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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는 많이 싸워야 했다… 등 돌리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입력 : 2018-11-02 03:00:00 수정 : 2018-11-01 20: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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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효환 4번째 시집 ‘너는’ 펴내
“너는, 나는/ 많이 싸웠어야 했다/ 불확실한 위험과 시련에서/ 등 돌리지 말고 도망치지 말고/ 그 차오르는 말들을/ 그 세세한 기억들을/ 그 기적 같은 감정을 지키기 위해/ 한때 가까웠던 우리는/ 더 많이 더 열렬하게 싸워야 했다// 아무 데도 없으나 어디에나 있는/ 너라는 깊고 큰 구멍”

곽효환(51∙사진) 시인은 네 번째 펴낸 시집 ‘너는’(문학과지성사)의 표제작에 ‘너’는 “아무 데도 없으나 어디에나 있는 깊고 큰 구멍”이라고 썼다. 간절하게 너와 하나가 되고 싶은 열망은 늘 가득하지만 시인의 말처럼 “너는,/ 타자이면서 우리이다./ 시원이면서 궁극인 너는/ 끝내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타자이다.” 그렇다고 너에게 가려는 나의 의지마저 포기해야 하는가.

“더 가까이 더 깊숙이/ 서로가 서로의 몸을 파고들며 견디어온/ 돌의 뼈대에는 단단한 시간의 문양이 있다/ 수많은 바람이 실어 오고 실어 간/ 풍경과 삶이 물결치는 세월의 무늬가 있다”(‘돌의 뼈’)

시인은 ‘돌의 뼈’를 부러워한다. 더 깊숙이 서로의 몸을 파고 들어 서로가 뼈가 되어주는 지극한 상태를, 일상에서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그 비원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시인이 ‘곡선의 힘’에 마음이 가는 것도 다 이런 배경 때문일 터이다. “바람 불 때마다/ 큰일 있을 때마다/ 뿌리부터 이리저리 구부러진/ 보잘것없는 못난 나무들의 힘/ 곡선과 곡선이 지탱하는 견고한 중심을 본다/ 수없이 휩쓸고 지나간 눈과 비와 서리/ 그리고 흩어지고 굴곡진 삶들/ 그 중심을 수습한 대목장의 마음을 헤아린다”

이런 마음자리는 그가 이전 시집들에서부터 찾아온 고고하고 청량한 ‘북방’에서 자주 위안을 얻는 연유로도 보인다. 그는 ‘발해 고궁지에서’ “아득히 먼 시절부터 북간도를 적시고 흐른 눈물 많은 해란강을 찾아 그리운 사람들 안부 밤새도록” 묻기도 하고, “백두고원 키 큰 나무들의 거대한 혼성군락”을 보며 ‘나무들의 동거’에서 ‘너’를 새롭게 생각도 한다. “더러는 꺾이고 휘고 쓰러지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며/ 나 아닌 너를 향해 끝없이 밀어내는 힘으로/ 모이고 품고 뒤섞여 숲이 되고 밀림이 되고/ 마침내 나무는 북방이 된다”

너라는 내 안의 타자를 향한 쓸쓸한 구애.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한때는 단단했으나 조금씩 녹아/ 어느새 부유하는 유빙의 위태로운 미련을/ 뙤약볕 아래 홀로 남아 끝내 시들고 만/ 풀 한 포기, 그 불모의 고요를/ 잠 못 드는 밤/ 격랑이 일고 폭풍이 지난 뒤의 폐허를/ 그 후에 밀려오는 것들을”(‘사랑 이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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