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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프라다, 노출 대신 실용 택했다

입력 : 2018-11-03 03:00:00 수정 : 2018-11-02 20: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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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서 ‘넘버 5’ 피워낸 샤넬/유행 안 타는 정체성 골몰 지방시/왕실 취향 오픈한 발렌시아가 등/예술가·디자이너 욕망 추상화/
수많은 명품 브랜드의 철학 탐색
김동훈 지음/민음사/1만8000원
브랜드 인문학/김동훈 지음/민음사/1만8000원


프라다, 지방시, 샤넬, 구찌, 스타벅스 등 명품 브랜드에 스며 있는 인문학 코드를 읽어낸다. 브랜드(brand)의 뿌리는 그리스어 ‘스티그마’다. 스티그마란 ‘뾰족한 바늘로 찌른 자국’ 또는 신분이나 소속을 나타내는 ‘표시’를 의미한다. 그리스의 한 장군이 충직한 종의 머리를 깎고 살갗에 ‘스티그마’를 새겼다. 종은 머리카락이 자라자 페르시아로 잠입했는데, 페르시아에서 반란을 꾀하라는 메시지였다. 따라서 브랜드는 새겨진 자에게 소속과 사명의 정체성을 틀 잡아 주는 도구였다. 들뢰즈는 인간 내면에 (숨은)과거를 ‘잠재력’이라 불렀다. 들뢰즈는 잠재력은 감각으로 자극받을 때 실현된다고 했다. 브랜드는 바로 잠재력의 소산이며 자극을 통해 드러난다.

골목마다 전단지를 뿌리고 다니던 선동가 프라다 미우치아는 쓰러져가는 가업을 갑자기 물려받았다. 미우치아는 창업자 프라다의 손녀딸이다. 그녀는 명품소비를 혐오하는 사회당원이자 극단적 페미니스트였다. 당시 많은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육감적인 몸을 드러내려고 애쓴 반면, 미우치아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런 경향은 당시 패션 경향을 파괴하는 행위였다. 특히 가죽 대신 실용적이고 튼튼한 군용 소재 ‘포코노나일론’으로 백팩과 토트백을 만들었다. 이 제품이 세계 각국 백화점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프라다는 일약 명품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그녀가 기존 질서에 저항한 페미니스트였기에 프라다만의 독특한 소재와 전략을 만든 것이다. 비로소 그녀의 잠재력이 꽃을 피운 것이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리틀블랙드레스 차림의 오드리 햅번
프랑스 명품 패션 지방시는 시대 흐름을 타지 않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지방시는 중세 고딕 스타일을 꾸준히 유지하며 정체성을 지켰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 오드리 헵번이 입어 유명해진 ‘리틀 블랙 드레스’에는 이런 지방시 브랜드 철학이 담겼다.

디자이너 샤넬은 연인 카펠이 사고로 죽자 절망에 빠졌다. 그녀에겐 수녀원에 내맡겨져 고아로 자란 불우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녀는 수녀들이 가꾸던 시나몬, 레몬 등의 향기를 기억해 내고 ‘넘버 5’라는 기막힌 향수를 만들어낸다. 섹시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침대에서 뭘 입느냐는 기자 질문에 ‘넘버 5’ 몇 방울이라고 답한 장면은 유명하다. 

영화에서 샤넬 No.5를 말한 마릴린 먼로는 유명 브랜드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세네카는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했다. 디자이너들은 자연 예술가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끌어낸다. 발렌시아가는 엘 그레코, 수르바란 같은 스페인 화가들에 대한 경외감을 패션으로 표현해냈다. 발렌시아가는 3세기도 더 지난 왕실 의상을 세상 밖으로 끌고 나와 시민에게 입혔다. 그의 스페인 취향은 극적 효과를 보였는데 그것은 신비감이었다. 신비하면서도 단순한 의상들이 탄생한다.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자코메티, 에른스트, 달리 같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패션으로 승화시킨다.

책에는 장인정신과 자연주의를 내세우는 구찌, 고객을 유혹해 매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스타벅스’의 세이렌 로고, 메두사를 내세운 패션 규범의 파괴자 ‘베르사체’ 이야기가 차례로 소개된다. 명품 브랜드뿐 아니다. 접속의 지배자 ‘아마존’, 진의 대명사 ‘리바이스’, 색채의 향연 ‘베네통’ 등 명품 브랜드는 남다른 가치로 접근한다. 저자는 “예술가들과 디자이너들은 각자의 욕망을 추상화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 창의력의 신비는 이것”이라고 풀이한다. 고전 철학 등 인문학을 전공한 학자가 이 책을 썼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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