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 역시 개입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시작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꼬리를 밟힌 지난 정권 국정농단 주범들이 다시 한 번 ‘서초동’과 악연을 이어가는 모습이다.
김 전 실장은 최근 소환조사에서 “대통령 지시에 따라 2013년과 2014년 당시 법원행정처장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으로 불러 강제징용 재판 방향을 의논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으로선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를 불법으로 상납받은 사실을 ‘믿는 도끼’였던 ‘문고리 3인방’(이재만·안봉근·정호성)이 털어놓은 데 이은 또 하나의 ‘배신’일 수밖에 없다. 김 전 실장의 진술은 향후 박 전 대통령이 이 사건 피의자로 기소될 경우 결정적 진술 증거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 상황 등을 종합하면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던 박 전 대통령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권을 전범기업을 상대로 행사하는 데 부정적이었다. 법원 하급심 판결도 박 전 대통령의 바람대로 선고됐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은 김 전 실장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김 전 실장은 두 차례에 걸쳐 대법관을 겸하는 법원행정처장과 관계부처 장관을 자신의 공관으로 불러들여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거나 전원합의체에 회부하는 방안을 의논했다. 대법원이 개인간 민사소송에 정부부처가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민사소송규칙을 개정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이후 사건은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설명 없이 계류 중이다.
당시 사법부 역시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과 법관의 해외 파견처 확보에 청와대의 지원을 바라고 적극 협조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법관이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한다”며 “누구의 입김에 휘둘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사이 박근혜정부는 2015년 ‘화해치유재단’을 국내에 설립하고 기금 10억엔(약 100억원)을 일본 정부가 출연하는 조건으로 일본군 성 노예 피해 보상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이뤄졌다는 내용의 ‘12·28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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