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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신과 인간·기계, 그리고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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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2 22:28:08 수정 : 2018-10-22 22: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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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자본·사회주의, 세속화 빠져/자연 황폐화하는 ‘인간신’ 숭상/기계중심주의, 출산에 부정적 영향/모성성에 귀 기울여야 평화 이룩 근대의 초엽에 칼 마르크스는 “신이 없다”고 주장했고,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무신(無神)의 이름 속에 ‘평등의 신’을, 니체는 초인(超人)의 이름 속에 ‘자유의 신’을 숨겼을지도 모른다. 신에 대한 철학적 논쟁은 말의 논리와 수사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인간의 말에 따라 신의 유무와 생사가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학적으로도 인간은 지구 상에 출현하고부터 신을 섬기며 살았다. 그런 점에서 신과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간을 위해 신이 생겨났다고도 말할 수 있다. 세계는 지금 ‘자유의 신’과 ‘평등의 신’이 마지막 결전을 하고 있는 형국인지도 모른다. 자유와 평등, 신과 인간 중 어느 쪽을 먼저 내세워야 ‘진정한 사랑의 신’에 도달할 것인가. 역사적으로 인간중심을 내세우는 종교가 인간의 평화와 복지를 실현했다는 증거가 없다.

한편 도구적 인간의 특성은 오늘날 기계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스스로 기계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기계를 이용하면서도 기계에 정복당하지 않는 인간성의 유지를 위해 스스로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인간은 또한 기계와 대척점에 있는 존재로서 신을 재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의 위기는 인간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종교가 세속화된 지는 오래기 때문이다. 서양기독교의 창조적 신관은 제조적 신관의 속성으로 오늘에 이르러 자연과학-산업문명으로 그 힘(권력)을 드러냈다. 세계(자연)는 자연과학과 기계적 세계관으로 해석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거기서 희망과 구원을 찾고 있다. 기독교는 본래의 신을 잃어버리고 신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스스로 신을 잘 믿고 있다고 자위하고 기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종교가 절대라는 이름 속에 종교적 전체주의를, 과학과 산업이 기계적 전체주의를 숨기고 있다면 선악과 진위, 공교(公敎)와 사교(邪敎)의 구별도 무의미할 것이다. 지구촌은 지금 희대의 선령과 악령, 천사와 악마의 영혼대결을 펼치고 있다. 전체주의라는 악령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자신과 상대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항상 거짓은 달콤하고, 먼저 실행되고, 진실은 후에 드러나고, 쓰다는 점이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은 교황청미사 특별연설에서 기독교 성경 시편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 “한반도에서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보편종교임을 자랑하는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만남을 중재했다.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느냐”고 묻자 교황은 “대통령께서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나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데 교황청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은 19일 교황청뉴스를 통해 “교황의 북한 방문은 열려 있지만 공식화하려면 더 지켜보아야 한다. 구두로 관심을 보인 첫 단계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언론의 성급한 보도에 대해 약간의 제동을 건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때 해방신학이 풍미한 아르헨티나 출생이고, 러시아 동방정교회와 화해를 청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전향성을 읽을 수 있지만 교황의 국가 방문은 항상 사목을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고려사항이 많을 것이다. 북한의 진정한 비핵화와 개혁개방 없이 면죄부만 준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여지가 충분하다. 인류문명은 항상 그 언어 속에 거짓과 기만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에 들어 사회주의 혹은 기독교마르크시즘은 그 대표적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를 통해 “평화성의 임무는 전쟁, 정의성의 임무는 숙청, 국민사랑성의 임무는 고문, 복지성의 임무는 굶주림이다.”(제2부, 9장)고 전체주의를 경고했다.

오늘날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모두 물질주의와 세속화에 빠져 있다. 여기서 신도 예외는 아니다. 종교가 물질주의-세속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본래의 신, 진정한 하나님 주의, 우상이 아닌 신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부리고 황폐화하는 ‘인간신(人間神)’을 숭상하고 있다. 인간신은 기계신의 이름에 다름없다. 과연 신이란 무엇일까. 인간은 본래 신적 속성이 있는 존재이다. 이것을 ‘신인간(神人間)’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신인간은 자신은 물론이고, 자연의 생명력을 되살리는 지향점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배반은 기계의 선용(善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대한 종속이나 항복에 있다. 인간의 기계주의는 인간의 재생산(출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장생산에 대한 지나친 숭배는 재생산을 폄하함에 따라 오늘날 젊은이들은 결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범사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가정과 사랑을 중심으로 인간집단을 경영하지 않을 경우, 인류는 머지않아 공장에서 인간을 생산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신과 인간과 기계는 서로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연대 속에는 남성성과 가부장사회의 권력지향과 ‘전쟁의 신’이 숨어 있다. 따라서 인류가 평화를 이루려면 이들 연대를 여성성과 모성성의 비권력적인 성격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제 인간은 신 앞에 평등할 뿐 아니라 만물이 만신임을 알아야 한다. 평화는 인간의 자연성(신체성) 회복과 함께 여성성과 모성성에 귀를 기울일 때 가능성이 있다.

박정진 평화연구소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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