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처방 없이 의료용 마약을 개인적으로 복용한 적이 있습니까?”
정부 관계자라는 사람이 집에 찾아와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과연 어떤 답변이 나올까. 투약이나 복용을 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밝혀지는 즉시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 자명한데 곧이곧대로 답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집집마다 방문해 이러한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설문조사가 실제 이뤄졌다. 결과는 당연히 제대로 나올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정부는 관련 내용 일체를 은폐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마약류 관리법)에는 (제51조의3)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 법의 적절한 시행을 위하여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실태조사를 5년마다 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2009년 처음으로 해당 조사를 시행했지만, 당시에는 수감 중인 마약류 사범에 국한됐고 5년 뒤 두 번째 조사에서 일반 가구로 범위를 확대한 것이었다.
조사 대상으로 인천 지역이 낙점됐지만, 그 이유는 보고서에 나와 있지 않았다. 법무부의 2017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인천 지역(지검)의 마약류 사범은 1425명으로 전체(1만4123명)의 10.1%를 차지했다. 이는 경기(수원지검·16.3%), 서울(12.4%), 부산(10.4%)에 이어 전국 4위에 해당했다. 전국적으로 가장 심각한 지역도 아니었던 것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당시에 인천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도 그렇고, 전국이 아닌 특정 지역에서 조사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의제기가 상당했다”고 전했다.
조사를 시행한 전문가들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가구 방문에 앞서 통·반장과 협조해 사전 방문을 했고, 가구당 최대 10회 이상 방문한 곳도 많았다. 조사 기간이 2개월 정도로 길어진 것도 이러한 탓이었다. ‘실제로 조사 진행 과정에서 마약 관련 질문들에서 다소의 무응답이 발생하였고 응답자 편향이나 오류가 충분히 있었을 수 있다’ 등 보고서상에도 무리한 조사였음을 인정하는 문구가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공무원 및 해당 전문가들은 법적으로 정해진 사항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겠지만 미국 등 해외의 사례를 차용하기에 급급했을 뿐 국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거나 반영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4년도 실태조사는 실제로 이뤄졌지만, 이후 어떠한 정부 기록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실태조사를 하라고만 했을 뿐, 공개하라는 것에 관해서는 규정이 돼 있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복지부 관계자는 “2016년부터 정신질환 실태조사에 포함돼 진행되는 것으로 바뀌어 내년도 조사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2016년 정신질환 실태조사에서도 2009년 실태조사에 대해서는 언급돼 있지만 2014년도의 조사는 누락돼 있었다.
정춘숙 의원은 “보건당국이 행정편의주의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마약류 사용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과 함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조사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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