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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국내 방위산업 위기라는데…해법찾기 대신 ‘수수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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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1 06:00:00 수정 : 2018-10-19 21: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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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공장 앞에 T-50 훈련기가 서 있다. KAI 제공
1970년대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탄생한 국내 방위산업계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북한 위협에 대응해 군과 산업계, 학계 인력과 자원을 모아 미국 무기를 복제한 것에서 시작한 국내 방위산업은 군용 차량과 함정,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을 개발해 생산했다.

하지만 지난달 18조원 규모의 미 공군 고등훈련기(APT) 사업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록히드마틴 컨소시엄이 보잉-사브 컨소시엄에 패하면서 방위산업계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평가다.

러시아와 더불어 무기 시장의 표준 역할을 하던 미국 시장 진출이 좌절됨에 따라 KAI는 매출 증가 대신 생존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해병대 상륙기동헬기 마린온 추락사고 여파와 더불어 그나마 수출이 이뤄졌던 FA-50 경공격기 판매도 주춤하는 분위기다. 생산업체와 육군의 긴밀한 협조로 K-9 자주포가 핀란드,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등에 수출되고 성능개량이 지속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미국 공군 APT 사업에서 KAI-록히드마틴이 제안했던 T-50A 훈련기. 보잉-사브의 BTX에 밀려 탈락했다. 록히드마틴 제공
◆국내 군용기 생산 기반 붕괴 위험

KAI가 미 공군 APT 사업을 수주했다면 18조~21조원에 달하는 매출과 351대의 T-50A 생산량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록히드마틴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현지 생산해 납품할 예정이었지만, 생산에 상당부분 참여하므로 낙수(落水)효과는 충분했다. 증권가에서는 개발 단계인 2022년까지는 매년 800억원, 양산이 시작되는 2022~2035년에는 매년 5000억~6000억원 정도 매출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수주에 실패하면서 KAI는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과 가까운 우방국들이 보잉의 BTX 훈련기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측면에서 T-50은 향후 훈련기 시장에서 보잉에 주도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다. 유럽 에어버스 A-330MRTT 공중급유기가 한국, 인도, 호주 등에 수출됐으나 미국 시장에서 보잉 KC-46A에 패하면서 KC-46A가 시장지배적 지위를 확보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나마 A-330MRTT는 에어버스가 위치한 유럽 국가들이 구매해 물량을 확보했지만 T-50은 이같은 효과도 누리기 어렵다. 확정된 추가 물량은 TA-50 전술입문기 20여대, 내년부터 사업이 시작된다. TA-50 추가 생산이 끝나면 한국형전투기(KF-X)가 본격 생산될 2020년대 후반까지는 국내 물량 확보가 매우 어렵다.

수출 역시 쉽지 않다. 당초 FA-50 12대 추가 구매 가능성이 제기됐던 필리핀은 스웨덴제 그리펜 전투기 구매로 돌아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델핀 로렌자나 필리핀 국방부장관은 15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필리핀은 단가가 싸고 후속군수지원비용이 저렴한 다목적 초음속 전투기가 필요한데 미국제 F-16은 비싸고, FA-50은 성능이 제한된다”며 그리펜을 우선순위에 놓고 있음을 시사했다. 성능개량이 없다면 F-16과 그리펜의 협공을 이겨내지 못할 상황이다. 
인도네시아에 수출된 T-50i 훈련기가 이륙하고 있다. KAI 제공

국내 납품도 수출도 어렵다면 고정익 군용 항공기 생산에 참여하는 협력업체와 관련 인력이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T-50 계열 항공기 창정비가 있지만 신규 생산에 비해서는 투입되는 장비나 비용, 인력이 적다. 방위산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중소협력업체들이 민수 분야로 전환하면 선진국에 비해 취약한 항공방위산업 생태계가 흔들릴 위험이 있다. 개발과정에서 상당한 리스크를 안고 있는 KF-X가 생산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노후한 F-4, F-5의 유지 문제와 겹쳐 공군 전력 공백 사태와 항공방위산업 기반 붕괴라는 쌍끌이 위기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FA-50 경공격기가 남해안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FA-50 성능개량 등 대책 마련 필요

군과 방산업계에서는 대안으로 FA-50을 거론한다. 1990년대 국내 방위산업 진흥 차원에서 KF-16 전투기 20대 추가 생산이 이뤄진 전례를 재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 공군이 운용중인 FA-50의 성능을 개량해 공군 전력을 증강하고 해외 시장 판로 개척을 시도하자는 것이다.

FA-50은 장단점이 뚜렷한 항공기다. 빈약한 공격력은 단점이다. 사이드와인더 공대공미사일(사거리 7㎞), AGM-65 공대지미사일(사거리 22㎞) 등 근거리 무장만 운용한다. 중거리 유도무기를 운용하는 그리펜이나 F-16에 비해 불리한 대목이다.

반면 가동률은 공군 항공기 중 최고수준이다. 지난 19일 실시된 공군 국정감사에서 공군 군수사령부가 공개한 올해 1~8월 전투기 가동률 중 FA-50의 가동률은 89.3%로 나타났다. KF-16이 83.4%, F-15K가 78.4%, F-5가 81.4% F-4가 73.7%인 것과 비교하면 가장 높은 수치다. 생산공장이 국내에 있어 정비와 유지보수가 용이한 것이 높은 가동률의 원인으로 꼽힌다.
공군 FA-50을 비롯한 전투기들이 훈련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공군 제공
FA-50에 중장거리 유도무기를 장착, 유도무기 플랫폼을 쓴다면 적은 비용으로 전력증강이 가능하다. 수출 가능성을 고려, 미국제와 유럽제, 국산 무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성능개량을 실시하면 된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FA-50 성능은 인정하지만 항공무장을 유럽제로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힌 국가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선 공대공미사일로 유럽 MBDA가 개발한 아스람(ASRAAM)을 장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사거리가 60㎞에 달하며 기동성이 70G에 이르는 아스람은 대당 단가가 약 3억원 수준이다. 사거리가 길고 기동성이 높아 공대공 전투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미국 레이시온이 개발한 AIM-9X 사이드와인더도 사거리 35㎞, 대당 단가는 약 7억원 수준으로 FA-50 전투성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공대지 무장으로는 최대 사거리가 70㎞인 국산 KGGB 정밀유도폭탄이나 유럽 MBDA의 브림스톤 공대지미사일(사거리 62㎞) 등이 거론된다. 특히 독일-노르웨이 합작사인 타우러스시스템스가 소형 전투기용으로 개발중인 단축형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미사일은 공군이 현재 운용중인 타우러스 미사일(사거리 500㎞)보다 사거리가 100㎞ 정도 짧지만 지하시설을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F-15K가 타우러스 미사일을 싣고 이륙, 북한 전략시설을 파괴할 때, FA-50은 특작부대나 공기부양정, 헬기, AN-2 수송기 등 북한 비대칭전력 집결지를 타격하면 북한의 도발 의지를 초반에 꺾을 수 있다.

FA-50의 무장능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성능개량을 실시하면 영국, 프랑스 등 옛 식민 종주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개발도상국, 미국과 유럽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취하는 국가들에 대한 수출 가능성도 현재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군과 업체의 협업이다. 국내 방위산업에서 효자 역할을 하는 K-9 자주포는 육군과 생산업체인 한화지상방산의 긴밀한 협력이 없었으면 수출 활성화가 쉽지 않았다.

육군이 쓰던 중고 K-9을 창정비를 해서 핀란드에 인도하는 방식은 육군의 협력이 없었으면 이뤄지기 힘들었다. 북유럽 진출 이후 K-9은 스페인을 비롯한 복수의 국가에 추가 수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자동사격통제장치, 조종수 야간잠망경, 보조동력장치 등 운용 효율성 향상을 위해 성능을 개량한 K-9A1 자주포가 등장했으며, 무인 포탑 체계를 갖춘 K-9A2 자주포 개발도 추진중이다. 후속군수지원도 생산업체가 주도하는 성과기반군수(PBL) 방식이 적용될 예정이다.
공군 F-5E/F 전투기가 임무 수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공군 제공

공군의 경우 4~5년 동안 F-35A 스텔스 전투기와 A-330MRTT 공중급유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UAV) 도입, KF-16 성능개량 등에 막대한 예산 지출이 예정되어 있어 첨단 항공기 신규 도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항공기 도입이 어렵다면 제한된 예산 범위 내에서 전력증강을 시도해야 하지만 이렇다 할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노후한 F-4와 F-5를 연장 운영하기로 한 것 정도가 대안이다. 감가상각으로 따지면 ‘깡통 전투기’가 되어버린 기종을 40년 넘게 운영한다는 게 적절한 방법인지는 굳이 따져볼 필요도 없다. 공군이 전력보강을 위해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KAI도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 방산업체는 자체적으로 성능개량이나 신규 무기개발을 군에 제안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이 미처 생각지 못한 방안을 제시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효과가 있다. 국내 수요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성능이 향상된 항공기를 수출 시장에 출시해 사업을 수주하는 선순환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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