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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경 없애고 공항 지으면 국민에 혜택 가져다줄까 [지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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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9-12 20:59:40 수정 : 2018-09-13 10:5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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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논쟁 뜨거운 흑산도공항… 핵심 쟁점은
지난 3일 새벽 3시50분. 시계 알람에 눈을 떴다. 

흑산도행 첫배를 타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서울 용산역에서 오전 5시10분에 목포로 가는 KTX를 타고, 7시30분 목포역에서 목포연안여객터미널로 이동해 7시50분 배를 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열차가 지연되거나 택시가 안 잡히기라도 하면 낭패다.

오는 19일은 국립공원위원회가 흑산공항 사업의 가부를 결정하는 ‘운명의 날’이다. 그날이 오기 전 “흑산도에 가보면 왜 주민들이 공항을 바라는지 알 수 있겠지” 막연한 기대감으로 오른 출장길인데 배를 놓쳐 돌아오는 불상사는 없어야 한다.

다행히 발을 동동거릴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고, 쾌속선 출발 10분 전에 승선할 수 있었다.

목포에서 흑산도까지는 97㎞. 앞으로 두 시간을 더 가야 흑산도에 닿는다.

산 넘고 물 건너야 하는 이런 불편함은 흑산공항을 만들어달라는 첫 번째 이유다. 적자가 뻔한 공항을 놓느니 다른 대안을 찾자는 게 반대 측 주장이다. 

‘무사히 배를 탔으니 이제 흑산공항 쟁점을 정리해보자’ 했지만 평소답지 않게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여파로 출항 10분 만에 잠이 들고 말았다.


◆‘철새의 낙원’에서 소떼를 만나다

 배는 정확히 두 시간 만에 흑산도에 도착했다. 산과 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여 이름이 흑산도(黑山島)가 됐단다. 그런데 이날은 섬 전체에 안개가 자욱해 산이 검은지 푸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이 안개는 흑산공항 반대론에 힘을 싣는 요소다. 흑산도의 연평균 안개발생 일수는 90일로 나흘 중 하루꼴이다. 여수공항(6일)이나 김해공항(14일), 제주공항(19일)은 물론 안개가 잦은 인천공항(44일)보다도 두 배나 많다.

공항부지는 흑산항에서 동북방향으로 1㎞ 남짓 떨어진 대봉산에 있다. 대봉산 북쪽 끝자락에서 주민들이 ‘사자바위’라고 부르는 남쪽까지 1160m에 걸쳐 활주로를 놓겠다는 게 서울지방항공청의 계획이다. 그러려면 축구장 23개를 합쳐놓은 16만6600㎡ 면적이 깎여야 한다.

 흑산항에서 공항부지로 발걸음을 옮기며 ‘철새의 낙원’은 어디쯤일지 이곳저곳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대봉산자락에 펼쳐진 초지에서 낙원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녀석들은 새가 아닌 소였다. 울타리 하나 없는 초원을 어슬렁어슬렁 누비며 졸리면 졸린 대로,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놀고먹는 소들이라니…. 언제 태어났는지 뿔도 안 난 송아지 한 마리가 까불거리며 언덕을 넘어가자 어미소가 ‘음매∼’ 하며 뒤를 쫓았다.

방목 소.

방목 소들.

이 일대에는 소 40마리가 방목생활을 한다. 방목된 소의 미덕(?)은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풀이 웃자라지 않게 열심히 뜯어먹은 결과 흑산도를 찾는 멧새과의 작은 철새들은 풀밭에서 작은 씨앗을 찾아먹을 수 있다. 소똥에 모여든 곤충 역시 새의 훌륭한 먹잇감이다. 소똥 덕에 멸종위기종인 애기뿔소똥구리도 이곳에 산다.

 그럼 ‘철새의 낙원’은 과장된 수식어일까.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새는 580종에 이른다. 그중 380종(65.5%)이 서울의 10분의 1 크기만 한 이 섬을 찾는다. 380종에서 365종이 철새다. 배낭기미습지라고 불리는 흑산도 아주 작은 습지에만도 200종 이상이 다녀간다고 하니 과장은 아닌 듯하다.

목도리도요.

다만 흑산도에서 여름이나 겨울을 나기보단 며칠 쉬며 거쳐가는 ‘나그네 새’가 많아 봄·가을에 우르르 몰리고, 그 외엔 무리지어 나는 새들을 보기 힘들다.

더구나 섬 지역 특성상 두루미처럼 대형 조류보다는 손바닥만 한 검은이마직박구리, 칙빼까치, 긴발톱할미새 등이 주류여서 관심이 없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쉽다.

이날도 예리초지에 수십 마리가 모여 있었는데 자동차 소리에 그만 휘리릭 날아가고 말았다.  

지느러미발도요.

공항 예정지인 대봉산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풍경이 있었다. 세발낙지에 감긴 나무젓가락처럼 덩굴식물에 휘감긴 채 말라죽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처량하게 박혀 있었다. 고사한 곰솔(해송)이다. 흑산도에서도 유독 대봉산에서만 2014년 이후로 이런 고사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연유로 예비타당성조사보고서, 환경영향평가보고서 등에는 이 지역이 ‘생태적 가치가 없다’고 돼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견이 나뉜다.

박석곤 순천대 교수(산림자원·조경학)는 “곰솔이 고사한 대신 상록활엽수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며 “우리나라 남해안은 온대 중에서도 따뜻한 난온대인데 훼손돼서 찾아보기 힘든 상록활엽수가 자연천이 과정에서 복원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생태계가 기후조건에 맞게 안정화된 숲의 마지막 단계를 극상림이라고 하는데 구실잣밤나무 같은 상록활엽수가 극상림을 이뤄가는 만큼 생태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것이다.

반면 공항을 찬성하는 윤미숙 전남섬가꾸기 전문위원은 “다도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이과정”이라며 “예리(공항부지 마을명)가 특별하다고 말하긴 힘들다”고 말한다.

◆누구를 위한 국책사업인가

‘사람이 철새만도 못하냐.’

공항을 건설해야 한다는 쪽에서 주로 외치는 구호다. 이들은 공항이 생존의 문제라고 말한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고립된 데다 철새가 많아 198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재산권 행사도 못한 채 불편을 감내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 정일륜(64)씨는 “배가 안 뜨는 날도 많아 병원 한번 가려 해도 일주일씩 미뤄지는 일이 다반사”라며 “홍도처럼 관광이 활성화된 것도 아니고 수온변화로 전복양식도 갈수록 어려워져 자식들한테는 절대 흑산도에 들어와 살지 말라고 한다”고 말했다.

구실잣밤나무.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모임 제공

신안군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흑산도에는 1203가구 2029명이 살고 있다. 흑산도가 포함된 신안군의 소멸위험도는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1번째로 높다. 고령화가 심각하다는 의미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한 곳씩 있지만 전교생이 각각 43명, 17명인 미니학교다. 고등학교는 없다. 하루 네 번 목포를 오가는 배는 풍랑과 안개 탓에 하루 종일 한 번도 못 뜨는 날이 연간 52일, 한 번 이상 통제된 날은 115일에 이른다.

정부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만 해놓고 상하수도 같은 기본 인프라 설치나 관광산업 육성에는 나몰라라 했다는 섭섭함도 크다. 이날 둘러본 흑산도는 ‘다시 찾고 싶은 절경’이라기보다는 여느 어촌마을과 비슷했다. 솔직히 ‘매력적인 관광지’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검은이마직박구리.

흑산도 주민들의 섬 살이가 간단치 않다는 점은 공항 반대론자들도 인정한다.

문제는 결론이 어떻게 나느냐다. 신안군은 ‘그러므로’ 공항을 지어 마을을 부흥해야 한다는 것이고, 환경단체 측은 ‘그러나’ 공항이 아닌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공항이 주민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것인가’와 ‘국책사업으로 타당한가’이다.

신안군은 공항이 들어서면 관광객이 늘어 마을 경제에 도움이 되고, 무엇보다 주민의 교통기본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흑산공항 추진 역사는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2년 ‘경비행장 개발방안 조사’를 시작으로, 2007년 ‘동서남해안특별법’에 도서지역 공항 시설 투자 내용이 담겼다. 2010년 국립공원에도 경비행장이 들어올 수 있도록 자연공원법 시행령이 고쳐져 걸림돌도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앞장선 사람이 박우량 신안군수다. 2006∼2014년 두 차례 군수를 역임한 그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3선에 성공했다.

박 군수는 최근 열린 흑산공항 종합토론회에서 “이 사업이 마치 (전남지사였던) 이낙연 국무총리의 사업처럼 알려졌지만, 신안군이 기획재정부 등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설득에 설득을 거쳐 추진한 것”이라며 “절실해서 그랬다”고 주장했다.

신안군 숙원사업이 되다시피한 흑산공항 건설은 박준영 전 전남지사와 직전 도지사였던 이 총리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도 포함됐다.

하지만 공항사업이 정말 ‘주민들’의 숙원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흑산도에서 홍어 중매업을 하는 김선복(42·여)씨는 “교통기본권 이야기를 하는데 어차피 흑산공항 비행기가 오가는 곳은 김포, 청주, 김해, 광주인데 정작 주민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곳은 목포”라며 “관광 수요만 노린 것이지 주민 편의를 위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활주로 놓일 곳 주변 전체가 바다농사(미역·다시마·전복 등)를 짓는 곳인데 수시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면 위험할까봐 걱정, 승객이 적으면 공항이 흉물로 남을까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흑산항에서 만난 다른 주민(여)도 “저 산이 마을 태풍 피해도 줄여준다고 하던데 깎여나가면 바람막이가 없어져 위험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공항 찬성하는 사람들 목소리가 워낙 커 대놓고 반대한다고 말을 못해서 그렇지, 아마 (주민)절반은 공항에 반대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역 숙원사업과 국책사업의 관계도 생각해 볼 문제다.

신안군은 “흑산도 문제는 우리가 결정하게 해달라”는 입장이지만, 공항 설립에만 세금 2000억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군의 뜻에만 맡길 수 없는 노릇이다.

시행자인 서울지방항공청이 처음 예비타당성 조사 때 제시한 편익/비용(B/C)은 4.38이었다. 1원을 투자하면 4.38원의 편익이 발생하는 ‘대박사업’이다. 2022년 연간 34만명, 2046년에는 46만명이 비행기로 흑산도를 찾는다는 전제가 깔렸다. 현재 흑산도 방문객이 한 해 30만명 정도인데, 개항하면 여객선 수요를 다 흡수하고도 남는 관광객이 찾아올 것으로 잡은 것이다.

안개에 가린 흑산공항 부지.

그러나 여행객이 과다 추정됐다는 비판이 나온 후 지난해 보완서에는 2.6, 올해 재보완서에는 1.9∼2.8로 계속 바뀌었다. 

타당성 값이 요동치는 것도 문제지만 여기에는 20대 안팎의 비행기 구입비, 40∼60명의 조종사 인건비 등은 빠져 있다. 적자공항이 될 수 있단 의미다. 서울항공청도 이 부분을 인정한다.

이보영 서울항공청 국장은 “흑산공항의 재무적 타당성(PI)은 0.17로 나와 민자 없이 정부사업으로 추진할 계획”이라며 “공항시설은 특수성이 있어 이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B/C가 사회적편익을 따진다면 PI는 사업주체의 이익을 말하는데, PI가 0.17이란 말은 사업자가 1000원을 투자하면 170원만 건지고 830원은 손해본다는 뜻이다. 당연히 이런 PI로는 참여할 민간기업이 없을 테니 정부가 세금으로 공항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육지로의 이동수단이 이미 존재하는데 교통기본권을 이유로 공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교통이 불편한 다른 지역도 모두 기본권 침해 논리를 갖다댈 수 있다”며 “물론 국가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정부가 추진할 수 있겠지만 (흑산도 상황은) 그런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흑산공항을 둘러싼 쟁점은 하나로 모아진다. ‘과연 국민을 위한 국책사업인가 아닌가.’

흑산도에서 돌아오는 길. “흑산도에 가보면 주민들이 공항을 원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겠지” 했던 마음은 되레 더 복잡해졌다. 19일 국립공원심의위원회는 어떤 결론을 내릴까. 

흑산도=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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