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과 피로는 분명 우리의 자화상을 읽어내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갈등도 현대 사회가 작동하는 중요한 특성을 나타낸다. 현대 사회는 문맹률의 퇴치와 일반 교육의 확대로 인해 폭력보다는 언어(대화)로 공통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동시에 개개인이 정보와 지식을 재편집해 개인의 욕망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늘어나고 있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면 그 사회는 갈등(葛藤) 지수가 증폭하게 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
갈등이 생겨도 풀어서 그러한 해결의 경험을 공유하게 되면 갈등은 시행착오를 통해 길을 찾는 시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에서 자신을 더 신뢰하게 되고 사회는 갈등의 당사자끼리 끝내 해결책을 찾으리라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 반면 갈등이 생겨도 풀리지 않고 계속 복잡하게 엉키게 되면 개인은 출구를 찾을 수 없다는 절망에 빠지게 되고 사회는 갈등이 계속 생겨서 쌓여갈 뿐 해결되지 않으니 원한이 커져 간다. 나아가 갈등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뒷거래로 오해되기 일쑤이고, 갈등의 봉합은 언제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 결국 개인과 사회가 갈등을 마주하고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하고 대치를 늘 반복하며 그 자리를 맴돌게 된다.
우리는 근대화와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마주하면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의 바탕에는 동질성을 선호하고 이질성을 기피하는 특성과 맞닿아 있다. 우리의 언어에는 엄연한 20~30년을 독립적으로 살아온 부부도 ‘일심동체(一心同體)’이고 서로 이해를 달리는 노사의 관계도 ‘동심동덕(同心同德)’이어서 전 국민이 ‘한마음 한뜻’을 이루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는 고생을 함께하고 생각을 같이하는 동호오(同好惡)를 바람직하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기서 진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고 그 하나는 누구도 회의할 수 없다는 독선과 확신을 선호하게 된다.
갈등을 풀려면 우리는 먼저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것과 어떤 경우에도 넘어서는 안 되는 공통의 전제를 찾아야 한다. 이어 사람이 다를 수 있고 다르다는 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공통의 전제와 관용의 자세를 가지고 나만 옳은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릴 수 있고 상대가 옳을 수 있다는 공론의 장으로 나아가면 얽히고설킨 갈등의 첫 매듭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 동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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