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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달은 어디에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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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08 21:57:32 수정 : 2018-10-08 21:5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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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의 靑 예산 의혹 제기에/‘국가기밀 탈취’로 반격한 여당/ 견지망월 교훈 거듭 되새기면서/ 정부 비밀주의 행태 바로잡길 여의도 정가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비유가 있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본다”는 비유다. 한자로는 견지망월(見指忘月)이다. 여느 사자성어와 달리 불교 색채가 짙다.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이 쓴 ‘지월불분(指月不分)’도 있다. 뜻은 유사하다. 본질(달)은 보지 않고 지엽말단(손가락)에 집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찰보다 정가에서 자주 쓰인다. 본말을 뒤집는 정치공방 바람이 워낙 거세서일 것이다.

정국이 하수상하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기획재정부 산하 한국재정정보원의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디브레인)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청와대 업무추진비 등에 불법·편법 소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 전면전으로 비화한 탓이다. 국정감사가 내일 시작되지만 잘 굴러갈지 의문이다. 특히 심 의원이 속한 기획재정위원회가 그렇다.

이승현 논설고문
기재위가 어제까지 여야 합의로 추린 참고인 명단을 보면 심 의원 관련 참고인이 가장 많다. 국정은 간데없이 여야 공방만 뜨겁게 전개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앞서 심 의원과 기재부 측은 맞고발을 했다. 외양상 쟁점은 재정정보 입수 혹은 노출인가, 해킹인가로 요약된다.

기재부는 ‘미인가 정보의 불법 유출’을, 심 의원은 ‘합법 열람’을 주장한다. 심 의원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진실공방을 벌이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검찰도 개입했다. 심재철 의원실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방식으로.

좀 어리둥절하다. 견지망월을 되새기며 옆에서 보면 이번 사안은 복잡할 것이 없다. 청와대 업무추진비 의혹이 달이고 본질이다. 왜 그런가. 디브레인은 국회의원에게 정부 정보를 제공하는 공식 창구다. 심 의원 또한 정상 권한과 접속 절차를 통해 접근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개 시연도 했다.

국회가 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삼권분립에 부합하는 기본 책무다. 정부 여당이 보기에 못마땅할 수는 있지만, 명색이 공익을 위한 의정활동인데 그것을 상대로 격투기를 벌일 일은 아니다. 또 거친 공격을 가한다 해도 심 의원 처신이 달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손가락에 그칠 따름이다. 일각에선 심 의원의 업무추진비 등을 거론한다. 개인사도 들춘다. 정확히, 달은 안 보고 손가락을 보는 격이다.

또 다른 일각에선 ‘독수독과(毒樹毒果)’를 들먹인다. 이쪽은 얘기가 된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형사소송법상의 원칙이니까. 검찰 개입의 근거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브레인의 성격상 유출 방지 책임은 접속 의원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 기재부가 ‘미인가’를 강조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창구 관리를 대체 어찌했다는 말인가. 정보를 얻는 이들이 인가, 미인가를 따져야 하나.

나아가, 독수독과는 공권력 전횡을 막는 개념적 토대라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향후 사법절차를 지켜볼 일이지만, 독수독과가 정부의 폭주 가능성을 감시하는 국회 활동에 재갈을 물릴 법리적 토대가 될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

집권여당은 “국가안보에 치명타가 될 기밀자료를 무수히 빼돌렸다”면서 ‘반국가행위’라는 규정을 했다. ‘국가 기밀 탈취사건’이라고도 했다. 정말 걱정스러운 견지망월이다. 이번 공방의 가장 파괴적인 요소도 이 대목에 있다. 국회 의정활동을 보장하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상식에 의거하는 대신 진영 논리를 들이대니 희한한 주장까지 등장하는 것이다. 여당은 과거 공안 프레임에 치를 떤 기억이 많은 정치세력이다. 미워하면서 닮는 것인가. 야당의 의혹 제기에 공안당국도 아닌 여당이 이리 살벌하게 나오면 앞으로 누가 감히 입을 열겠나.

여당이 입법부 중추로서 이번 기회에 문제 삼을 것은 따로 있다. 청와대 업무추진비, 회의 참석비 따위를 몰래 감추는 정부의 ‘비밀주의’ 행태다. 국민 세금 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민주공화정의 기본이다. 국회의원 접근마저 막는다는 게 말이 되나.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명제가 통하도록 차제에 칼을 대야 한다. 그래야 ‘적폐청산’이다. 눈에 뻔히 보이는 청산 과제는 외면한 채 삿대질만 하는 것은 입법부 도리가 아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결국, 국민이 묻게 될지도 모른다. “달은 어디에 있나”를.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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