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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평양선언=무장해제’ 주장, 어디까지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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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22 10:00:00 수정 : 2018-09-21 20:5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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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채택한 ‘9월 평양공동선언’을 놓고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무장해제’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자유한국당은 “피로 지켜온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폭거를 자행했다”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21일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정찰 자산을 스스로 봉쇄했다. ‘노무현정부 시즌2’ 정부답게 노 전 대통령이 포기하려 했던 NLL을 문재인 대통령이 확실하게 포기하고 말았다”며 국회 국방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19일에도 “비핵화에 대한 아무런 실효적인 조치 없이 군사적 긴장완화를 명분으로 사실상 무장해제를 섣불리 받아들이고 있다는 데 유감을 넘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일부 언론들도 ‘NLL 포기’를 기정사실화하며 우리 군이 일방적으로 양보했다고 주장한다.

◆전략 목표 달성에 초점 맞춘 해상 완충구역

남북 군사분야 합의서에서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은 서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 설정된 공중 적대행위 중단 구역이다.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송영무 국방부 장관(왼쪽)과 북한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판문점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문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을 표시한 지도를 보면, 우리측 해역이 북한해역보다 더 넓은 것처럼 보인다. 비난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북한이 NLL을 인정하지 않고, 북한의 해상 경비계선은 우리가 인정하지 않으므로 바둑판처럼 구획정리가 이뤄진 육지에서 쓰이는 등거리, 등면적 방식은 쓸모가 없다. 해양적 사고방식에 기초해 전략적 목표를 설정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서해 서북도서와 황해도 일대를 살펴보면, 황해도가 서해로 깊숙이 튀어나온 형태다. 서해 NLL 최서단인 백령도 북쪽을 기준으로 등거리, 등면적 원칙에 따라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을 설정하면 황해도 서부 해안 일부 지역과 백령도 앞바다만 포함된다. 연평도나 대청도, 소청도, 우도를 기준으로 해도 황해도 해안 일대를 모두 포함할 수는 없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지난 4월 25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북쪽에 위치한 북한 장재도의 해안포 진지(붉은색 원)가 문을 닫은 채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군 4군단이 관할하는 황해도 해안 전체가 포함되지 않으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설정은 의미가 없다. 장산곶, 옹진반도, 강령반도, 해주 등 황해도 해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해안포 수백문이 배치되어 있다. 대수압도, 장재도, 무도 등 연안 도서에도 해안포 진지가 구축되어 있다. 북한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에 이어 2014년 5월 연평도 서남방 해역을 초계하던 우리측 유도탄고속함에 해안포 2발을 발사하는 등 군사적 위협을 지속해왔다. 우리측으로서는 황해도 해안의 해안포 무력화가 급선무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황해도 해안 일대를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에 많이 포함시켜야 한다. 또한 북한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을 이용해 우리 군의 작전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인천해역방어사령부 및 2함대사령부가 위치한 인천, 평택 앞바다에서의 작전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절충한 기준점이 바로 덕적도다. 덕분에 북한은 270여㎞의 해안선이 적대행위 금지 구역에 포함됐지만, 우리는 100여㎞만 해당됐다. 포구 폐쇄 조치 대상 해안포는 북한은 108문이나 우리군은 30문 정도다. 북한이 더 많은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서북도서에서의 군사적 위협이 크게 줄어들어 수도권 안전도 보장된다. 
육군의 군단급 무인정찰기 RQ-101 송골매. 연합뉴스

훈련이나 도발 대응과 같은 군사대비태세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도 낮다. 해군 해상사격 및 기동훈련 구역은 서해의 경우 충남 태안 격렬비열도 인근과 그 이남 해역이다. 76㎜함포에 사용하는 포구덮개는 플라스틱으로 씌우는데 2초, 제거하는데 0.5초 걸린다. 그나마 76㎜급 이하 함포는 천으로 덮는다. 유사시에는 함포 덮개를 그대로 두고 사격해도 된다. 군복무시절 K-2 소총에 총구 마개를 씌운 것을 잊어버린 채 사격장에서 총을 쐈을 때, 총기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함포에 포구를 씌워도 대비태세에 큰 문제는 없다.

다만 국방부가 서해 해상 적대행위 중단 구역 구간 길이를 135㎞가 아니라 80㎞로 설명해 논란을 자초한 것은 옥의 티로 지적된다. 이를 두고 “NLL을 팔아먹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것을 우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08년부터 NLL 문제에 발목이 잡혀왔던 현 정권으로서는 NLL이 부각되는 것이 부담스러운 부분이겠으나, 이로 인해 합의서의 신뢰성에 흠집이 났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공중 적대행위 중단, 우리가 손해보지 않아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폭 40~80㎞에 걸쳐 설정된 공중 적대행위 중단 구역도 논란이 되고 있다. 수도권을 겨냥한 북한 장사정포 감시 공백이 발생할 수 있고, 유사시 북한 지역 공습에도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남북 군용기의 비행이 사실상 금지된다는 측면에서 전방지역 감시가 일부 제한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전방 부대에서는 군단급 무인정찰기(UAV)을 띄워 북한군 동향을 감시한다. 그런데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20~30㎞ 폭의 공중완충구역이 설정됨에 따라 우리 군의 군단급, 사단급, 대대급 무인정찰기는 작전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 장사정포 감시가 쉽지 않게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월 31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제9차남북장성급군사회담에 참석한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소장이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육군 중장과 악수하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우리 군은 전방 부대 무인정찰기 외에도 다양한 정보수집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영상과 신호정보를 수집하는 금강, 백두 정찰기와 함께 곧 실전배치될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는 군사분계선에서 40㎞ 이상 떨어진 지역에서도 정찰활동을 할 수 있다. 전방 지역에 배치된 정보부대는 북한군 교신 내역을 감청하면서 동향을 파악한다. 우리 군이 북한군 교신 내역을 감청해 확보하는 정보는 주한미군도 인정할 정도로 양과 질 측면에서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를 비롯한 정보원들이 제공하는 휴민트(HUNINT:인간정보)와 미군이 제공하는 위성사진도 도움이 된다.

반면 북한군은 대남 정찰자산이 부족한 실정이다. 북한의 정찰자산은 무인기나 기구가 꼽힌다. 2010년대 강원도 등지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기는 중국에서 지도제작에 쓰이는 무인기를 복제하거나 일부 개량한 것이다. 카메라 성능이 떨어져 사진 해상도가 낮아 군사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렵다. 러시아에서 수입한 프첼라 무인정찰기가 있으나 수량도 적고 도입한 지 오래된 구형이다. 때문에 북한군은 성층권까지 올라갈 수 있는 기구를 정찰자산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무인기와 기구가 공중 적대행위 중단 대상에 포함되면서 북한군의 정찰 능력은 상당한 제약이 불가피해졌다. 제3국을 통해 유럽 민간위성사진 서비스 업체에서 위성사진을 구입하는 방법이 있으나 사진 입수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구글맵은 해상도가 떨어지고 업데이트도 늦어 군사동향 감시에 부적합하다. 북한이 입을 타격도 만만치 않은 셈이다.

공중 적대행위 중단 구역에서의 공대지 유도무기 사용 금지도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 군사분계선까지 접근해 폭탄을 투하하는 2차 세계대전 방식의 지상공격 대신 먼 거리에서 정밀유도무기를 투하하고 안전하게 후퇴하는 것이 현대전의 공대지 작전 방식이다. 이에 따라 공군의 지상공격 능력도 완충구역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어 있다. 사거리 500㎞의 타우러스(TAURUS) 미사일은 대전 상공에서도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 타격이 가능하다. 슬램-ER(사거리 270㎞), GBU-39(사거리 90~110㎞), KGGB(사거리 70㎞), 스파이스 2000(사거리 57㎞) 등도 공중 적대행위 중단 구역 밖에서 북한군을 공격할 능력을 갖고 있다. 작전능력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공중 위협에 민감한 북한의 심리적 불안감을 덜어주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다.

군사 분야에서 합의를 한다는 것은 ‘주고받기’다. 우리의 입장을 100% 관철할 수 없고, 북한도 자신들의 주장을 고집할 수는 없다. 한쪽의 입장만 관철하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연합국이 일방적으로 독일 라인란트 지방에 비무장지대를 설정하고,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항복한 뒤 러시아가 동부 슐레지엔과 프로이센 지방을 독일 동의 없이 폴란드에 넘긴 것처럼 상대방의 항복을 받아냈을 때만 가능하다. 남북이 대화를 하는 것은 상대방을 굴복시키자는 의미가 아니다. 합의를 통해 상생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핵심 이익을 수호하면서 ‘주고받기’를 하는 것은 안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닌, 안보를 지키는 또다른 방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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