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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칼럼] 고향 한가위 달의 넉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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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20 22:54:25 수정 : 2018-09-20 22: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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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편가르기 현상 심각 / 얼토당토않은 진영논리 기승 /“보름달 앞에선 다툼이 없다” / 한가위 근본 정신은 통합 하늘은 높고 바람은 선선하다.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고 나무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다. 음력 8월 보름, 추석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일년 중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맞는 명절이다. 축복받은 수확의 계절 한가운데여서 중추절(仲秋節)이다. 한가위라고 한다. ‘한’은 크다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의 옛말이다. 오늘부터 귀성 차량이 고속도로를 가득 메울 것이다. 추석은 온 가족이 한데 모여 조상의 덕을 추모하고 친지나 이웃과 햇곡식·햇과일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정을 나누는 명절이다. 사람들이 길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으며 귀성전쟁을 치르는 이유다.

추석은 농경사회가 자리 잡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관련 기록이 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부터 궁궐 뜰에 여자들을 모아 두 무리로 나눈 뒤 매일 베를 짜게 했다. “그후 8월15일이 되어 그 성적의 많고 적음을 평가하고 진 쪽에서는 술과 음식을 마련해 이긴 쪽에게 베풀었다. 이 자리에는 노래와 춤과 온갖 오락이 다 벌어졌으니, 이를 일러 가배(嘉俳)라고 했다.” 이두문에서는 가위를 ‘가배’라 적었다. 중국의 ‘수서’와 ‘구당서’는 신라에서 8월 보름에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이 모여 활을 쐈다고 했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추석의 상징은 보름달이다. 조선시대에는 추석 날 밤에 궁궐에서 왕과 신하가 덕담을 주고받으며 달구경을 했다. 완월연(翫月宴)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종은 추석 날 승정원에 내린 글에서 “오늘 저녁에 내가 경연 당상과 출직한 승지·주서와 홍문관·예문관에게 주악(酒樂)을 내려, 청량한 곳을 가려서 태평의 날을 즐기게 하려고 하는데, 이 또한 아름답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한가위 보름달을 노래한 시가 많다. 조선의 문장가 장유는 “오늘 밤 바라보는 팔월 보름달/ 만 리 구름 헤치고 두둥실 높이 솟았도다/ 먼 하늘 삽상한 기운 뻗쳐 나가고/ 별들도 현란한 빛 감추었어라”라고 읊조렸다. 조선 후기 문신 이현석은 “둥그렇게 밝은 달이 가을밤을 굴러가고/ 계수나무 그림자는 푸른 바다 속에서 영롱하게 빛난다”고 했다. 보름달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산문집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에서 “1년 열두 개의 보름달 중에서도 고향의 한가위 달이 가장 크고 밝고 넉넉해 보인다”고 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은 우리에게 통합의 날이며 이 통합은 문화적 경이다. 어제까지 다투던 사람들도 보름달 앞에서는 다툼이 없다.” 한가위 보름달은 온 세상을 골고루 밝게 비춘다. 그러니 한가위의 근본 정신은 통합인 것이다.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된다. 편가르기 현상이 심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매사에 이편인지, 저편인지를 따진다. 편을 가를 이유가 없는 사안에 대해서도 버릇처럼 그렇게 한다. 정치권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사회 전반에 퍼졌다. 상대편 말을 대놓고 무시하고 자기편 얘기만 되풀이한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오르는 글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니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토론을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리 얘기해도 접점을 찾지 못해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다. 갈기갈기 찢겨진 사회가 됐다. 이성호 전 국가인권위원장은 이달 초 이임식에서 “보수, 진보의 진영논리가 인권 현안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가 하면, 경제발전과 인권신장은 함께 조화롭게 추구해야 할 가치인데도 한쪽에만 치우친 생각을 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고 개탄했다. 얼토당토않은 진영논리를 앞세운 편가르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다.

유가 경전 ‘중용(中庸)’에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이라고 하고, 변하지 않는 것을 용이라고 한다”며 “중용은 치우치지 않고 의지하지 않아서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치”라고 했다.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는 자긍심이 있지만 다투지는 않고, 여럿이 한데 어울리지만 파당을 짓지 않는다(君子矜而不爭, 群而不黨)”고 했다. 절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고향집 한가위 달의 넉넉함을 떠올리게 된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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