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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관습을 중시하는 집안에선 제수(祭需)에 붉은 고춧가루를 쓰지 않는다. 왜? 귀신을 쫓는 의미가 담겨 있어서다. 복숭아도 마찬가지다. 제사 음식만이 아니다. 추석 같은 큰 명절에 조상을 기리는 차례상에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전통 관습을 존중하려면 고춧가루를 기억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포는 좌측, 식혜는 우측에 놓는 좌포우혜(左脯右醯), 생선은 동쪽, 육류는 서쪽으로 가게 하는 어동육서(魚東肉西), 생선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는 동두서미(東頭西尾) 등의 원칙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뿐인가. 붉은 과일은 동쪽, 흰색은 서쪽으로 놓는 홍동백서(紅東白西), 좌측부터 대추, 밤, 배, 곶감 순으로 차리는 조율이시(棗栗梨枾) 등도 있다.

문제가 하나 있다. 한자가 무더기로 등장하는 ‘진설(陳設·상 차리는 법)’이 진짜 전통인지 매우 의심스럽다는 점이다. 정부의 1960년대 간행물과 당시 언론에 홍동백서 등의 용어가 등장한다는 점을 들어, 일각에선 ‘60년대 이후 발명된 전통’이라고 꼬집는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에서 제사의 요체에 관해 “사랑하고 공경하면 그뿐”이라고 했다. “가난하면 집안 형편에 어울리게 하면 되고, 병이 났다면 몸의 형편을 헤아려 제사를 지내면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정곡을 찌른 조언이다. 정성을 담는다면 맹물 한 그릇도 훌륭한 제수가 될 수 있다. 사랑과 공경의 마음이 없다면 진수성찬도 헛것일 테고. 전통의 근거도 부실한 판국에 헛것 때문에 명절 스트레스를 키울 일인지 의문이다.

올해 추석이 눈앞이다. 한 배달앱 업체가 3년간 주문 데이터를 분석해 어제 공표한 내용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추석 연휴의 배달음식 주문이 전년보다 평균 56.1% 늘었고, 추석 당일엔 65.8% 증가했다고 한다. 올해 주문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간편식으로 차례상을 준비하는 사례가 많아진다는 뉴스도 있다.

배달음식 주문이 는다고 해서 추석 차례상에 오를 것으로 예단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이 높아질 것으로 보지 않을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맹물이 나은가, 배달음식이 나은가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율곡 이이도 좀 헷갈릴 것이다.

이승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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