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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역사 - 9월17~23일] ‘좌’충‘우’돌 유엔 사무총장의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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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6 22:06:33 수정 : 2018-09-16 22: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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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9월18일 다그 함마르셸드 제2대 유엔 사무총장이 콩고 내전을 해결하기 위해 가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것은 아직도 ‘의문사’로 남아 있다.

함마르셸드는 얼핏 제2대가 아닌 초대 사무총장 같은 데가 있었다. 아니면 창업 군주처럼 스스로 유엔 사무총장의 지위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거창한 호칭에 비해 그 자리는 원래 애매하게 시작됐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전체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자리이니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암초가 많은 바다를 해도도 없이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그의 전임인 트리그베 리에 초대 사무총장이 유엔군의 한국전 참가와 관련해 소련의 눈총을 받다가 끝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퇴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함마르셸드에게 유엔의 터줏대감들이 걸었던 기대도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경제학박사로 경제계의 요직을 두루 거치다가 뒤늦게 외무부 차관이 돼 아마추어 외교관 같은 데가 있었다. 그래서 강대국들은 그를 국제연맹 사무총장이었던 제임스 에릭 드러먼드 백작처럼 ‘무난한’ 사무총장으로 기대했었다.

그런 ‘기대’가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는 강대국들의 이해가 암초처럼 깔린 바다를 오직 ‘유엔헌장의 정신’이라는 나침판에 의지해 항해했다. 그러다 보니 함마르셸드는 공산권과도, 서방측과도 부딪치는 ‘좌’충‘우’돌의 행보를 보였다.

1956년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앞세워 이집트를 침공하자 자신에 대한 ‘재신임투표’를 내걸고 이를 수습했으며, 소련이 헝가리의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려 군대를 투입하자 소련과 대결했다.

하지만 좌와 우는 물론 군산복합체의 이해가 난마같이 얽힌 콩고사태는 그로서도 풀지 못한 채 목숨만 잃은 셈이다. 그 사고가 단순한 비행기 사고가 아니라는 증거는 많지만 진상은 콩고사태처럼 복잡한 의문부호에 갇혀 있다.

양평(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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