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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질성 선호하고 이질성 기피/ 서로 다르다는 것부터 인정을 현대 사회의 특성과 병리 현상을 규정하는 말로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위험 사회’를 통해 현대 사회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경제가 성장하고 빈곤이 해결돼 평등한 사회로 나아간다는 믿음도 있지만 동시에 사람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초래될 위험을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보았다. 우리는 과학 기술의 발달로 자연의 공포를 상당 정도 통제하게 됐지만 교통·에너지·통신 등 현대 사회의 인공 신경망이 잊을 만하면 새로운 사고를 낳는 위험이 일상화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 사회’를 통해 현대인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긍정성에 입각해 성과를 쌓으며 존재감을 확인하지만 그로 인해 늘 피곤하고 목표에 미치지 못하면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보았다.

위험과 피로는 분명 우리의 자화상을 읽어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갈등도 현대 사회가 작동하는 중요한 특성을 나타낸다. 현대 사회는 문맹률의 퇴치와 일반 교육의 확대로 인해 폭력보다는 언어(대화)로 공통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동시에 개개인이 정보와 지식을 재편집해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나고 있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면 그 사회는 갈등(葛藤) 지수가 증폭하게 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갈등은 원래 칡과 등나무의 성장이 예측할 수 없고, 줄기가 서로 뒤엉켜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마침 실패에 실을 느슨하게 감아두면 실타래가 서로 엉켜서 나중에 도무지 풀 수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과 비슷하다. 갈등은 개인과 사회에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개인은 동시에 여러 가지 욕망을 추구하지만 진척과 결과가 예상과 다르게 되면서 많은 것을 하는 듯하지만 뭔가 정리되는 것은 없는 상태를 일상적으로 겪게 된다. 이로 인해 무엇을 하고 있는 것과 하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무기력감을 느낀다. 반면 사회에서도 현안이 등장하면 수많은 공방이 벌어지지만 여러 생각이 조금씩 좁혀지지 않고 최초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현안에다 부수적인 논쟁점이 늘어나면서 칡과 등나무처럼 뒤엉켜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갈등이 생겨도 풀어서 그러한 해결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면 갈등은 시행착오를 통해 길을 찾는 시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에서 자신을 더 신뢰하게 되고 사회는 갈등의 당사자끼리 끝내 해결책을 찾으리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반면 갈등이 생겨도 풀리지 않고 계속 복잡하게 엉키게 되면 개인은 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지게 되고 사회는 갈등이 계속 생겨서 쌓여갈 뿐 해결되지 않으니 원한이 커져 간다. 나아가 갈등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뒷거래로 오해되기 일쑤이고, 갈등의 봉합은 언제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결국 개인과 사회가 갈등을 마주하고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고 대치를 늘 반복하며 그 자리를 맴돌게 된다.

우리는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마주하면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바탕에는 동질성을 선호하고 이질성을 기피하는 특성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언어에는 엄연한 20~30년을 독립적으로 살아온 부부도 ‘일심동체(一心同體)’이고 서로 이해를 달리는 노사의 관계도 ‘동심동덕(同心同德)’이어서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생을 함께하고 생각을 같이하는 동호오(同好惡)를 바람직하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진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고 그 하나는 누구도 회의할 수 없다는 독선과 확신을 선호하게 된다.

갈등을 풀려면 우리는 먼저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과 어떤 경우에도 넘어서는 안 되는 공통의 전제를 찾아야 한다. 이어 사람이 다를 수 있고 다르다는 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공통의 전제와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고 상대가 옳을 수 있다는 공론의 장으로 나아가면 얽히고설킨 갈등의 첫 매듭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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