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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도, 박정희도 못벗어난 번복의 역사”…유시민은 정말 선거에 안나올까

입력 : 2018-10-20 11:00:00 수정 : 2018-10-19 20: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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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훈의 스토리뉴스] 불출마 등 번복의 정치사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은 유시민(59)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최근 “본업은 작가”라며 “어떤 공직을 맡거나 선거에 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정계복귀설을 일축했다.

유 전 장관은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된 후 ‘유시민이 유력한 차기 주자’라는 말이 나돌자 확대 재생산을 서둘러 차단한 셈이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유 작가의 말을 100%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 정치에서 수많은 정계은퇴 선언이나 선거 불출마 약속 등이 번복돼 왔기 때문이다.

◆1956년 이승만의 ‘기획된 은퇴 선언’

선거 불출마 선언과 그 번복의 출발점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이승만은 1956년 5월 ‘3대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연속 집권에 따른 권력욕 이미지가 굳어지고 국민들의 피로감이 커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이를 교묘히 넘어서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이 전 대통령이 불출마선언을 하자 “건국의 아버지를 떠나도록 놔둘 수 없다”는 관제 데모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이라며 자신의 불출마 선언을 거둬 들였다. ‘나는 싫은데 나라와 국민이 원한다’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기획작품이었던 셈이다.

1963년 8월 철원 5군단에서 열린 전역식에서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라는 전역사를 한 뒤 눈물을 감추고 있는 박정희 최고회의의장.
◆거짓말 된 박정희 혁명 공약 "군으로 돌아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은인자중 하던 군부는~"이라는 혁명공약 전문에서 5·16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6대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그는 그 마지막 6번째에서 "우리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다"라고 군복귀를 공약했다.

하지만 그와 혁명위원회의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박정희는 나중에 군으로 돌아가는 대신 "다시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라는 전역사와 함께 정치를 하고 또 했다. 그의 정치는 김재규의 총탄에 의해서만 멈춰졌던 것이다.

2004년 4월, 민자당 참패에 책임을 지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김종필.
연합뉴스
◆두번 정계은퇴 JP "정치는 허업(虛業)"

정치 9단으로 불리며 세상을 등지기 얼마 전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한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두차례 정계은퇴 선언을 했다. 그 중 한 번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 됐다는 평가다.

JP는 1968년 5월 공화당 내 일부에서 박정희 후임으로 자신을 추대하려 한 '국민복지회' 사건에 따라 공화당 의장직과 국회의원직을 내놓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그는 2년 7개월만인 1970년 12월 국무총리로 복귀했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살아 있을 땐 은퇴한 것처럼 행동해야 했다.

JP는 이후 2004년 4월 총선 참패 책임을 지고 자민련 총재직 사퇴와 함께 '정계 은퇴'를 선언,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그가 말한 ‘허업’이라는 의미를 놓고 여러 해석이 따라 붙지만, 정치인의 거짓말을 꼬집은 것이라는 설명도 있다.

1992년 12월 19일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한 DJ를 신순범(왼쪽) 의원이 눈물을 흘리며 배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계 은퇴 뒤 31개월 뒤 돌아온 DJ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92년 12월 18일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에게 패한 다음날 "오늘로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평범한 한 시민이 되겠다”며 "저에 대한 모든 평가를 역사에 맡기고 조용한 시민생활로 돌아가겠다"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지지자들의 눈물 속에 영국으로 떠났던 DJ는 2년 7개월만인 1995년 7월 18일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DJ가 비판을 예상하면서도 복귀한 것은 1995년 6월 27일 지방선거 야당 압승으로 자신을 원하는 시대적 흐름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평화적으로 정권교체에 성공, 국민의 정부를 이끌었다.

2002년 12월 이회창 전 총리가 두번때 대선도전에서 실패한 뒤 눈물의 은퇴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회창, 은퇴 5년 뒤 "좌파 정권 끝낸다"며 복귀

이회창 전 국무총리는 최대 보수당 후보로 대선에 나와 두번이나 패한 유일한 기록을 갖고 있다. 1997년 12월 15대 대선때 김대중, 2002년 12월 16대 대선 땐 노무현 후보에게 무너졌다.

이 전 총리는 2002년 12월 대선에 패한 뒤 "패배 책임은 저에게 있고 동지 여러분은 희망의 새 길을 찾아내주시기 바란다"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당내 입지가 약했던 이 전 총리는 2007년 11월 7일 "좌파정권을 바꿔야 한다"며 "꿈을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정계에 복귀했다. 그 끝은 17대 대선 3위.

2014년 7월 31일 새정치연합 손학규 고문이 "저녁있는 삶을 살겠다"라는 멋있는 은퇴선언을 하는 모습.
YTN 캡처
◆ 손학규, "저녁있는 삶" 외치며 토굴 갔다가 2년만에 돌아와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정계은퇴와 관련해 말을 주워 담았다. 손 대표는 2014년 7·30 수원 보궐선거 패배한 다음날인 31일 "저녁있는 삶을 살겠다"는 시적인 말과 함께 전남 강진 토굴로 들어갔다. 가장 로맨틱한 은퇴라는 찬사가 이어졌다.

이런 저런 유혹을 뿌리쳤던 그는 2년 2개월여가 지난 2016년 10월 20일 "정치와 경제의 새판짜기에 저의 모든 걸 바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정계 복귀를 알렸다. 

2013년 2월 유시민 전 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은퇴글.
◆ 뛰어난 상품성 유시민, 과연 버텨낼까

유 전 장관은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치적 상황에 의해 다시 소환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유시민은 정치적으로 상품성이 뛰어나고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대학시절부터 지금까지 유명인으로 지냈다. 1984년 '서울대 프락치사건'으로 구속되면서 쓴 '항소이유서'는 판사들도 돌려봤을 만큼 명문으로 온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1988년 당시 평민당 이해찬 의원 보좌관으로 정치에 살짝 발을 들였던 그는 2003년 4월 개혁국민정당 신분을 국회 재보선에서 당선(경기 고양덕양갑)됐다.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 노무현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까지 맡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에는 국민참여당,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창단 주역으로 활동했다. 모두 그의 상품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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