속기소할 방침이다. 임 전 차장의 구속 기간은 이달 15일까지다. 그는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첫 구속 피의자이자 사건을 풀 열쇠를 쥔 핵심 피의자다.
검찰은 지난 사법부를 둘러싼 40개 혐의 중 임 전 차장이 가담한 것이 30개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이 그를 지난 사법부 최고위층 수사로 가기 위한 ‘길목’으로 보고 수사력을 모아온 이유다. 혐의 대부분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의 여러 혐의 중 대표격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 기업‘인 일본의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박근혜정부에 잘 보이려고 일부러 늦췄다는 이른바 ‘재판 거래’ 혐의다.
차한성·박병대 전 대법관 역시 나란히 행정처장 시절 각각 2013년과 2014년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연락을 받고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찾아가 재판 방향을 의논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실장이 “재판을 지연시켜달라”고 두 사람에게 요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법부는 대신 법관 해외 파견처 확보 및 상고법원 도입에 청와대가 힘을 보태주길 바랐다.
행정처장을 지낸 고영한 전 대법관은 이와 별도로 부산지역 건설업자의 형사사건 재판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
결국 검찰로선 지시·공모 관계를 의심받는 임 전 차장과 ‘윗선’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관건이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임 전 차장은 물론 ‘윗선’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해내지 못하면 무리한 수사를 했다며 ‘역풍’을 맞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법원의 직권남용 유죄 판례 살펴보니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는 건 법률 전문가인 검사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 특수 수사에 잔뼈가 굵은 문무일 검찰총장도 지난달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수사 검사 시절) 기소한 직권남용 사건 중 절반이 무죄였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직권남용 혐의 피고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법원은 우선 국정농단 재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거액을 출연해달라고 기업 총수들한테 요구한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도 공동정범으로 인정했다.
1심은 무죄로 판단했지만 상급심이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뒤집은 경우도 있다. 지난해 8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A중학교 교감 김모(57)씨와 보직교사 백모(49)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람은 학교운영위원회 소속 학부모의 부탁을 받고 기간제 교사를 시켜 특정 학생의 예체능 과목 성적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두 사람이 기간제 교사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봤다. 1심은 “범죄가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원심을 깨고 김씨에게 자격정지 1년, 백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지난 5월 이 같은 형을 확정했다.
앞서 3월에는 단속 과정에서 확보한 양귀비로 술을 담그려고 부하 경찰관에게 가져오도록 지시한 B경찰서 수사과장 박모(54)씨가 대법원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450만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검찰 내에선 “법원이 직권남용죄를 너무 좁게 해석하고 있다”며 “보다 폭넓게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자신의 직위로 위법한 행위를 할 때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형사처벌 조항”이라며 “이런 범죄에 대한 형사 처분을 어렵게 하는 사각지대를 넓힐 이유가 없다”고 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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