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우리나라에는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없다. 한국 사람이 만만하게(?) 보는 일본과 비교하면 23대 0인 셈이다. 일본인의 잇단 노벨 과학상 수상에 한국의 과학계가 낙심한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국민의 과도한 관심 때문에 과학계가 부담을 가진다는 항변도 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도 없고 항변할 필요도 없다. 일본이 한국보다 기초과학의 저변과 수준이 높은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다. 또한 국민이 노벨 과학상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좋은 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원장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
노벨 과학상을 양궁에 비유해 보자. 양궁의 과녁은 1점부터 10점까지 구성돼 있다. 과학논문인용색인으로 번역되는 SCI가 1점이라면, 노벨 과학상은 10점에 비유할 수 있다. SCI 논문에서 시작해 흔히 ‘NSC’로 통칭되는 ‘네이처’, ‘사이언스’, ‘셀’로 나아가야 한다. 이어 울프상이나 래스커상과 같은 소위 ‘프리노벨상’을 받든지 세계적인 학술정보서비스 업체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후보 명단에 올라가야 한다. 그다음 차례가 노벨 과학상이다. 처음부터 10점짜리 과녁을 맞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설령 그런 행운이 오더라도 별 의미는 없다.
한국의 양궁 실력은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누가 출전하더라도 금메달의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세계적인 수준을 갖춘 양궁 선수의 풀이 넓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를 선발하는 과정이 매우 투명하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가대표로 뽑힌 후에는 상당 기간 지독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체력, 정신력, 집중력, 대담성, 적응력 등 갖추어야 할 자질의 목록도 많다. 한국의 과학계가 양궁의 사례에서 배울 점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016년 6월에 ‘네이처’가 한국의 과학을 특집으로 다루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남한의 노벨 꿈(South Korea’s Nobel dream)’이라는 제목하에 한국이 엄청난 연구개발 투자에도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루고 있었다. 네이처의 분석은 간단명료했다. 첫째는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데 한국이 너무 단기적 성과에 집중한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한국의 연구실 구조가 위계적이어서 토론문화가 발달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국 과학의 폐부를 정곡으로 찌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은 그동안 기초연구보다는 기술개발에 초점을 두어 왔고, 일사불란한 추격을 강조해 왔다. 이를 통해 얻은 성과도 상당했다. 그러나 탈(脫)추격 혹은 창조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사실상 한국 과학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 확대, 도전적 연구과제의 추진, 중장기적 차원의 연구관리, 글로벌 연구네트워크의 구축, 선진적 연구문화의 정착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과제를 차근차근 실천하다 보면 노벨 과학상의 꿈도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송성수 부산대 교양교육원 원장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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