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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권력에 휘둘리는 기준 금리…결정권은 누구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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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2 20:27:08 수정 : 2018-10-22 20: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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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는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중앙은행인가, 정부인가, 정치권력인가. 기준금리란 일국의 금리를 대표하는 정책금리로,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의 핵심 수단이다.

그러니 기준금리는 당연히 한은이, 더 정확히는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하는 것이다. 법은 통화정책을 제대로 운용하라고 한은의 독립성도 보장하고 있다.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 중립적으로 수립되고 자율적으로 집행되도록 하여야 하며, 한은의 자주성은 존중되어야 한다”(한국은행법 3조 한은의 중립성)고 말이다.

법으로 한은의 독립성을 보장한 것은 중장기시계, 즉 긴 안목으로 운용되어야 할 통화정책이 정치권력과 정부의 단기부양책에 동원되거나 휘둘리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은, 과연 독립적인가

형식일 뿐 실질은 다른 듯하다. 결정적 순간 한은의 독립성은 법 조문상의 형식일 뿐이다. 한은이 독립적·중립적으로 기준금리를 결정하는지 의심케 하는 일들은 반복되어 왔다. 22일 박영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제기한 ‘안종범의 수첩’도 일례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압박 때문에 한은이 금리를 인하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2015년 5월 24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수첩에 ‘성장률 저하, 재정 역할, 금리 인하, 한국은행 총재’라고 적고 18일 뒤인 6월 11일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1.75%에서 1.50%로 인하했다”고 밝혔다.

이듬해인 4월 27일에는 안종범 수첩에 ‘구조조정 원칙과 방향, 양적 완화’, 4월29일에는 ‘한은 총재’, 4월 30일에는 ‘한은’이라고 적혔다. 당시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 완화’를 내걸었을 때다. 이후 40여일 뒤인 2016년 6월 9일 한은은 금리를 1.50%에서 1.25%로 내렸다.

박 의원은 2014년 한은이 금리인하를 시작할 때는 김영한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 수첩에서 비슷한 취지의 메모가 나왔다고 밝혔다. 2014년 8월 14일 김 수석 수첩에는 ‘금리 인하 0.25%↓→ 한은은 독립성에만 집착’이라는 내용이 적혔다. 박 의원은 이를 두고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인하에 대한 압박성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당일인 2014년 8월 14일 기준금리를 2.50%에서 2.25%로 0.25%포인트 인하했고 2015년 6월까지 10개월 사이 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1.50%까지 떨어뜨렸다. 그 때는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빚 내서 집 사라”는 단기부양책을 밀어붙이던 시기였다.

김 수석 메모가 적힌 한 달 뒤인 2014년 9월 21일 최 부총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이후 이주열 한은 총재와 ‘와인 회동’을 했다면서 “와인을 먹으면 다 하는 것 아니냐. 금리의 ‘금’자 얘기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라고 말해 논란을 야기했다.

기준금리 인하 압박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됐다. 친박 진영의 경제통, 이한구 의원은 출범전부터 금리인하의 군불을 땠다. 그해봄 한은은 사면초가 신세였다. 김중수 당시 총재는 “금리는 이미 충분히 낮은 수준이며 기축통화국의 양적 완화 흐름을 계속 따라갈 수는 없다”고 반복해서 강조했다. “내리면 어디까지 내리란 말인가. 원화가 기축통화인가”라고도 했다. 그러나 3월, 4월 두 번을 버티더니 5월에 결국 무릎꿇었다. 중장기 시계에서 금리인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건지, 외압의 흐름에

떼밀린 건지 알 수 없다.

박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한은을 대상으로 끊임없이 금리 인하 압박을 가했다며 “한은은 이러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금리를 인하해준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근혜 정권, 최경환 부총리의 당시 인위적인 금리 인하로 한국경제는 구조조정도 실기하고 좀비기업을 양산하게 됐다”면서 “이는 정책범죄로,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 총재인가, 금통위인가.

외압이 늘 있는 것은 아니다. 집권세력이 단기부양책을 위해 금리인하를 압박할 때와 같이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기준금리는 한은이 독립적으로 결정한다고 봐야 한다. 이 경우 금리 결정은 누가 하는 것인가. 한은 총재인가, 금통위인가.

기준금리는 금통위 의결을 거쳐 결정된다는 점에서 형식으로만 보면 당연히 금통위가 하는 것이다. 금통위는 모두 7명으로 구성되는데 의장인 총재는 의견이 3대3이 될 때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뿐이다.

그러나 이 역시 실질은 다르다. 영향력으로 볼 때 총재의 권한은 단지 N분의 1이 아니다. 2013년 봄 금리인하 압력이 거셀 때 김중수 당시 총재는 “한은 총재 뜻과 다르게 금리가 결정되는 것은 큰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준금리는 결국 금통위가 아니라 총재가 결정하는 것이란 암시였다. 금통위는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포함해 7명으로 구성되는데 5명은 각각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회 위원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국은행연합회 회장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추천권 역시 형식일 뿐이고 과거 정부를 보면 청와대에서 낙점해 내려오면 법적 추천기관은 추천하는 절차만 밟을 뿐이다.)

그래서 한은 총재의 뜻과 다르게 기준금리가 결정되는 건 한은에서 대형 사건이다. 2004년 11월 금리 결정이 ‘금통위의 반란’으로 불리는 건 그래서다. 당시 “금리가 이미 충분히 낮은 수준”이라던 박승 총재의 생각과 달리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연 3.25%로 0.25%포인트 떨어뜨렸다. 동결을 주장한 박 총재에 맞서 이성태 부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5명이 인하에 표를 던지는 ‘반란‘을 일으킨 결과였다. 박 전 총재는 “당시 주택시장이 너무 과열돼 시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줄 필요가 있어 위원들을 일대일 면담을 통해 설득했는데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대로 나왔다”고 회고했다.

참여정부(노무현정부)도 당시 추가경정예산과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고 한은이 장단 맞추듯 두 차례 금리를 인하하면서 한은 독립성이 시험대에 올랐다. 2007년 참여정부는 부동산 활성화와 금리인하를 사실상 정책 오판으로 인정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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