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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찬제의책읽기,세상읽기] 조르바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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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01 21:31:20 수정 : 2018-10-01 21: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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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것 없지만 자신의 삶에 긍지 지녀/ 욕망의 끈 끊어내야 자유 얻을 수 있어
내리막길에서 발에 걸린 돌이 굴러 내려간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돌 굴러가는 장면을 처음 본 것처럼, 놀라운 눈으로 경이롭게 바라보며 감탄하는 이가 있다. 그는 말한다. “돌은 내리막길에서 다시 생명을 얻어 살아납니다.” 경사면을 구르는 돌을 보고 생명의 경이를 처음인 듯 경탄하는 자, 하여 한없는 느낌표를 부리는 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은 그런 영혼이었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조르바는 평생 몸을 쓰며 살아온 예순다섯의 노동자다. 그는 자기 영혼이 움직이는 대로 행동했던 인물이다. 이른 나이에 결혼했고, 젊은 나이에 사별했다. 전쟁에 참여해 생명을 빼앗고 마을을 불 지르는 일에 가담하기도 했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쳐 그는 길들거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길을 온몸으로 열어나갔다. 함께 광산 일을 하면서 조르바의 행적을 관찰, 보고하는 서술자는 많이 배웠고 읽었고 이성적으로 사유하며, 때때로 현실적 조건에 얽매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조르바의 삶은 자신이 가지 못한 채 잃어버린 길이다.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은’ 존재, 마치 ‘그의 고향 선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우리가 풀지 못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한칼에 풀어버리는’ 인물,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땅에 뿌리박고 있으니 절대로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을’ 야생적 생명인 조르바를 서술자는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말한다.

배우지 못했지만 자기 삶에 긍지를 지녔으며 논리를 초월한 자신감으로 가득 찬 조르바의 경지야말로 사람들이 간절히 바랐던 삶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그런 조르바이기에 굴러가는 돌에서도 생명을 느끼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나간 게 아니냐고 감탄한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커다란 기쁨을 느꼈다. 위대한 예언자나 시인은 이와 비슷하게 모든 것을 처음인 듯 보고 느낀다. 매일 아침 자신들 앞에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것을 본다. 새로운 세상이 안 보이면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조르바는 허허로운 자유인의 초상이다. 모든 것을 비우고 버리면서 얻어낸 자유를 통해 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 조르바는 서술자에게 당신은 소망처럼 자유롭지 않다고 직언한다. 남보다 조금 더 긴 끈을 가지고 왕복하면서 자유롭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그 끈을 잘라버리지 못하는 한 자유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그러려면, … 모든 걸 걸어야 해요!”

나날의 과업이나 제도의 규율, 일상의 관습과 윤리로부터 쉽사리 자유로울 수 없는 보통 사람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어려운 경지다. 어떻게 그 끈을 끊어버릴 수 있을까. 송나라의 도원이 저술한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이 나온다.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이르러 또 한걸음 더 나아간다는 이 말로 목숨을 걸 때 비로소 살길이 열린다고 했다. 어떻게 진일보할 수 있을까. 카잔차키스는 욕망을 끊어내는 것에서 그 한 길을 찾았던 것 같다. 크레타섬에 있는 그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문학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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