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세계일보 취재 결과 국토부는 자동차 제조사와 심평위원 간의 유착을 막기 위한 운영규정을 마련했지만 정작 심평위원에는 이를 통보하지 않아 혼란을 자초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원 선발 당시 제조사와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 대학교수들을 위촉하는 등 기존에 제기된 문제점들이 더해지면서 국토부가 자문기구에 책임을 떠넘기고 심사과정에서의 제조사 개입을 사실상 방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른다.
◆“심평위-제조사 유착 의혹…국토부 관리 소홀”
발단은 지난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인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경기 광주을)이 심평위원과 제조사 간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임 의원은 최근 5년간 심평위원 4명이 현대, 기아, 한국지엠 등 국내 자동차 제조사의 연구용역을 수주하거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대학교수 등이 제조사로부터 연구비 등을 지원받던 중 위원으로 선발돼 해당 제조사 물품의 결함 여부를 평가하고 리콜 결정을 내리는, 한 마디로 ‘선수가 심판’까지 도맡은 셈이다. 사례로 언급된 A교수는 현대·기아차 관련 심사 8건에 참여해 이 중 4건을 리콜 불필요, 2건을 리콜보다 낮은 단계의 시정조치인 무상 수리로 결정했다. 임 의원은 “심평위가 만장일치로 자문결과를 결정하는 만큼, 제조사와 심평위원 간 유착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 |
◆심평위원 “사전 통보했어야…억울”
유착 사례로 지목된 B교수는 14일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제작사와의 공동연구 중 심사 참여 등 관련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그는 위원으로 위촉된 전후로 국토부로부터 이해충돌 방지와 관련한 어떤 사항도 전달받은 바가 없다며 “운영규정을 사전에 알았으면 당연히 심사에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전문가로서 나라에 봉사해달라는 말에 심평위에 참여했을 뿐인데 제조사와 유착 관계에 있다는 의혹을 받을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과거에 운영상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위원들이)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이전에는 사회 이슈화가 잘 안 되었던 사항인데 이번에 BMW 화재사태가 불거지면서 그동안 (내부에서) 고민하지 못했던 부분이 터져 나온 것”이라며 “(지난 4월 제척 사유 신설 이후) 요즘은 심사하기 전 이해관계에 있는 위원들은 회의장을 나가달라고 사전에 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착설 처음 아냐…국토부, 심평위 개편 예고
심평위의 공정성이 도마 위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BMW 화재사태 이후 국내 리콜 시스템의 후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전·현직 심평위원의 자녀들이 유명 자동차 제작사에 다니고 제조사들이 연구용역, 해외연수 등을 제공하며 심평위원들을 ‘관리’해왔다는 폭로가 쏟아지기도 했다.
논란의 기저에는 심평위의 폐쇄적인 운영방식이 자리한다. 심평위는 위원 명단, 심사과정 등을 일체 비공개에 부친다. 국토부는 객관적인 심사를 위함이라고 설명했지만, 위원 선발 과정에서부터 제조사와 이해관계에 있는 당사자를 위촉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이에 대대적인 개편 계획을 밝혔다. 심평위를 내년 1월부터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자동차 안전·하자심사위원회)로 격상하고,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전문가 풀을 구성해 위원들을 전면 교체해 객관성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는 BMW 사태 이후 위기 대응에 주력하고 있다. 곧 개편 과정에 착수할 것”이라며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동수 기자 samenumbe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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