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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21세기 유령’ 대한민국 마르크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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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2 21:47:57 수정 : 2018-09-12 21: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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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주사파가 장악했던 대학가 / 때 아닌 마르크스사상 학습 열풍 / 검증 끝난 실패한 망상일 뿐 / 북한 이념공세 극복할 대안 필요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8월 말 서울시내 대학가를 한 바퀴 돌았다. 세계일보가 주최하는 통일지도자아카데미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캠퍼스는 방학이라 조용했지만, 게시판엔 각종 포럼과 모집을 알리는 포스터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빈 공간을 살피다 시간이 30여 년 전인 1980년대 중반에 멈춘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게시판을 점령하고 있는 포스터들은 대부분 기한이 지난 ‘농활단 모집’, ‘반빈곤연대 활동’, ‘다른내일캠프-진보적 강연과 신나는 공동체의 콜라보’ 등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르크스주의 정치포럼을 안내하는 ‘마르크시즘 2018’이다. ‘18년째 열리는 국내 최대 마르크스주의 포럼’, ‘차별·불평등·착취에 반대하는 토론’, ‘마르크스주의를 집중 토론할 기회’라는 부제까지 단 포스터는 물론 현수막까지 캠퍼스 여기저기에 보란 듯이 걸려 있었다.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강사진은 영국 좌파대학노조(UCU) 사무국장을 지낸 로라 마일스 사회주의노동자당 당원을 비롯해 국내 노동운동계 좌파 이론가들이다. 77개나 되는 세부 주제를 훑어보니 마르크스주의 입문-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주의의 방법-역사유물론·변증법·소외론,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착취와 노동가치론,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민족문제·심리학, 러시아혁명과 교육, 스탈린주의는 무엇인가 등이다.

주최 측은 포럼 폐막 이후에도 마르크스주의 공개 토론회, 세미나 모임-마르크스주의 ABC 등을 후속 행사로 이어 갈 계획임을 밝혔다. 적잖은 회비도 받은 이 포럼에 공무원노조 등 211개 단체가 후원했다. 공영 TV가 황금시간대에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신문은 1년 내내 자칭 촛불정권이 주도하는 보수 세력 척결과 적폐청산 보도에 눈 돌리고 있을 때 이들은 대학가에서 버젓이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전략·전술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앞서 7월 중순 참석한 한 진보·종북단체 강연회는 더 가관이었다. TV 토론회에도 종종 출연해 개성공단 재개를 강력하게 주장하던 발제자는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하면서 “이미 남북은 하나 아니냐. 일본은 완전 왕따시켰고, 이제 미국만 제치면 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수강생들도 “미국이 문제야”를 합창하며, “박사님 같은 분이 통일부 장관 맡아야 한다”고 덕담을 했다. 순간 내가 서울에 있는 건지, 평양에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한국 지성계는 1990년대 초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의 해체와 동독의 서독 합류 통일 이후 마르크스주의가 막을 내린 걸로 오판했다. 80년대 주체사상파가 총학생회를 장악했던 대학가도 문민정부 탄생을 계기로 탈이데올로기로 나아갔다. 김영삼정부는 “민족은 이념보다 앞선다”며 비전향장기수 북송을 비롯해 좌파들을 대거 정치권에 유입시켰다. 이명박정부는 “이념의 시대는 지나갔다”며 낭만에 취해 있었다. 그 사이 장마철 죽순 자라듯 성장한 좌파들은 ‘민주화’ ‘인권’ 운동가로 위장한 채 각계 전문직에 진출하며 똬리를 틀었다.

혹자는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우리 사회가 웬만한 이데올로기 공세는 이겨낼 수 있지 않느냐”고 한다. 일견 공감한다. 하지만 그건 ‘이데올로기 강대국’인 북한을 모를 때 하는 얘기다. 북한은 분단 73년 동안 단 한 순간도 ‘남조선 공산화’라는 체제 목표를 접은 일이 없다. 헐벗고 굶주려 수백만 명이 죽어가면서도 ‘남조선 해방’에 사활을 걸어왔다. 평창올림픽에 온 운동선수들이 남긴 메모판마저 ‘조국통일 3대헌장’, ‘우리민족끼리’, ‘민족대단결’, ‘우리는 하나다’, ‘통일 1세대 되자’ 등 섬뜩한 정치구호 일색이었다.

핵무기 개발의 궁극적 목적도 김씨 일가 영구 집권, 공산당 1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남한을 공산화하는 거다. 이런 명백한 상황과 현실을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정치인은 국민과 국가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 마르크스주의는 밥도 인권도 노동해방도 해결 못한 검증 끝난 실패한 이데올로기다. 아직도 그걸 붙잡고 있는 세력이야말로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 첫머리에 밝힌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숭상하는 이데올로기 적폐 아닌가.

조정진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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