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박수찬의 軍] '포스트 평양선언' 시대, 군은 어떻게 바뀔까

관련이슈 박수찬의 軍 , 디지털기획

입력 : 2018-09-23 06:00:00 수정 : 2018-09-23 10:12:0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지난 19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과 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평양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 로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 시작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대결과 갈등의 역사로 점철됐던 남북 군대의 대치국면은 대화와 타협에 의한 군사적 신뢰구축과 충돌방지 단계를 거쳐 군비통제와 군축 등의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군사 분야 신뢰 증진은 기존의 정전협정 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9월 평양공동선언이 실제로 이행되면 우리 군에도 많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육군의 선(線)방어 개념은 신속한 기동력에 바탕을 둔 기동방어와 공세적 작전개념으로, 한반도 인근 해역에 머물러 있던 해군은 대양 진출 전략으로, 전투기끼리의 근접 공중전이나 지상군 지원 위주였던 공군은 장거리 공격능력 강화 전략으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육군, 전력운용 변화 바람 거셀 듯

군사 분야 합의서에서는 군사분계선(MDL)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5㎞씩 지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을 설정하도록 규정했다. 이 구역에서는 포병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이 중지된다.

우리 군은 군사분계선에서 남쪽 2㎞에 남방한계선을, 남쪽 5~10㎞에는 민간인통제선을 운용하고 있다. 지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대부분이 민간인통제구역에 해당된다. 비무장지대(DMZ)가 아니므로 많은 군사시설이 위치해있다.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일반적으로 야외기동훈련은 민통선 밖에서 진행되므로 군사대비태세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는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민통선에서 남방한계선 사이에는 정전협정 이후 수십년에 걸쳐 구축한 거점들이 산재해 있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생하면 민통선 인근에 주둔한 부대들은 거점으로 이동, 군사분계선에서 후퇴한 병력과 함께 방어전을 준비한다. 이후 후방에 만들어둔 진지로 후퇴하면서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며 예비부대의 도착을 기다린다. 이를 위해서는 평시에 훈련을 실시, 작전계획을 숙달하면서 취약점을 보강해야 한다. 하지만 지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에 포함되면 이같은 작전계획은 실행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워리어플랫폼 시스템을 착용한 육군 장병들이 전술훈련을 펼치고 있다. 육군 제공

이에 따라 기존의 방어작전을 대신할 새로운 개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군사분계선과 남방한계선(GOP) 경계작전에 필요한 병력을 제외한 나머지 부대는 기동력 강화를 통해 작전범위를 넓혀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철책 위주 경계가 적의 접근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이제는 적을 군사분계선 이남으로 끌어들여 격파한 뒤 북상하는 방식이 적절하다는 얘기다. 수리온 헬기와 차륜형장갑차, 소형전술차량 등이 지속적으로 배치되어 기동력이 향상되고, 드론봇(드론+로봇) 부대 창설로 감시 정찰 능력이 높아지면 예전보다 줄어든 부대 규모로도 충분히 작전 수행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군, 원양작전 수요 증가 예상

서해와 동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이 설정되면서 남북 간 해상 충돌 위험이 줄어든 해군도 변화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해군 호위함 충북함에서 해성 대함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해군은 1990년대부터 대양해군을 표방했으나 연평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등이 발발하자 한반도 연안 작전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환태평양군사훈련(림팩) 참가, 청해부대 소말리아 아덴만 파견 등 제한적인 해외 파병을 실시해왔다.

하지만 남북 간 해상 충돌 위험이 낮아지면 한반도 인근 해역에 해군 주력 함정들이 장기간 활동할 필요성도 줄어들게 된다. 유럽 국가 해군처럼 분쟁지역에 파견되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셈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해상 무력충돌 위험이 낮은 국가들은 해외 파병이나 군사훈련 참가를 위해 해군 함정을 파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1일 귀환한 청해부대 26진이 대표적인 사례다. 청해부대 26진은 지난 2월부터 7개월 동안 소말리아와 가나, 지중해에서 군사작전을 수행했다. 아프리카 소말리아와 아라비아반도 예멘 사이에 위치한 아덴만은 홍해, 수에즈 운하를 거쳐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상 관문이다. 우리나라의 해상 물동량 중 30%가 아덴만을 통과한다. 청해부대 26진은 이전에 파병된 부대가 수행했던 해적들로부터 우리나라 상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완수했다.

지난 3월에는 우리나라 국민 3명이 피랍된 서아프리카 가나 인근 해역으로 이동했다. 2011년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처럼 군사작전이 이뤄지지는 않았으나 무력시위를 통해 납치세력을 압박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해군이 아프리카 희망봉을 지나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작전을 펼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8월에는 한국인 1명이 리비아 무장단체에 납치되자 인근 해역으로 이동해 인질 석방 지원 작전을 펼쳤다.

이후 귀국길에 오른 청해부대 26진은 지난 11일 베트남 다낭에 기항, 군사외교 활동을 펼쳤다. 다낭시청과 베트남 해군 제3해역사령부를 방문해 우호협력 증진 방안을 논의했고 12일에는 한국 주요 인사와 교민, 베트남 해군 관계자를 초청, 함상 리셉션을 진행했다. 베트남 해군이 지난해 5월 우리 해군으로부터 양도받은 초계함의 음향탐지기에 대한 정비도 실시했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해상 갈등에 대비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해군이 자유한국당 이종명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2~7월 서해 한중 잠정조치수역과 이어도 근해 등에 8개의 부표를 설치했다. 이어도 관할권 주장이나 한국과의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선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은 지난달 발간한 방위백서에서 독도를 자국 고유의 영토라고 기술, 우리 정부의 반발을 샀다. 동북아 해양분쟁이 격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이유다.

◆장거리 공중작전 능력 강화 필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폭 40~80㎞의 공중 적대행위 중단 구역이 설정되면서 공군의 작전 패턴도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기존에는 남북 지상군이 교전을 벌이는 곳을 중심으로 화력지원을 실시하는 근접항공지원(CAS)이 공군 임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수원, 원주, 강릉 기지 등에 배치된 F-5E/F, FA-50 전투기가 이같은 임무를 주로 담당했다.

하지만 공중 적대행위 중단 구역 내에서 공대지유도무기 사격훈련이 금지됨에 따라 예전보다 더 먼 거리에서 적 후방을 타격하는 장거리 공격능력 향상이 시급한 과제라는 평가다. 공군이 기존에 수행하던 근접항공지원 임무 일부를 육군 천무 다연장로켓과 아파치/LAH 공격헬기, 전술지대지탄도미사일(KTSSM) 등에 넘기고 전략적 목표 타격과 제공권 확립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공군은 장거리 공중작전을 수행할 기반은 갖추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사거리 500㎞의 타우러스(TAURUS)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을 도입, F-15K에 장착해 운용중이다. 장거리 정밀타격능력과 더불어 지하시설도 파괴할 수 있는 타우러스 미사일은 북한이 지난 3월 우리민족끼리, 노동신문 등을 통해 “관계개선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하지 말라”며 비난할 정도로 경계하는 무기다. 공군은 260발의 타우러스를 보유하고 있으나, 전쟁 초기 북한 내 지상 목표물을 일시에 타격하기에는 수량이 부족해 추가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외에도 JDAM와 KGGB 등 공대지 정밀유도무기를 확보, 북한군을 먼 거리에서 정밀타격할 능력을 갖췄다.
공군 F-35A 1호기가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 비행장에서 시험비행에 나서고 있다. 방위사업청 제공

제공권 확보 역시 피스아이 조기경보통제기와 AIM-120 암람 중거리 공대공미사일 등을 통해 북한 공군을 먼 거리에서 압도할 수 있다. F-35A 스텔스 전투기와 A330 MRTT 공중급유기 도입이 완료되면 북한 공군 전투기는 활주로에서 벗어나기도 힘들 정도로 활동에 제약을 받을 전망이다.

중요한 것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각각의 무기체계를 변화한 환경에 맞게 운용하는 전략 수립이다. 모든 종류의 공중작전을 다 하겠다고 나서는 백화점식 전략을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 원칙에 의거해 핵심적인 작전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전투기(KF-X) 도입 시기까지 대형 무기도입사업이 없는 공군으로서는 운용 개념과 전략 수립을 통한 시너지 극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남북 간 군사적 신뢰구축에 대해 일각에서는 ‘무장해제’라며 비난한다. 군사력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북한군과의 대치로 인해 미뤄졌던 군사혁신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연구자들의 책상 위에서만 존재했던 우리나라의 군사혁신 방법에 대해 진지한 고민과 적용이 요구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아닌 기회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