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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원더풀 발칸반도] 드라큘라의 고향… 늦은밤 골목길, 갑작스런 비바람에 ‘오싹’

입력 : 2018-09-28 09:00:00 수정 : 2018-09-26 19: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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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루마니아의 중세 마을들
루마니아 시비우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낸다. 커피를 마시며 광장을 둘러보다
문득 시비우의 눈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독일식 건축양식 창문과 눈이 마주쳤다. 지금은 묘한 웃음을 짓는 것으로 보이지만,
독재자 차우셰스쿠 시절에는 국민을 감시하던 독재자의 눈초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감시의 눈’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건축물 하나에도 역사와 더불어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는 흥미로운 곳이 시비우다.
다시 보니 째려보는 듯하다 느껴진다. 오후의 햇살에 반사되는 빛깔 때문인 듯하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 간다.
여유를 즐기다 어제처럼 늦은 밤 험한 길을 운전했던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을 것 같아 뒤늦게 서두르기로 했다.

다음 목적지인 시기쇼아라까지는 94㎞로 1시간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지만 비에르탄의 요새성당을 둘러보기 위해 서둘러 출발했다.

비에르탄 요새성당은 16세기에 건립된 성당으로 카르파타아 산맥 기슭에 요새처럼 자리 잡고 있다. 도시를 보호하는 요새의 기능과 성당의 기능을 합쳐 놓은 것이다.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위치한 요새성당은 여러 개 있는데 1993년 비에르탄 요새성당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이후 1999년 나머지 성당들도 함께 등록되면서 트란실바니아 요새성당으로 등재 이름도 바뀌었다고 한다.

루마니아 시비우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여유로운 오후 시간을 보낸다.
하얀 성벽 위에 붉은 지붕을 한 성당이 교회라기보다는 군사 요새를 보는 듯하다. 이제는 이교도의 침략을 방어할 일은 없겠지만 위용은 여전히 웅장했다. 성지순례 코스면 더 많은 여유를 갖고 다른 성당들도 둘러볼 수 있겠지만, 허락된 시간이 짧아 비에르탄의 요새성당만 잠시 둘러본 후 다시 시기쇼아라로 차를 돌렸다.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위치한 시기쇼아라는 드라큘라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시기쇼아라에서 태어난 블라드 체페슈는 1436년 이 지역을 지배했던 발라키아 공국의 영주가 됐다. 그의 이름은 블라드 3세 드라큘레아였으며 사람들은 그를 드라큘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드라큘라는 루마니아어로 악마나 용을 뜻하는 ‘드라크’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처음에는 그가 문장으로 사용했던 용의 뜻이 더 강했던 듯하다.

시비우는 루마니아 한가운데인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있는 도시로 루마니아 문화의 중심지로 불리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전쟁 피해를 입었지만 학교와 성당 등 중세 독일식의 유적이 남아있다.
블라드 3세가 루마니아어로 꼬챙이, 가시 등 뾰족한 것을 의미하는 ‘체페슈’라고 불리게 된 것은 죄인이나 전쟁포로 등을 기사단 창대에 꽂아 죽이는 잔인한 처형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당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독일계 작센인 상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해 루마니아인들의 궁핍한 삶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잔혹한 처형방법을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작센인들은 그를 사악한 악마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흡혈귀 드라큘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아일랜드 출신의 영국 소설가 브람 스토커가 1897년 소설 ‘드라큘라’를 출판하고, 1931년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드라큘라는 지금까지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드라큘라의 고향으로 알려진 루마니아 시기쇼아라. 블라드 3세 드라큘레아 백작은 1456년부터 1462년까지 성채 광장 시계탑 근처에 실제로 살았다고 한다. 집 입구에는 철로 만들어진 용이 걸려 있다.
1999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시기쇼아라 역사 지구로 들어서니 파스텔톤으로 채색된 중세풍의 시가지가 나타난다. 좁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지나 광장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한다. 번개가 치고 ‘우당탕탕’ 천둥까지 들려온다. 효과음으로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이지만 두려움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한다. 해가 떨어져 어둑해진 이 시간이 드라큘라가 활동할 때임을 알리는 듯하다.

500년 된 프레스코로 유명한 언덕 위의 교회와 바로크 양식의 설교단이 있는 도미니칸 수도원을 지나쳐 구불구불한 대리석 길을 빗길에 미끄러지듯 움직였다. 비바람에 젖은 광장과 탑들 그리고 온전히 보존된 성채와 주택들 사이를 거닐었다. 다행히 비는 멈추고 또다시 여행자의 마음은 비를 머금은 낭만에 젖어든다.

블라드 백작은 1456년부터 1462년까지 성채 광장 시계탑 근처에 실제로 살았다고 한다. 집 입구에는 철로 만들어진 용이 걸려 있다. 독립과 리더십, 루마니아어로 용을 의미하는 ‘드라코’는 힘과 지혜를 상징한다. 드라큘라라는 단어에서 실제로 시기쇼아라 주민이나 루마니아인들이 블라드 백작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훌륭한 위인이라고 칭송받는 발라키아 공국의 통치자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에 의해 가공의 인물로 창조됐다. 루마니아인의 입장이 아닌 이방인의 입장으로 표현돼 다소 억울할 법도 하지만, 지금은 루마니아의 주요한 관광자원이 되었으니 그나마 위안이 될 듯하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시기쇼아라 역사 지구에 들어서니 중세풍의 시가지가 나타난다.
소설 모티브는 잔인한 처형방법이었겠지만 그 이면에는 세금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부담하는 사람에게는 흡혈귀가 되기도 하고 혜택을 보는 사람들에게는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예나 지금이나 세금을 걷고 사용하는 문제는 쉽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저물어 어둑해진 도시를 떠나며 다음 목적지인 브라쇼브로 길을 서두른다.

브라쇼브 역시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일부로 브라쇼브주의 행정 중심지이다. 1951년부터 1961년까지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따 오라슐스탈린으로 불렸다. 루마니아의 중앙부로 카르파티아 산맥에 둘러싸여 있고, 수도 부쿠레슈티와는 160여㎞ 떨어져 있다.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건축물과 함께 중세 도시로 역사적 문화적 명소들로 유명하다. 의회 광장, 아름다운 성 니콜라스 교회, 빈 동쪽 최대 고딕 교회인 블랙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반겨줄까 기대된다. 해가 지고 어둠이 짙게 깔린 후 브라쇼브에 도착했다. 잠들어 있는 도시를 깨우기에는 거리 불빛마저 사라졌다. 

루마니아 브라쇼브는 1951년부터 1961년까지 이오시프 스탈린의 이름을 따 오라슐스탈린으로 불렸다. 고딕, 바로크, 르네상스 건축물과 함께 중세 도시로 역사적 문화적 명소들로 유명하다.
인기를 끈 방송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의 영향으로 유럽 여행지가 서유럽에서 동유럽과 발칸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이곳 역시 곳곳에서 우리 말이 익숙하게 들린다. 유럽의 아주 작은 지역이지만 미지의 여행지들이 놀랍도록 풍요로운 문화와 전통을 품은 채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발칸 반도 중 한 나라인 루마니아 역시 낯설지만 시시각각 매력적인 여행지로 설렘을 가져다준다. 트란실바니아 지역의 순수한 중세 마을을 지나 또 다른 만남을 위해 잠을 청한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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