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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원칼럼] 되살아난 ‘1990년대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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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01 21:30:13 수정 : 2018-10-01 21: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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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금리인상에 무너지는 신흥국들/투기자본 주도 금융위기 고개 들어 /빚낸 돈 뿌리는 ‘포퓰리즘’으로는/
퍼펙트 스톰 위기 막을 수 없다
스톰은 경제 용어로도 쓰인다. 퍼펙트 스톰. 크고 작은 악재가 한꺼번에 몰아닥쳐 불러일으키는 초대형 경제위기를 뜻한다. 스톰을 부르는 메커니즘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리인상. 올 들어 세 번째다. 미 기준금리 연 2.00~2.25%. 제로금리는 옛말이다. 그 말이 어울리는 곳은 우리나라다. ‘경제 낙제생’ 신세를 면치 못해 아직도 금리를 올릴지 말지 고민한다. 무얼하다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추락하는 경기를 떠받치는 저금리 구호. 그것은 말 그대로 구호일 뿐이다. 시장금리는 벌써 뛰고 있다. 금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며 언제까지 저금리를 고집할 수 있을까.

강호원 논설위원
이해찬 여당 대표, “금리를 올려 집값을 잡아야 한다.” 망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쳐야 할 상황을 앞두고도 집값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의 금리인상은 위기를 부르는 주술과도 같다. 왜? ‘1990년대의 악몽’을 되짚어 보면 이유는 훤히 드러난다.

지금 상황은 1994년과 판박이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보호무역주의를 외치며 슈퍼 301조를 휘두른 미국. 불황은 호황으로 바뀌었다. 1994년은 미국 경제가 과열을 걱정할 정도로 달아오른 해다. 금리를 올렸다. 1년 남짓한 새 미 금리는 3%에서 6%로 뛰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부도가 번졌다. 남미에서 시작한 국가부도 사태는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로 전염됐다. 1997년 11월 외환위기는 그 끝자락에 붙어 있다.

그때 위기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의 금융 붕괴에서 비롯된다. 미 월가의 금융자본은 힘을 쓰지 못했다. 자신이 시퍼렇게 멍든 판에 무슨 힘을 쓰겠는가. 1990년대는 다르다. 국제금융자본은 힘이 넘쳤다. 호황으로 늘어난 소득은 펀드에 모여들고, 투기적인 헤지펀드는 이 돈을 종잣돈 삼아 머니게임을 했다. 빚을 틀어막지 못하는 신흥국. 십중팔구 공격을 당했다. 헤지펀드의 투자 리스트에 오르는 순간 열이면 열 먹잇감으로 변한다. 그러기에 1990년대 후반 아시아·남미의 위기는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 무섭다. 선진국 시각에서 보면 국지적 위기일지 모르지만 신흥국으로서는 그것이 바로 퍼펙트 스톰이다.

그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1990년대형’ 위기가 고개를 들고 있다. 미 연준(Fed)은 내년 말까지 금리를 네 차례 더 올리겠다고 한다. 유럽까지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내년 9월 이전에 금리를 올린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은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두 기관차다. 그들이 긴축에 나서면 어떤 나라든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따르지 않으면? 망한다. 투자자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외환은 씨가 마를 테니.

신흥시장 곳곳에 파산 소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 500억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도 모자라 71억달러를 더 빌렸다. 터키, 브라질, 남아공, 인도네시아의 돈값도 폭락했다. 돈값이 폭락하는 곳에는 투기자본이 몰려든다.

우리는 괜찮을까. 기획재정부 차관, “이번 금리인상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다는 걸까. 안전하다고 믿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왜? 위기는 시시각각 밀려드는데 위기에 맞설 방벽 구축에 나설 수 없으니.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인 ‘소득주도성장’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청와대의 부릅뜬 눈이 무서워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위기 방벽을 구축하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빚을 줄여 재정을 튼튼히 하고, 기업·금융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ABC다. 하지만 모든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나랏빚을 늘려 재정을 빚더미에 올려 앉히고, 기업·금융 경쟁력 강화에는 관심이 없다. 거둔 세금과 빚낸 돈을 살포하는 포퓰리즘만 만연한다. 망한 베네수엘라형이다. 베네수엘라에는 석유라도 있다. 우리는 그렇지도 않다. 더 악성일 수 있다.

외환위기가 터진 21년 전 겨울. 수많은 가장은 일자리를 잃었다. 절망한 가장은 노숙자로 변하고, 가장을 잃은 가족은 벼랑에 섰다. 누가 그들을 도왔을까. 아무도 돕지 못했다. 정부마저. 망한 나라 정부가 무슨 힘으로 돕겠는가. 그런 역사는 보이지 않는가.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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