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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가 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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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6 21:59:56 수정 : 2018-10-16 21: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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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 때 이용훈 대법원장 / 공판중심주의 신념 행정처가 앞장 / 양승태 대법원은 李대법원의 거울 / 영장심사 강화 등 정착 전기 되길 “사법행정권 남용에 우리가 일조한 것은 아닌지….”

과거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던 어느 법조인의 말이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씨앗을 자신들이 뿌리지나 않았나 생각한다는 것이다. 양승태 대법원에 바로 앞선 ‘이용훈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한 인사다.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에서 13대 최종영까지 그렇게 강력한 법원행정처가 있었을까.

“검찰이 작성한 조서를 던져버려라.”
박희준 사회부장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6년 9월 취임 1주년을 맞은 이용훈 대법원장은 전국을 돌며 판사들에게 강력히 주문했다. 그는 “검사들이 사무실에서,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술을 받아놓은 조서가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느냐”고도 했다. 재판은 검찰 기록에 의존하지 말고 법정 공방을 통해 진실을 가려내는 절차여야 함을 새삼 강조한 것이다. ‘공판중심주의’, ‘구술주의’ 강화는 그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이 대법원장의 드라이브에 법원행정처가 전면에 나섰다. 그의 신념을 인사와 제도 개선을 통해 구현했다.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원행정처 존재가 국민들에게까지 또렷이 각인된 건 이때다.

지금이야 ‘상고법원’을 입에 담는 것조차 적폐처럼 여겨진다. 실상 상고심사부 도입을 추진한 것도 이용훈 대법원이다. 매년 4만건 넘는 대법원 사건을 줄여 상고심의 내실을 강화하기 위해서.

2011년 이명박정부에서 지명된 양승태 대법원의 반작용은 예정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비대하고 막강해진 법원행정처를 물려받았다. 대법원장이 임명권자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일까.

양승태 대법원은 이용훈 대법원의 거울이었는지도 모른다.법원행정처의 그립은 더욱 강해졌다. 거기에 방향까지 확대되었다. 내부적으로 판사들의 판결로, 외부적으로는 권력 핵심부까지.

양승태 대법원을 위한 변명을 하려는 건 아니다. 지난 6월 김명수 대법원장이 수사협조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된 검찰 수사를 통해 양승태 대법원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검찰이 사법권 남용과 관련하여 수사 중인 사안만 무려 40개에 이른다고 한다. 그제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최측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검찰청사에 불려올 날도 그리 멀지 않아 보인다.

연구회 모임 축소에서 블랙리스트,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개입 등으로 의혹을 키워온 이들도 사태가 이 상황까지 오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 검찰 손을 빌리게 된 이상 권력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바로 세우는 과정이 되길 바랄 뿐이다.

역설적이게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이 이용훈 대법원에서 추진한 핵심 과제를 정착시켜줄 듯하다. 바로 영장 심사 강화와 불구속 재판 확대다.

법원은 이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지난달 말까지 청구한 압수수색영장(장소 기준) 208건 중 185건을 기각했다. 90%에 가까운 기각률이다. ‘주거의 안정과 평온을 해칠 수 있다’, ‘범죄가 소명되지 않았다’, ‘법원이 자료를 임의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는 등 이유를 들었다.

이번 수사에서 검찰이 처음으로 신청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양승태 대법원에서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낸 유해용 변호사에 대한 영장이었다. 법원은 유례 없이 3600여자에 이르는 기각사유를 밝혔다.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검찰이 “영장실질심사가 아니라 본안 재판을 하는 것이냐”고 반발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영장이 법원에서 너무 쉽게 발부됐던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 1개로 휴대전화기에서 범죄와 상관없는 내용까지 모조리 확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신구속도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같은 이유보다 수사 편의와 피의자 응징 목적으로 활용된 측면이 강하다. 억울한 구속도 많다.

법원의 잇단 영장 기각을 굳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불구속 재판 원칙과 공판 중심주의는 우리 사법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수사과정에서 법원의 무더기 영장 기각이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박희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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