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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축복하는 마음, 저주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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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05 23:20:14 수정 : 2018-11-05 23: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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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선택의 기로에 선 한민족 / 후손에 최악의 불행·부담 줄 수도 / 南이 축복하고 싶은 마음 생기게 / 北은 성의와 예의를 먼저 갖춰야 인류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됐다. 구(舊)인류를 기점으로 하면 약 500만년도 더 됐고, 신석기시대를 기점으로 하면 1만년 정도 됐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국가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상한연대가 올라가는 추세이지만 대체로 지금부터 5000∼6000년 정도가 된다. 인류에게 종교가 발생한 것은 중기구석기의 네안데르탈인으로 보고 있다. 인류에게 언어와 예술이 발생한 것은 후기구석기 현생인류인 크로마뇽인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의 벽화는 현생인류의 작품이다. 1985년 세계유산에 등재됐던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이제 ‘알타미라 동굴과 스페인 북부의 구석기시대 동굴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확장돼 새롭게 등재됐다(2008년). 인류는 언어와 예술을 발달시키기 전에 먼저 종교를 가진 ‘호모 릴리글로수스’(Homo religlosus)였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종교적 인간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종교의 원형이라고 불리는 샤머니즘에는 남을 축복하는 주술이 있고, 남을 저주하는 주술이 있다. 전자는 백주술(white magic), 후자는 흑주술(black magic)이라고 한다. 남을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주술은 왜 생겼을까. 그것은 오늘날도 변하지 않은 인간성에 속한다. 현대과학은 신(神)을 인간이 자신을 투영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두 주술은 실은 인간의 심정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축복과 저주도 선과 악처럼 자유선택이다. 스스로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자유의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자연의 존재’라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오늘날 인류지성이 도달한 결론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왜 축복하고 저주하는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축복과 저주, 자유와 속박을 둘러싸고 한민족은 지금 집단적 선택의 기로에 있다. 우리의 선택이 후손들에게 최악의 불행과 부담을 줄지도 모른다. 이러한 때에 주인정신만큼 긴요한 것은 없다. 주인정신은 축복과 자유와 통하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역사적 지향점은 그것의 총량이 자유를 향해 있어야 축복으로 통하게 된다. 국가의 체제 유지도 좋고, 남북한 우리 민족끼리도 좋지만 그것이 자유의 증진이 아니면 가짜나 위선이나 빈곤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오늘날 남북한은 서로 축복하는 사이인가, 저주하는 사이인가. 잘사는 대한민국은 못사는 북한을 축복하고 있는 것인가. 핵을 가진 북한은 핵을 가지지 않는 남한을 저주하고 있는 것인가. 잘사는 남한을 핵을 가진 북한이 저주하는 조합이 이루어지면 한민족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핵이라는 저주의 도구는 너무 강력하기 때문에 민족적 재앙이 되기 쉽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남한이 못사는 북한을 경제적으로 축복할 수 있다면 이보다 다행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를 어떻게 실현하고 검증하느냐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분명히 잘사는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체제 보장을 받기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시켜가면서 단말마적으로 개발된 것이다. 그러기에 포기가 어려울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CVID)와 ‘완전한 체제보장’(CVIG)은 창과 방패처럼 모순관계에 있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묘책을 발견해야 하는 것이 한민족의 지적 과제이다.

어떤 사회주의든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겉으로 보면 매우 이상적이고 유혹적이기까지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두 그 이름을 배반하듯이 ‘전체주의의 흉한 모습’을 감추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즘(국가사회주의)이든, 스탈린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산사회주의)든, 남미의 여러 포퓰리즘 사회주의든 마지막에는 ‘전체주의와 빈곤’을 숨기고 있다.

본래부터 ‘세계 전체’는 칸트에 따르면 이율배반의 단어이다. 이것은 객관적인 무제약자로서 인간이 현상학적으로 다룰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체’를 역사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처럼 표방하는 것은 일종의 이상론이다. 공산사회주의도 이러한 이상론에 속하지만 소련의 붕괴에 의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 중심의 자유무역 질서에서 번영을 이루었지만, 그 번영을 공산 전체주의 패권의 부활에 힘쓰고 있다. 미·중 냉전의 성격이 미·소 냉전과 판이하게 다른 점은 중국이 ‘세계공장’으로 미국 무역체제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한 체제경쟁은 미국과 중국 패권경쟁의 종속변수로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 중국 중심의 옛 조공무역 질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자유무역 질서 속에 있으며, 그 속에서 번영을 이루었음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여기서 이탈해 중국 쪽으로 가면 경제 추락의 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경제는 이념이 아니다.

북한은 남한을 크게 오판하고 있는 것 같다.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방북한 재계 총수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폭언한 것은 조폭사회에서 습관화된 아첨의 모습이다. 남북한 교류협력의 질주를 국제공조 속에 완급조절하지 않으면 제2의 외환위기(IMF) 사태를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저주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북한은 남한이 축복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성의와 예의를 갖춰야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누가 누구에게 큰소리치고 있는가!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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