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7일 오후 4시 45분 경북 포항시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서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마린온이 추락하고 있다. 빨간 원안에 마린온에서 메인로터가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
사고 발생 약 3개월이 지난 지금, 고 박 상병을 포함해 5명이 순직한 마린온 추락 사고는 지난달 21일 로터 마스트(엔진 동력을 메인로터에 전달하는 중심축) 제작상의 결함이 사고 원인이라는 민관군 사고조사위원회의 중간조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조카를 잃은 박씨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8일 기자를 만난 박씨는 “사고 진상을 명백히 밝혀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추락사고를 보다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월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 비행장 활주로에 추락한 해병대 상륙기동 헬기 `마린온`의 메인 로터(회전날개)가 부서진 채 놓여있다. 연합뉴스, 사고 유족 제공 |
박씨는 “재우는 사고 헬기에 대해 ‘너무 덜덜거리고 진동이 심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마린온이 시험비행에 나선 원인이었던 진동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헬기는 일반항공기와 달리 비행에 필요한 추력과 양력 등을 메인로터의 회전에서 얻는다. 메인로터와 엔진 시스템 등에서 진동이 심한 이유다. 때문에 헬기 설계과정에서 메인로터 진동을 낮추고자 다양한 기법을 적용한다. 그런데 사고 3주전인 6월 29일 사고 헬기는 기준보다 2배 가까이 심한 진동이 포착됐다. 제조사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정비에 나섰고, 7월 17일 점검 차원에서 시험비행에 나섰다가 메인로터가 분리되며 추락했다.
진동이 심해진 원인으로는 △로터마스트 제작 과정에서 발생한 균열 △메인로터의 비정상적 회전 등이 꼽힌다.
메인로터와 엔진을 연결하는 로터마스트에 균열이 있었다면 비정상적인 진동이 커질 수 있다. 사고의 전조증상을 해병대와 KAI가 간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메인로터는 무게중심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내부에 무게추를 넣어 조정한다. 무게중심을 잘못 설정하면 메인로터가 비정상적으로 회전하면서 진동이 증가할 수 있다. 선진국 헬기 제작업체는 고도로 숙련된 인력이 첨단장비를 활용, 메인로터의 균형을 잡는다. 이 기술은 해외 이전이 엄격히 제한된다. KAI가 이같은 능력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마린온의 원형인 수리온 헬기가 지상에서 이륙하고 있다. 육군 제공 |
부분적인 진동 현상에 근거해 비행시험 형상을 결정했고, 신속한 시험 진행을 위해 항공기 작업 편의성과 신속성에 중점을 두어 시험순서를 결정했다. 시험 결과 분석도 부분적인 진동 현상 해소에 중점을 두어 수행하면서 종합적인 결과 분석에 필요한 시험 조건과 그에 따른 데이터가 누락돼 시험을 반복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그 결과 초기 계획 대비 10배에 달하는 시험이 이뤄졌다. 전력화 이후에도 동체에 실금이 가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진동 문제를 둘러싼 구조적인 결함이 숨어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7월 23일 경북 포항 해병대1사단 도솔관에서 마린온 헬기사고로 순직한 해병대 장병 5명에 대한 합동 영결식이 해병대장으로 열렸다. 유가족이 마지막길을 배웅하며 오열하고 있다. 포항=연합뉴스 |
마린온 사고 유족들은 지난달 17일 사고조사위에 ‘유족의 추가 조사 요구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전달했다.
권재상 사고조사위원장 앞으로 보내진 이 문건에서 유족들은 “로터마스트 균열이 발견됐다는 것만 가지고 사고조사가 거의 다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며 “설계, 제작, 운항, 정비, 훈련 등의 모든 과정을 개선해 동일한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들은 진동 문제를 포함해 시스템 결함 여부, 화재 관련 부분, 수리온과 마린온 비교 실험, 로터마스트에 대한 검수 방법, 미국인 조사위원 더글러스 페겐부시 주한 미 해병대 부사령관이 제기한 인적요소에 대한 60가지 의문 등을 사고조사위가 종합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고조사위 중간조사결과에서는 로터마스트 균열만 강조됐을 뿐, 유족들이 의문을 제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제대로 답을 내놓지 못했고, 향후 조사방향에 대해서도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했다.
마린온 헬기가 날개를 접은채 지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를 비롯한 세계적 수준의 항공사고조사기관들의 경우 사고에 이르게 된 모든 과정을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해 권고한다.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으로도 유명한 2009년 1월 15일 US 에어웨이스 1549편 사고의 경우 비행 도중 새와 충돌, 뉴욕 허드슨강에 불시착했다. 누가 봐도 사고 원인이 명확했지만 NTSB는 사고 조사과정에서 기체와 충돌한 새의 종류와 서식지를 확인, 항공기와의 충돌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2005년 12월 19일 마이애미에서 추락해 탑승객 20명이 사망한 미국 초크오션항공 101편 사고의 경우 관광객의 카메라에 항공기 날개 한쪽이 떨어져나간 채 추락하는 모습이 찍혔다. NTSB는 날개가 떨어져 나간 원인이 정비 불량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 뒤, 미 연방항공청(FAA)이 사고 전 해당 항공사를 감사하면서 정비상태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것도 사고의 원인 중 일부라는 내용을 담은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
민간 항공사고조사가 이렇게 철저하다면 군용 항공기 추락사고는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 안전장치가 민간 항공기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기준에서 볼 때 마린온 추락사고 조사는 절반도 채 이뤄지지 않았다. 전자현미경으로 로터마스트의 균열을 확인, 제조공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만 밝혀졌다.
이것만 갖고 사고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균열이 있었다면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이유와 균열이 임계점에 이르게 한 요인, 사고 당시 6명이나 탑승했던 이유, 마린온 진동 기준의 적법성, 마린온 운용 및 정비 규범의 적절성, 사고 당시 응급조치의 적절성 등에 대한 조사도 진행되어야 한다. 승무원 교육 실태와 KAI의 정비 이력, 마린온 개발부터 제작에 이르는 과정 등도 조사가 필요하다. 수리온을 마린온으로 개조하는데 소요된 기간은 31개월로 다른 나라의 헬기 개발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짧다. 개발과정에서 기술적 검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살펴야 할 대목이다.
미국 NTSB에서 항공기 사고조사를 실시할 때, 평균적으로 2년 안팎의 시간이 걸린다. 길게는 4년이 소요되기도 한다. ‘빨리빨리’ 처리하는 것보다는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사해 개선점을 도출하는 것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보잉을 비롯한 미국 항공우주산업체들이 생산하는 항공기와 후속지원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자랑한다. 세계 각국의 항공사와 군대는 안전성을 믿고 미국제 항공기를 기꺼이 구매한다.
마린온 헬기가 포항 비행장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철저한 조사를 통해 마린온을 안전한 헬기로 거듭나게 하지 않으면 사고로 순직한 5명의 해병대원들의 희생은 무의미한 것이 된다.
유족들은 지난달 권 위원장에게 보낸 ‘유족의 추가 조사 요구사항’ 문건의 끝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사건의 모든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사고장병들의 희생이 조국과 해병대를 위한 숭고하고 영예로운 희생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씨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하는 이유로 “조사를 잘하면 그 수혜는 비슷한 사고를 당할 수 있었던 사람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마린온 사고조사를 더욱 철저히 진행해야 하는 이유를 강조한 유족들의 목소리에 군 당국과 사고조사위가 답할 차례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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