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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혁명이 지나간 자리… 지붕도 돌담도 붉디 붉구나 [박윤정의 원더풀 발칸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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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4 10:00:00 수정 : 2018-09-12 21: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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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루마니아 국경 넘어 트란실바니아로
전날 늦은 저녁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를 떠나 동쪽으로 인접해 있는 루마니아로 향했다. 목적지는 베오그라드에서 북쪽으로 150㎞ 거리에 있는 루마니아 서부도시 티미쇼아라다.

베오그라드에서 루마니아 티미쇼아라로 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2시간30분을 예상하고 출발했으나 국경선을 넘어 루마니아 국도에서 만난 작은 샛길은 생각보다 험했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닌지 불안감이 들 정도의 좁은 시골길은 운전자를 긴장하게 했다. 한적한 시골길 풍경을 기대했지만, 진창길 위로 물을 튀기며 나무들이 유리창을 스치는 좁은 산길이 계속된다. 사고 없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길 바라며, 운전대를 잡은 손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다행히 야간운전을 무사히 마치고 밤늦게 티미쇼아라에 들어설 수 있었다. 예약한 작은 호텔을 찾아 운전으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아침까지 편한 잠을 잘 수 있었다.

티미쇼아라는 루마니아 서부에 있는 티미슈주의 주도로 루마니아 민주화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루마니아는 남유럽의 공화국으로, 북쪽으로 우크라이나, 동쪽으로는 몰도바, 서쪽으로 헝가리와 세르비아, 남쪽으로 다뉴브강을 끼고 불가리아와 국경을 접한다. 흑해와 접하고 있고 국토 중앙에 카르파티아산맥이 지나간다. 오늘은 루마니아 중앙을 가로질러 루마니아 역사도시 시기쇼아라까지 가는 긴 일정이다. 가는 동안 루마니아의 작은 도시들을 둘러볼 예정이다.

출발하기 전 아침 산책을 겸해 티미쇼아라를 둘러보았다. 티미쇼아라는 루마니아 서부에 있는 티미슈주의 주도로, 루마니아 민주화혁명이 시작된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땅이었으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정권이 이곳에 헝가리인을 강제 이주시켜 감시와 탄압을 자행했다.

티미쇼아라에서 오러슈티에로 가는 길에 만난 루마니아 사람들.
루마니아 민주화혁명의 발단은 1989년 반정부 발언을 한 헝가리계 목사 퇴케시 라슬로가 체포되는 사건이 계기가 됐다. 루마니아 정부에 항의하는 헝가리계 주민들 시위가 티미쇼아라를 중심으로 벌어졌고, 이에 정부군은 유혈진압으로 맞섰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차우셰스쿠 반대시위가 루마니아 전역으로 확산됐다. 차우셰스쿠는 결국 체포되고 총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티미쇼아라와는 개인적인 인연도 있다. 한국에서 만난 독일어 선생이 자신의 가족이 사는 곳이라고 설명해 지도에서 한참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가족들도 당시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설명을 들을 때는 지구 반대편 낯선 곳이었지만 세월이 흘러 이렇게 이곳을 방문할 수 있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오러슈티에엔 고대 다키아왕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요새 유적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이 요새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로마제국의 침공에 맞서 오러슈티에산맥에 만들었다.
도시는 작고 아담했다. 어제 늦은 밤 도착해 분위기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지만 아침햇살을 받은 도시는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이다. 세월이 지나 민주화혁명 당시 흔적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광장과 성당을 중심으로 중세풍의 아름다운 전원도시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자신을 희생해 민주화를 쟁취한 역사적 사건과 어우러진 고즈넉한 풍경이 오히려 가슴 먹먹한 감동을 던져준다.

티미쇼아라의 감동을 뒤로하고 시비우로 향했다. 시비우에 들어서기 전, 오러슈티에를 잠시 들렀다. 오러슈티에엔 고대 다키아왕국의 번영을 보여주는 요새 유적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이 요새는 기원전 1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로마제국의 침공에 맞서 오러슈티에산맥에 만든 군사요충지라고 한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은 요새 유적지를 산책하듯 둘러보고 시비우로 발길을 돌렸다.

시비우는 루마니아 한가운데인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있는 도시로 루마니아 문화의 중심지로 불리는 곳이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도시의 골목길이 마치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시비우는 루마니아 한가운데인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있는 도시로, 루마니아 문화의 중심지로 불리는 곳이다. 시비우는 고대 다키아가 로마에 점령된 후 식민도시로 건설됐다. 그 후 12세기 독일인 이민자들이 정착하면서 14세기에는 독일계 주민들의 행정, 상업의 중심지로 번창했다. 시비우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루마니아 왕국의 영토가 되었으나 루마니아 중심에 남아 있는 독일의 문화적 흔적은 여전히 강렬히 남아 있다. 1928년에는 루마니아 최초의 동물원이 이곳에 세워지기도 했으며,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전쟁 피해를 입었지만 학교와 성당 등 중세 독일식의 유적이 남아 있다. 2007년 유럽연합은 ‘유럽의 문화수도’로 이 도시를 지정했으며, 중세도시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잠시 차를 세워 두고 점심식사도 할 겸 구시가지로 들어섰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도시의 골목길이 마치 중세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하다. 마레광장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성당들이 오랫동안 번성한 문화도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특이한 것은 붉은 지붕에 가냘프게 난 창문이 마치 게슴츠레 뜬 눈처럼 관광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비우의 눈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독일식 건축양식은 마주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한다.

마레광장 건물의 붉은 지붕에 가냘프게 난 창문이 마치 게슴츠레 뜬 눈처럼 관광객을 내려다보고 있다. 시비우의 눈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독일식 건축양식은 마주할 때마다 입가에 미소를 머물게 한다.
시비우의 마레광장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성당들이 오랫동안 번성한 문화도시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역사적으로 여러 차례 전쟁 피해를 입었지만 학교와 성당 등 중세 독일식의 유적이 남아 있다.
중심의 대광장에 위치한 성당으로 들어섰다. 오스트리아풍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진 성당들은 빈에서 마주했던 화려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아름다운 천장화와 스테인드글라스는 성스러운 아름다움으로 제단의 위엄을 더욱 높이고 있다. 시비우에서도 루마니아 민주화혁명의 기억을 찾을 수 있다. 1989년 민주화혁명이 발생했을 때 대광장 주변에서 총격전이 벌어져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고대와 중세, 현대가 아름답게 어우러진 대광장 한 편의 노천식당에서 가벼운 식사로 한가로운 루마니아에서의 오후를 즐겨본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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