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대북제재를 둘러싼 북·미 간 입장이 충돌하는 국면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7일 방북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나 핵 리스트 신고를 거부하고 종전선언과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제 미 CBS방송 시사프로그램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준비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비핵화 전엔 제재를 완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미국의 선(先) 비핵화 입장과 북한의 선 제재 해제 입장이 맞부딪치면서 조만간 열릴 북·미 실무협상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미 간에도 대북제재에 대한 이견이 드러난다. 프랑스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현지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이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받는 대신 핵을 포기하겠다는 전략적 결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한다”며 “북한 비핵화 진전에 따라 북·미 연락사무소 개소나 대북제재 완화도 협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발언이다. 야당은 “유럽에서 김 위원장의 메신저를 자처하며 국제사회가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으로 대북제재 문제가 한·미 공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금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는 여간 심상치 않다. 지난 4월 대북 초강경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취임 이후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해임되고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 퇴진이 예고된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에 대해 “그가 떠날지도 모른다”며 교체 가능성을 직접 시사했다. 미국 대북정책에 강경파 입김이 커질 것이라는 분석을 낳는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낼 유일한 수단인 대북제재를 느슨하게 하려고만 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7조치 해제 검토 발언이 대표적 사례다. 이러니 한·미 공조가 엇박자를 내는 것이다. 정부는 더는 북핵 외교에서 헛발질을 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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