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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10월15∼21일] ‘워털루’ 10년 전의 트라팔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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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14 22:27:07 수정 : 2018-10-14 22: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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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5년 10월21일 트라팔가르에서 벌어진 해전은 그로부터 10년 뒤인 1815년 6월18일 워털루에서 벌어질 나폴레옹의 파멸을 예고하는 묵시록 같은 데가 있다.

그 해전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는 영국 함대에 참패했으나 바로 전 해에 황제에 올라 하늘을 찌를 듯하던 나폴레옹의 기세는 꺾일 기미가 없었다.

나폴레옹은 ‘나폴레옹 전쟁’에 돌입하기 이전에도 영국 해군에 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1798년에 이집트의 아부키르만에서 영국 해군에게 참패한 바 있다. 당시 나폴레옹은 일개 장군으로 350척의 선대를 이끌고 그해 7월에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했으나 8월1일 영국 해군에 발각돼 브뤼에 제독이 전사하는 등 참패했다.

공교롭게도 트라팔가르 해전을 지휘한 호레이쇼 넬슨 제독이 그 해전도 지휘했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내 상황 때문에 1798년 10월 귀국할 때도 영국군의 눈을 피해 이집트를 탈출하다시피 해야 했다.

그로부터 3년 뒤 이집트의 프랑스 군은 이집트를 떠나야 했고 그 배경에는 영국 해군의 존재가 도사리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나폴레옹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가려져 있을 뿐 프랑스혁명 이전부터 프랑스 해군은 영국 해군에 뒤져 식민지 쟁탈전에서도 뒤처져 있었다.

그런 열세의 프랑스 해군이 혁명으로 더욱 약화돼 있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는 33척으로 27척의 영국 함대에 수적인 우위는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혼란한 해전에서는 제독의 지휘도 통하지 않아 장사병들의 순발력이 결정적이며 여기서 섬나라 영국 해군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해전이 시작되기 전에 넬슨은 기함 깃발에 “영국은 모든 이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바라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해전이 영국의 승리로 끝나자 그는 “신이여 감사합니다. 나는 나의 임무를 완수 했습니다”라며 눈을 감았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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