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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세공(歲貢)으로 망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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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5 21:28:51 수정 : 2018-10-15 21:2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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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평균 가계부채 8043만원/무슨 돈으로 북한투자 감당하나/분단 상황에서 돈 쏟아부으면/세공 바치다 망한 ‘宋 짝’ 난다 뜨거운 화로 같다. 한반도 주변 정치·군사 지형이 그렇다. 다투지 않는 나라가 없다. 북한도, 미·중·일도 똑같다. 패권을 이어가기 위해, 기존 질서를 뒤엎기 위해 지금처럼 뜨거운 싸움을 한 적도 없다. 방아쇠만 당기지 않을 뿐이다. 30년 가까이 핵 개발을 한 북한, 40년 도광양회(韜光養晦) 끝에 미국과 패권을 겨루는 중국, 깨진 항아리처럼 변하는 팍스아메리카. 모두가 날카로운 창을 들었다.

평화의 시대일까, 전쟁의 시대일까. 전자는 아닌 것 같다. 형세는 끓어오르는 주전자 속 물과 같다.

강호원 논설위원
우리는 다르다. 평화를 외친다.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일까.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토록 평화를 사랑한다면 왜 정치는 1년 365일 싸움만 하는가. 평화를 외치면 평화가 오는 걸까. 역사는 그렇지 않다. 주먹의 크기로 실력을 잰다. 그러기에 약한 쪽은 화기(和氣) 어린 말을 앞세우고, 강한 쪽은 주먹을 앞세운다.

평화를 외치며 잰걸음을 하는 남북 경제협력. 그 본질은 무엇일까.

남북이 평양공동선언에서 추진하기로 했다는 남북철도 연결과 북한철도 현대화. 연내 착공하겠다고 한다. 말이 쉽다. 유엔제재 대상이냐, 아니냐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을 제쳐두고라도 돈 문제만 따져도 문제는 난마처럼 얽히고 만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의 추산치를 보자. 북한의 동해선·서해선 철도 현대화에 38조1164억원, 두 구간의 도로 현대화에는 5조5397억원이 든다. 총액 43조6561억원. 고속철도로 깔면 56조원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토지비와 인건비를 빼고도 그렇다. 이 돈은 세계은행(WB)·아시아개발은행(ADB) 자금처럼 빌려주는 차관도 아니다. 거저 주는 돈이다. 지난해 생산가능인구(15~64세) 3762만명으로 나누면 1인당 평균 최소 116만원씩 거둬야 한다.

가계부채는 6월 말 현재 1531조원에 이른다. 전체 국민의 37%인 1903만여명이 1인당 평균 8043만원의 빚을 안고 있다. 증세 정책에 세금도 불어나고 있다. 국민 호주머니 속 돈은 대부분 빚이다. 무슨 여력이 있어 북한 철도·도로를 현대화시키겠다고 스스로 돈을 낼까.

철도를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에 연결하면 떼돈이 쏟아질까. 돈벼락을 맞는 쪽은 남한이 아니라 북한이다. 얼마나 많은 대북사업이 이런 식으로 이루어질까.

통일대박? 지금은 통일이 이루어진 상황이 아니다. ‘핵 주먹’을 키운 북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북이 뭉치면 거대한 내수시장이 만들어진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북한은 가난하다. 물건을 팔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북한의 값싼 노동력과 남한의 자본·기술력이 결합하면 경쟁력을 갖는다? 그것은 탁상에서나 하는 이야기다. 왜? 값싼 노동력이라면 북한이 아니더라도 세계 곳곳에 널려 있다. 보호주의가 강화된 국제질서 아래에서 투자는 시장이 있는 곳으로 옮아간다. 북한의 투자보장마저 의심받는 상황에서 누가 선뜻 북한 투자에 나설까. 북한에는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다고도 한다. 자원이 그렇게 많다면 왜 북한은 가난할까.

영국의 유리존SLJ의 통일비용 분석. “향후 10년간 2167조원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누가 누구를 위해 부담해야 하는 돈일까. 남한 국민이 떠안는 돈이다. 생산가능인구 1인당 평균 576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그 돈을 분단 상황에서 북한에 쏟아붓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남한 국민은 빚더미에 올라앉는다. 북한은 부자가 된다.

통일이라도 된 양 ‘환상’을 심어 북한에 돈을 쏟아부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상대의 주먹은 커지고, 우리는 세공(歲貢)을 바친 송(宋) 신세로 변하지 않을까.

1126년, 여진족의 나라 금(金)에 개봉을 함락당한 송. 남쪽으로 도망한 송은 금의 군대에 맞선 악비를 처형한 후 해마다 막대한 세공을 바치는 조건으로 공격을 막았다. 세공은 은 25만냥, 비단 25만필. 이전에는 요(遼)와 서하에 세공을 바쳤다. 송은 어찌 됐을까. 망했다. 왜? 상대의 주먹은 더 커지고, 자신은 가난해진 탓이다.

남북 관계라고 무엇이 다를까. 걱정되는 것은 바로 ‘세공의 화’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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