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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마음버스'의 보이지 않는 손…'4인4색' 목소리 기부자 이야기 [김기자와 만납시다]

입력 : 2018-10-20 08:00:00 수정 : 2018-10-20 1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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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과 토요일 각각 하루 2회와 3회로 나뉘어 서울 여의도역을 출발해 자유로를 거쳐 1시간30여분 만에 출발지로 돌아오기까지 신청자와 대상자의 ‘진솔한 대화 공간’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속마음버스’ 이야기가 지난달 나간 뒤 “타보고 싶다”를 비롯해 네티즌들의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3분간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규칙, 커튼만 치면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둘만의 대화 공간 마련 등 여러 장점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지면서 신청부터 탑승까지 최소 2주는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를 끄는 가운데, 일부 SNS에서는 연인이라면 한 번쯤은 타야 하는 데이트코스로도 지목됐다.

 

속마음버스 내부. 회차마다 두 팀(모두 4명)이 탈 수 있다. 사진=김동환 기자.


탑승자들은 제3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사연 신청자의 이야기를 읽어주는 ‘목소리 기부자’다. 신청자와 대상자는 이어폰에서 나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다. 기부자들은 봉사가 좋거나 탑승 과정에서 다른 기부자의 목소리에 감동해 자신도 누군가에게 같은 느낌을 주고 싶어서 또는 마이크와 연관된 직종에 꿈을 뒀거나 여타 이유로 목소리 기부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속마음버스 탑승 이야기를 다뤘던 세계일보는 후속 이야기를 전하는 차원에서 최근 목소리 기부에 나섰던 네 사람의 사연을 소개한다. 주인공은 SBS 공채 15기 개그우먼 민솔유씨, 신현정씨, 신서정씨 그리고 오서원씨다.

이들 모두 녹음을 오래전에 마친 상황이어서 최근 버스에 올랐다면 누군가의 목소리는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분량이 다소 많아 스크롤의 압박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목소리 기부자들의 진솔한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갈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토대로 1인칭 시점에서 각자의 사연을 재구성했다.

◆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하게 읽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친구 도움으로 어르신에게 명절 음식 배달, 노숙자 배식 봉사 등을 하면서 그동안 큰 행복을 느꼈다. 무언가를 나눌 때의 기쁨이 크다는 걸 체감하던 중 목소리 기부 참여자 모집 소식을 우연히 알게 됐다.

녹음에 2시간 이상 걸렸다. 문장의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쉴지 또 어떤 감정으로 읽어야 할지 고민했다. 사전 준비를 포함하면 시간이 더 걸린 것 같다. 피아노 앞에 스마트폰을 올려두고 작업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반복했다. 조용한 시간에 녹음해야 해서 새벽에 작업했는데, 사연 하나 정도에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살짝’ 들어간 것 같다….

당장 녹음하고 싶어서 신청했는데 원고 도착까지 한 달 넘게 걸렸다. 신청자가 많아 1~2개월 정도 걸릴 수 있다면서 나중에 전화가 오면 받아달라는 말씀을 관계자분께서 하셨다. 기부자 지원할 때 음성파일을 내야 한다. 가수 홍진영씨의 ‘사랑이 좋아’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를 녹음해서 보냈다.

녹음까지 다 마치고서 주위에 참여 사실을 밝혔다.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시작했는데 오히려 내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팔로워 중 누군가도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아서 SNS에 알렸다. 기부는 그만하고 돈을 벌라는 등의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감기도 걸리고 목이 잠겨 제대로 녹음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 성대가 갈라지고 상태가 안 좋아서 속상했다. 최대한 노력했으니 버스 타신 분들께서 잘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한 글자, 한 글자를 소중히 하려고 했다.

 
민솔유씨가 보내온 자필 소감. 민솔유씨 제공.


목소리를 들으니 묘했다. 신청자 감정에 빙의해서 읽다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어떤 사연은 녹음 후 듣고 울었다. 사랑과 진심은 서로가 느낄 수 있고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심을 다해서 읽었으니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사연은 6개였으며 모두 사랑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직접 겪지 못한 일이었지만 사연에 깃든 마음은 알 것 같았다. 배우로도 활동 중인 내게 목소리나 감정 표현하는 방법을 익힌 것 같아 도움이 됐다. 애교 섞인 사연은 목소리에 애교를 담았고, 남성분이 신청한 사연은 최대한 담담하고 묵직한 느낌을 내려 했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관련한 사연을 녹음해보고 싶었다.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은 항상 느끼지만 막상 집에 가면 싸울 때도 있어서 딸로서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목소리 기부자에게 버스 탑승권한을 우선 준다던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엄마와 타고 싶다. 엄마와 버스 타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다. 생각만 해도 코끝이 찡하다.

“오늘의 사연 신청자는 A입니다. B를 속마음버스에 초대하셨네요”처럼 원고를 읽어 나간다. 내가 누군지는 밝히지 않는다. 제3자의 목소리로 자기 사연을 들으면 객관적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예전에 이금희 아나운서님께서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고 말씀하신 적 있다. 진실한 목소리에는 엄청난 힘과 의미가 들어있다. 그런 마음이 전달됐기를 바란다.

다른 목소리 기부자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봉사는 마음만 있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행동에 옮겨야 한다. 작은 마음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 녹음하는 동안 신청자 사연에서 위로를 받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의 마음을 대변해야지 했는데 내가 행복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해봐야 느낄 수 있다. 많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동료 몇 명이 생각난다. SBS 14기 주현정 선배와 KBS에 시험을 봐서 다시 들어간 송이지씨를 목소리 기부자로 추천하고 싶다. 이런 힐링 프로젝트가 있다는 게 감사하다. 더 알려지면 좋을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 SBS 공채 15기 개그우먼 민솔유 -

◆ “속마음 터놓는 시작점이 되었기를”

속마음버스를 운영하는 공감인과 같은 커뮤니티 게시판을 이용하던 중 우연히 목소리 기부자를 모집한다는 공지사항을 보고서 참여하게 됐다. 학창시절 방송반과 연극반 경험이 목소리 기부에 큰 도움이 됐다.

목소리 기부 참여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고서 음성파일 제출까지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고, 조용한 곳에서 녹음할 필요도 있어서 주말 사무실에 나와 작업했다. 총 여섯 개 사연을 녹음했는데, 목소리가 어긋나거나 잘못 녹음되었을 때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걸렸다.

사연 신청자의 마음이 잘 반영되게 원고를 읽었다. 커플 스토리가 다섯 개 나머지 하나는 가족에게 고마움을 전달하는 어느 남성의 이야기였다. 원고의 ‘사랑한다’는 말을 잘 표현했을지 걱정된다. 아직 신청자가 탑승하지 않은 사연도 있는 것으로 안다. (인터뷰는 10월8일에 진행)

 
신현정씨가 보내온 자필 소감. 신현정씨 제공.


명랑한 글과 진중한 사연은 저마다 녹음할 때 목소리 톤이 다르다. 신청자가 직접 말씀하셨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생각했다. 목소리만 좋다고 속마음이 제대로 전달되는 건 아니다. 정확한 배경을 모르니 상황을 추측하는 선에서 원고를 파악했다. 심정을 잘 표현할 수 있게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하고 싶지만, 어려워서 망설였던 누군가 있다면 그 사람과 속마음버스 타보기를 추천한다.

목소리 기부자는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DJ처럼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신청자가 직접 말하지 못하는 내용을 읽고, 버스에 오른 두 사람의 대화에 원활함을 더해주는 연결고리 아닐까? 편지 썼던 분이 내 목소리를 듣고 ‘이게 내 마음이야’ 혹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야’라고 상대방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나는 시대에서 속마음버스는 대화라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 같다. 목소리 기부는 어렵지 않으니 관심을 조금 더 기울이고 시간을 낸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원봉사이므로 적극 권장한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목소리를 기부하셨는지 궁금한데, 노하우 공유나 정보 나눔을 위한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 - 신현정 -

◆ “목소리에 담긴 진심이 전달되기를”


어릴 때부터 라디오 DJ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 누군가의 사연을 읽고 마음을 전달해주는 기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오던 중 ‘속마음버스’ 목소리 기부자 모집 소식을 접하고 참여하게 됐다.

녹음에는 총 30분 정도가 걸렸다. 목소리 기부자 신청 메일을 보내고 몇 달 정도 기다린 후, 연락을 받고서 목소리를 담았다. 여러 이유로 처음엔 오그라들었고, 멈추지 않고 한 번에 쭉 녹음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신서정씨가 보내온 자필 소감. 신서정씨 제공.


목소리를 녹음할 때는 사연 신청자가 메시지에 담은 의도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중점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다. 사연 대부분이 연인에게 전하는 내용이었는데, 저마다 상황은 다르지만 연애하는 이들의 마음은 다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녹음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알렸다. 신기하고 색다르게 느껴진다면서 목소리 녹음이 멋있다고 반응해줘서 무척 기뻤다. 문장의 진지함이나 귀여움 등이 반영된 부분에 따라 목소리 톤에 변화를 줬다.

목소리를 녹음하면서 담은 내 진심이 사연 신청자와 동승자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사연 상에 비춰 다소 다툰 것 같았던 분들은 속마음버스 탑승을 계기로 화해하시기를 바란다. 어느새 감정이입을 하다 보니 사연이 더 잘 읽히고 재밌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난 목소리 기부 후, 버스를 탔는데 제출했던 내 사연에 다른 분의 목소리가 입혀지니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 신서정 -

◆ “사연 신청할 때의 감정을 생각했다”

봉사활동을 하고 싶지만 시간은 부족하고, 어딜 갈 수는 없어서 여러 가지를 둘러보던 중 속마음버스에서 목소리 기부자를 모집한다는 것을 알고는 참여했다.

녹음에 총 3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처음에는 목소리 기부 신청을 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서 ‘안 되나 보다’ 생각했는데 3개월 정도 지나고서 참여 연락을 받았다.

이어폰 마이크를 이용하니 잡음이 들어가지 않고 더 깔끔하게 녹음됐다. 밀폐된 곳을 찾자니 목소리가 울려 적절한 장소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목소리가 울리거나, 알지 못했던 잡음이 들릴 때마다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신청자 입장에서 이야기를 생각해보려고 했다. 글 쓸 때의 감정과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일지 연구했다.

 
오서원씨가 보내온 자필 소감. 오서원씨 제공.


목소리 기부는 큰 기쁨과 설렘을 안겨줬다. 바쁜 삶을 사느라 다른 이들의 삶은 관심 밖이었는데, 목소리 기부를 통해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의미가 깊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소통 없이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속내를 표현하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사연에 얽힌 이들에게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사랑스러웠다. 가까운 사람에게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런 면에서 더욱 적극적일 필요도 있다. 목소리 기부 참여로 받은 속마음버스 탑승권은 부모님께 드렸다.

어떤 사연을 녹음했는지는 공개하고 싶지 않다.

목소리 기부 사실을 주위에 알렸다. 음성파일을 들은 분들께서는 ‘책 읽어주는 라디오 DJ 같다’고 말씀하시더라.

글의 흐름에 따라 톤의 변화가 필요했다. 튀지 않고 적절해야 했다. 객관성을 둬야 했다. 내 목소리보다는 원고에 적힌 사연 신청자의 속마음과 이야기가 훨씬 중요하다. 신청자 의도가 잘 전달되고, 동승자에게는 그 마음이 느껴지되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해주려 노력했다.

목소리 기부는 다른 이의 삶에 행복과 희망을 전하는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한다. 참여로 내 삶에도 행복의 에너지가 생긴다. 부모님께서 속마음버스를 타신 뒤, 서로 엄청 사랑하고 이해하고 대화를 나누시게 됐다. 버스를 타셨던 날, 목소리 기부자가 나인 줄 알았다고 하셔서 많이 웃었다. 세상엔 좋은 마음씨를 지닌 기부자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다. - 버스 탑승 후 목소리 기부에 참여한 오서원 -

* 속마음버스 측에 따르면 지난 7~9월 세 달 동안 목소리 기부에 참여한 봉사자는 총 37명이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네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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