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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성장의 마중물] <2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 발굴”

관련이슈 : 디지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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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7 17:13:04      수정 : 2018-09-17 23:42:54
여자 피겨스케이팅의 전설로 불리는 소냐 헤니(Sonja Henie)는 15살에 출전한 1927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파격을 선보였다. 검은색 긴 치마와 스케이트가 대세이던 그 시절에 흰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얀 스케이트를 신었다. 어머니가 직접 디자인한 옷인데 발의 움직임이 편해지면서 헤니의 장점인 발레 동작을 돋보이게 했다. 관행을 깬 헤니는 우승했고, 이후 세계선수권 10회 연속 우승, 올림픽 3연패라는 신화를 썼다. 단거리 육상의 출발법인 크라우치 스타트(crouch start)나 높이뛰기 경기의 배면뛰기도 당시 대세인 스탠딩스타트나 가위뛰기를 포기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어서 가능했다.

헤니처럼 ‘하얀 스케이트’의 혁신을 통해 성공한 이가 생기면 자본과 인재는 자연스레 몰릴 것이다. 그렇게 조성된 혁신 생태계는 저성장·양극화로 신음하는 한국 경제의 활로가 될 터다. 지도가 없는 길에 뛰어드는 혁신 전사의 길은 험난하다. 시작하는 이의 손을 잡아줄 도우미가 절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공공기관이 혁신성장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그런 연유다. 세계일보는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의 마중물로 나서고 있는 공공기관을 <혁신성장의 마중물> 코너로 연재한다.

자료사진=KIST 제공
<2회>KIST “4차 산업혁명의 기반기술 발굴”

서울 홍릉숲 인근에 자리 잡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한국 과학기술 역사의 산증인이다. 1966년 출범한 국내 최초의 과학기술 종합 연구소로 ‘개발시대’를 이끈 국책 연구기관의 맏형이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과 1980년대 전자·통신과 생명과학 등 첨단 기술 연구에 앞장섰고, 1990년대부터 기초 원천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톰슨로이터 조사에서 2016년과 2017년 2년 연속으로 가장 혁신적인 공공연구기관 6위를 차지했다. 올해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KIST 성과는 7건으로 단일 기관 최대 성적표다. 출연연의 맏형에서 공공기관 혁신의 아이콘으로 거듭나고 있다.

KIST는 올 상반기 다학제 역량과 개방형 연구경험을 살려 도전·혁신적 연구·개발(R&D) 수행체계를 도입했다.

국방·안보, 재난·안전 등 민간투자가 어려운 공공·사회 분야에 파괴적 혁신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도전적인 타깃을 설정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K-DARPA(KIST, Demand-based Aim-oriented Research for Public Agenda) 프로그램을 출범했다.

미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기획청(DARPA) 프로그램과 같이 매우 도전적·타깃지향적 목표로서 국방·안보, 재난·안전 등 민간이 투자하기 어려운 공공·사회 분야에 파괴적 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는 단기실증형 연구를 착수하고, 남은 기간 충분한 기획과 준비를 거쳐 내년에 한계돌파, 파괴적 혁신 프로그램을 시작할 예정이다.

KIST(한국과학기술원) 이병권 원장. 서상배 선임기자
이병권 KIST 원장은 지난 14일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문제해결형·솔루션 제시 연구는 기술적 수월성은 물론 비용 등 현장에서의 수용성이 더욱 고려돼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연구 기획과 연구 수행방식 등이 기존 R&D 수행체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관 고유 사업에 있어서 연구계획의 도전성 평가를 대폭 강화해 수월하게 성공에 이르는 연구를 지양할 것”이라며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는 제도와 문화 조성을 통해 기관의 고유임무 달성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과학자답게 ‘코리아 R&D 패러독스’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가 세계 1·2위를 다투는 양적 규모에도 불구, 연구성과는 혁신의 동력으로 제 기능을 못한다고 일갈했다. 그는 “R&D가 98% 성공을 하는데 산업체의 제조업 경쟁력에는 실제로 도움이 안 되는 게 현실”이라며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것만 해놓고 끝내버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KIST는 연구결과보다는 연구계획서를 낼 때 그 일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도전할 만한 일인지 굉장히 엄격하게 심사한다”면서 “KIST가 ‘코리아 R&D 패러독스’ 해결에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맏형답게 KIST는 초고속 컴퓨팅과 초저전력 컴퓨팅 기술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혁신적 연구를 지속 발굴·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기존 반도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미래형 컴퓨팅 기술 개발과 다분야 빅데이터 생성·활용기술 개발로 4차 산업혁명 글로벌 선도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로보틱스과 센서, 첨단소재 등 KIST가 보유한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 인프라를 적극 개방해 관련 기업들의 융합·협력을 선도하는 플랫폼 역할에도 앞장서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KIST 뿐만 아니라, 국가 R&D역량을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해 4차 산업혁명 기반기술의 조기 확보와 기초연구 기반의 플랫폼 선점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 나갈 계획이다.

KIST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올해 뇌과학연구, 맞춤형 의공학기술, 미래컴퓨팅 기술, 로봇 기술분야에 초점을 두고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골자로 한 ‘역할과 책임’(R&R·Role&Responsibility)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원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초연결성(Hyper-Connected) 기반의 인공지능(AI), 로봇기술, 바이오기술, 나노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융합을 추진할 적기”라며 “KIST가 앞으로 집중해야 할 4대 역할 중 하나로 ‘첨단로봇 및 빅데이터 기반기술 선점’을 설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의 주도는 결국 기업이 해야 하며, 출연연의 역할은 근간이 되는 기반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기업에 맡기기 힘든 차세대 컴퓨팅·반도체 분야 등 장기간에 걸쳐 진행해야 하는 기술을 출연연과 대학이 개발하고 그러한 기반기술의 플랫폼 위에서 기업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혁신성장의 열쇠는 ‘혁신형 창업’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창업지원 제도가 비교적 잘 갖춰진 편인데 이보다 중요한 것은 혁신형 창업이 가능한 생태계 조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으로 이런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도심을 거점으로 클러스터가 형성돼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구도심과 특화 분야 중심으로 산·학·연 협력을 통해 연구개발 성과물을 신속하게 사업화한다는 것이다.

KIST는 홍릉 소재 기관들과 함께 대학과 연구소, 벤처 기업들이 연계돼 지속적으로 일자리와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혁신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KIST가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개발한 바이오 원천 기술을 인근 고려대와 경희대병원의 임상을 거쳐 벤처기업의 사업화를 통해 세계 시장으로 진출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에는 서울시와 과기부, 국토부 등이 진행하는 사업과 연계를 위한 조직체계인 홍릉 클러스터링 추진단이 발족했다. 추진단은 궁극적으로 홍릉을 첨단산업 중심의 혁신 플랫폼으로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사업화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목표다. 홍릉단지를 혁신성장동력 확보, 첨단일자리 창출 등 국정 아젠다 지원 및 서울 동북권 발전 견인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과학기술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전문 영역으로 커버되지 않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어 25개 출연연구 기관 중 유일한 종합연구소인 KIST의 기능이 점점 늘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의 미래 먹을거리 발굴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KIST는 2017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에서 최우수등급(1등급)을 받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전체 공공기관에 대해 평가한 ‘2017년도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 결과에서 8.86점(외부청렴도 9.01점, 내부청렴도 8.38점)을 받아 1등급으로 선정됐다. 연구기관 그룹 24개 기관 중 1등급은 KIST가 유일하다. 또한, 총 573개 공공기관 중 2위에 이름 올렸다.

이 원장은 최근 과학계에서 불거진 연구부정 사태와 관련, “연구라는 것이 자율과 책임이 원칙이지만 그보다 먼저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우리는 아직 윤리가 정착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안타깝다”면서 “R&D가 선진시스템으로 가는데 윤리 분야에서 KIST가 선제적 역할을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KIST는 글로벌 협력과 과학기술 영토 확장 등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선진국과는 KIST가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 활용해 글로벌 혁신경쟁에 대응하고 우수인력 육성·유치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KIST 유럽과 연계해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을 갖춘 독일 등 유럽협력의 전진기지로 활용하고, 미국, 캐나다 등에 설치한 현지랩을 통해 해당분야 글로벌 최고 연구기관과의 연구협력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최근 들어 KIST의 성공경험을 전수받고자 하는 개도국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 베트남 과학기술연구원(VKIST) 설립은 KIST의 연구문화·시스템을 이식하는 과학기술 한류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KIST는 통일시대를 선제적으로 준비해 나가고 있다. 아직 북한에는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고부가가치 천연물이 많다. KIST 강릉분원 천연물연구소 등이 보유한 역량과 연계한다면 남북협력의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의 경우 통일 3년 전 장관급 과학기술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27개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과학기술 인력의 교류를 진행했다. 이 원장은 “우리도 남북과학기술협력센터 설치 등을 통해 남북의 인력이 교류하고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협력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화학공학 석사, 미국 아크론대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1982년 KIST에 입사한 뒤 에너지·환경연구본부장, 연구기획조정본부장, 부원장 등을 거쳐 2014년부터 KIST를 이끌고 있다. 이 원장은 기관 종합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받은 기관의 원장은 재선임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만들어진 후 처음으로 연임에 성공한 기관장이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기술연구기관인 KIST를 다년간 이끌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보다는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다”면서 “1년 반 남은 임기 동안 KIST 연구 전반에 걸쳐 혁신적 모델이 완성되고 자리를 잡아 국가 R&D혁신에 기여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천종 기자, 사진=서상배 선임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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