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오래 침묵을 지키다가 등단 28년 만인 1996년 짧은 시 35편을 담은 첫 시집 ‘죽편’을 내면서 문단 내외의 극찬을 한몸에 누린 서정춘(77) 시인. 그이를 두고 여러 시인들이 시를 썼는데 그 시들만 모아보니 무려 43편. 그의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문집 ‘서정춘이라는 詩人’(도서출판b)에 이 시들을 모았다. 시인 하종오와 조기조가 엮은 이 문집에는 이 시들과 함께 서정춘 시에 단상을 붙인 글들과 화보, 등단기, 연보도 수록했다.
사진작가 육명심이 찍은 서정춘 시인.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난폭한 세상의 말들을 순화시키는 언어의 마부가 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도서출판b 제공 |
서정춘은 전남 순천에서 가난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생후 21일 만에 늑막염 수술 끝에 겨우 살아났고 만 한 살 때는 병으로 생모를 잃었다. 9살 무렵에는 아버지가 끄는 말 구루마 앞자리에 앉아 가다가 조랑말이 내놓은 말똥 냄새가 좋았다고 일기에 썼다. 조랑말과 말방울 소리가 좋아서 자신도 마부가 되겠노라고 말했다가 아버지로부터 난생처음 뺨을 맞고 마구간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가 참 웅크리고 운다/ 말똥냄새 파고드는 것처럼 웅크리고/ 울다가, 마부 아버지 염해드리는 것처럼/ 꽁꽁 안아들이는 것처럼/ 웅크리고 울다가, 잤다. 아침 일곱 시에 깨,/ 덜 깬 술에 또 술 들어가니까 참말로/ 해장이 되는구나. 길고 긴,/ 질긴 끝 같은 간밤 울음이 도로/ 죄 풀려나온다. 아코디언, 아코디언 같다./ 웅크린 그의 등짝이 지금/ 가난만큼 최소한으로 준다.”(문인수, ‘서정춘’)
“그 시절 사는 게 모두 어려웠지만 정춘이 형 순천 중앙극장 목소리 고운 장내 아나운서 꼬드겨 밤기차 타고 서울로 서울로 도망치던 때의 콩닥이던 심정은 어떠했을까. 청계천이라나, 하여간 썩은 물 흘러가던 시커먼 판자촌 사글셋방에 이불 짐 부리고 담배 한 가치 맛있게 태우고 나서 바람벽 기대어 떨고 있는 처자에게 등 돌리며 큰소리로 외쳤다지. 여기가 이젠 내 고향!”(이시영, ‘여기가 이젠 내 고향’)
순천이 낳은 소설가 친구 김승옥의 소개로 동화출판공사에 들어가 19살 아래 이복 막냇동생 학비까지 전담하며 정년퇴직할 때까지 성실하게 가장 역할을 수행한 뒤에서야 첫 시집을 펴냈다. 그는 “황진이는 불과 5편의 시로 5백년을 살았는데 나 또한 단 한 편만이라도 죽어서 남는 시를 쓰겠다는 각오였다”고 당시 심정을 피력한 바 있다. “아무리 비루먹은 말이라도 준마로 만들었던 가난한 마부 아버지처럼 난폭한 세상의 모든 말들 또한 시인의 손으로 순화시키는 언어의 마부가 되는 게 소원”이라던 그가 죽어서도 남길 단 한 편의 후보일 법한 시 ‘죽편’.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이 시는 다른 시인에게 영감을 주어 이렇게 다시 탄생했다.
“지하철역마다 꽂아둔 푸른 깃발/ 대나무들이 나부낀다”(이상인, ‘대숲에서 지하철 타기 - 서정춘 선생님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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