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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보다 무서운 ‘총’…매년 50만 죽음 내몰아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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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10 10:00:00 수정 : 2018-11-10 17: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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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6일 오전, 미군 B-29 폭격기 1대가 일본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다. B-29 폭격기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시민들의 머리 위에 세계 최초의 핵무기 ‘리틀 보이’(Little Boy)를 투하했다. 리틀 보이로 인해 히로시마 시민 7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방사능 피폭 등으로 이와 맞먹는 숫자의 사람들이 사망했다.

리틀 보이의 히로시마 폭격은 핵무기를 살상력이 가장 강한 무기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오늘날 리틀 보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인명을 해치는 무기가 있다. 바로 소총과 권총 등을 포함하는 소화기(Small Arms)다. 소화기에 의해 사망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매년 50만명 안팎에 이른다.

서방에서 쓰이는 5.56㎜ 소총탄은 세계 각국의 분쟁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탄약이다. 미 육군 제공
◆불법 유통 소화기가 폭력, 인명피해 유발

스위스 소화기조사센터(SAS) 자료에 따르면 민간인과 군대, 경찰 등이 보유한 소화기는 8억7500만정에 달한다. 이 중에서 군과 경찰 소유는 2억 정에 불과하다. 나머지 소화기는 민간인이 갖고 있으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채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내전이나 지역 분쟁에서 반군이 사용하는 소화기들은 대부분 불법 유통된 것이다.

치명적인 살상능력을 지닌 소화기가 불법 유통되는 것은 개발도상국의 정치적 불안정 및 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발도상국들 중에는 국정 운영에 실패해 내전이나 마약, 폭력조직의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실패 국가’가 적지 않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의 유럽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했다. 독립한 신흥 국가들은 냉전 기조 속에서 미국이나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면서 지원이 중단되자 국가 체제도 무너지고 말았다. 무정부상태로 인한 치안 부재는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국민들은 안전을 위해 무장을 할 필요를 느꼈고, 암시장에서 무기를 구입한 국민들은 반군, 민병대, 폭력조직 등으로 조직화되면서 내전을 벌였다. 영토를 관리할 주체가 사라진 국가에는 알카에다와 같은 테러조직들이 침투, 분쟁을 부추겼다.

민주주의에 기반한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도 분쟁의 원인이다. 기득권층은 폭력을 앞세워 사람들을 억압하고 이권을 독점한다. 이에 반발한 정파는 자체적으로 민병대를 조직, 정부에 맞선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국가 체제는 무너지고 국민은 불안에 떨게 된다.

내전이나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반군과 정부군, 민병대, 폭력조직 등에게 저렴하고 다루기 쉬우며 분당 300발에 이르는 화력을 보유한 소화기는 필수품이나 마찬가지다. 병사들을 훈련시킬 여유도, 첨단장비를 합법적으로 구입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내전이나 조직폭력이 있는 국가를 중심으로 불법적인 무기거래가 늘어나면, 반군과 폭력, 테러조직의 무력이 증강되면서 분쟁의 강도가 높아진다. 이는 또다른 불법 무기거래로 이어져 잔혹한 폭력사태를 유발하는 악순환이 지속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아프리카 소년병들이 AK-47 소총으로 무장한 채 이동을 위해 차량에 탑승해 있다. 게티이미지
◆불법유통 소화기는 어디서 나오나

소화기 불법유통은 암시장에서 활동하는 ‘죽음의 상인’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할리우드 영화 로드 오브 워(2005) 주인공인 ‘죽음의 상인’ 유리 올로프(니콜라스 케이지)의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 빅토르 부트의 사례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냉전 시절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이던 부트는 1990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쓸모없어진 무기를 헐값에 인수해 20년 동안 시에라리온과 라이베리아 내전 군벌들, 콩고민주공화국 반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알카에다 등에 팔아 60억달러(6조7400억원)가 넘는 순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2008년 태국 방콕에서 미국 마약단속국(DEA)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2012년 징역 25년형에 1500만 달러의 재산 몰수 명령을 받았다. 

아프리카에서 한 소년병이 AK-47 소총을 어깨에 맨 채 길가에 서 있다. 게티이미지
부트의 경우는 예외적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의 상인’이 취급하는 소화기는 최대 수t에 불과할 정도로 소규모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유통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막대한 양의 소화기가 불법유통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죽음의 상인’들은 총기점에서 구매한 소화기를 멕시코 마약밀매조직에 공급, 상당한 이익을 얻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의 무기금수조치 대상국인 소말리아에서도 매년 수천정의 소화기가 밀반입돼 반군에 유입되고 있다.

‘죽음의 상인’이 일부 국가와 손잡고 소화기 밀매에 나서기도 한다. 지난 8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전문가패널은 북한이 중개인을 통해 리비아, 예맨, 수단에 소화기를 공급하려 했다고 밝혔다.

부패도 불법유통을 부추긴다. 아프리카에서는 군인이나 경찰관들이 냉전 시절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이 지원한 소화기를 암시장에 몰래 팔아 주머니를 채웠다. 아프간에서는 미국과 독일이 정부군과 경찰에게 지급한 무기와 탄약을 부패한 관리들이 탈레반에게 몰래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라크 쿠르드 민병대 페쉬메르가 대원이 독일제 G-3 소총을 들고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국가 체제가 붕괴되면서 탈취당한 소화기도 암시장에서 밀매된다. 2003년 이라크전쟁 와중에 분실된 수백만정의 소화기 중 일부는 암시장을 거쳐 이슬람국가(IS)나 민병대 등에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과 필리핀, 미얀마, 가나 등지에서는 장인들이 수작업으로 만든 권총과 소총, 기관총, 박격포, 대전차화기가 반군이나 폭력조직에 불법 유통되는 일도 있다.

국제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소화기가 은밀히 유통되기도 한다. 2016년 3월 미 해안경비대와 프랑스 해군은 아라비아해에서 이란으로 항해하던 소형선박을 수색, AK-47 소총 3500정과 대전차화기인 RPG-7 200정, 50mm 구경 기관총 21정, 저격용 소총 64정을 압수했다. 이들 소화기는 이란에서 보내진 것으로, 이란은 예멘 내전에서 시아파인 후티 반군을 은밀히 지원하고 있으며, 레바논 무장세력인 헤즈볼라에게도 각종 무기를 제공하고 있다.

미 육군 병사가 M249 기관총으로 표적에 사격을 하고 있다. 미 육군 제공
시리아 내전의 경우 국제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한 소화기 암거래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크로아티아 등으로부터 구입한 소화기를 시리아 반군에 보냈으며, 시리아 반군은 IS를 비롯한 무장세력들로부터 무기를 사들였다. 리비아에서는 무아마르 카다피 정부 시절 반군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이 과거 정부군이 쓰던 무기를 수집, 시리아 반군에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소화기는 물론 휴대용 지대공미사일까지 넘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합법적인 무기 수출이 어려운 북한은 소화기를 비롯한 무기의 불법 유통과 판매에 적극적이다. 국영회사가 직접 거래에 나서기도 하지만 제3국 출신 무기중개상을 앞세우기도 한다. 2012년 영국인 무기중개상 마이클 레인저는 소화기 판매 위주의 사업 구조를 바꾸기 위해 북한과 접촉, 북한산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70~100대를 아제르바이잔에 판매하는 일에 나섰다가 영국 검찰에 기소되어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북한측 파트너였던 오학철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쓰던 골동품 소총부터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판매까지 가능하다며 레인저를 포섭했다. 오학철은 영국 수사당국과 유엔에 의해 신원이 드러나 제재 대상에 올랐다.

미 공군 병사가 M-4 소총으로 경계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한국의 경우 소화기 수출 내역이 공개된 적은 거의 없다. 다만 사진을 통해 필리핀, 세네갈, 피지, 페루 등의 군대가 국산 총기로 무장한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 SAS를 비롯한 국제 연구기관들은 한국이 매년 1억 달러(1100억여원)의 소화기와 탄약을 수출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1000여개 업체가 매년 수십만정의 소화기를 생산하고 있다. 정부 통제 아래 생산과 유통이 이뤄지지만, 불법 유통되는 소화기도 적지 않다. 냉전 시절부터 유통되는 중고 소화기의 숫자는 파악조차 불가능하다.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분쟁에서 쓰이는 무기가 소화기라는 점에서 소화기 통제 및 관리를 강화하지 않으면 세계의 분쟁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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